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망향(望鄕)의 길 (1)

이호석

필자는 한가한 시간이면, 가끔 가까이에 있는 합천댐 순환도로를 혼자 드라이브한다. 내가 사는 합천읍 소재지에서 댐으로 가는 도로와 댐 순환도로는 벚나무 가로수가 잘 가꾸어져 있어 100리 벚꽃 길로 부른다. 매년 벚꽃이 만개할 즈음이면 전국의 수많은 건아들이 참가하는 벚꽃 마라톤대회가 개최되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이 길을 ‘망향의 길’로 부르며 혼자 다니기를 좋아한다.
내가 이 길을 ‘망향의 길’로 부르게 된 것은, 수년 전 우연히 이 도로를 따라 댐을 돌다가 곳곳에 수몰지역 실향민들이 옛 고향 마을을 그리워하며 세워 놓은 망향비를 보고서부터였다. 이 길을 지나노라면, 타향에서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애틋한 마음이 녹아 있는 것 같아 나의 마음도 찹찹해 지곤 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하였던가!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나 살던 곳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는데, 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난 일요일 오전, 초겨울 같지 않은 맑고 포근한 날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또 합천댐 순환도로를 달렸다. 가로수 벚나무가 그 화려한 벚꽃과 무성하던 잎을 홀랑 벗어버리고 떡 하니 버텨 서서 겨울 동장군과 한바탕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먼저 댐 부근의 물 문화관에 들렀다. 1층 홍보관을 대충 둘러보고 2층 전시실로 올라가 대병면과 봉산면 수몰지역을 소개하는 영상을 다시 한 번 봤다. 먼저 대병면 지역의 설명이 나왔다. 앞 벽면 큼직한 화면에 촬영 당시 대병면 농협장을 지낸 문외환 씨가 나와 댐 건설 전의 상황을 잠시 소개하더니 수몰 전 지역 사진들이 차례로 나왔다. 30여 년 전의 대병면 농협 건물을 비롯하여 면사무소, 대병중학교, 상천 1구, 역평 2구, 유전초등학교, 유전 2구, 창리, 회양 1구 마을 등 흑백 사진이 지나갔다. 각급 학교, 기관 건물이나 초가지붕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들이 조금은 초라해 보였지만 포근하고 정겹기가 그지없다.
이어서 당시 봉산면부면장을 지낸 방신정씨가 봉산면 수몰지역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한 후 고삼 2구, 노파초등학교, 김봉리, 노파리, 봉산면사무소, 봉산중학교, 행정 1구, 술곡 2구, 봉산초등학교, 술곡 현수교 등 정겨운 옛 풍경들이 나왔다가 사라진다. 필자가 댐건설이전 수몰지역을 서너 차례 돌아다니며 사진 촬영을 한 적이 있어 화면에 나오는 흑백 사진들이 낯설지 않고 더욱 정겨웠다. 마치 어릴 적 내 고향마을을 보는 것 같이 마음이 싸~하였다. 3층 전망대로 올라갔다. 합천댐 넓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초겨울의 싸늘한 강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가을 내내 잦은 비가 내렸지만, 아직도 댐이 허 멀건 허리춤을 들어내 놓고 배고픈 표정을 짓고 있다.
물 문화관을 나와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도로변 왼쪽 조금 떨어진 곳에 ‘창마을 동적비’가 말끔한 영국신사 같이 서 있다. 동적비에는 옛 마을의 유래와 살던 사람들 가구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또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회양관광단지 안에 ‘회양 1구 동적비’가 마른 풀잎들이 찬바람에 춤을 추는 속에 외롭게 서 있다. 함께 간 마을 사람이 이곳에는 매년 칠월 백중날이면 실향민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전하며 정을 나누고, 모두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처음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찾아왔는데 세월이 갈수록 실향민 1세들이 고령화되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차츰 모이는 사람이 줄어든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외도 대병지역에는 ‘상천 천내마을 동적비’를 비롯하여 ‘버들밭 동적비’ ‘역평 동적비’ 등이 순환도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망향 비는 주로 물속에 잠긴 자기 마을 터가 잘 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실향민들이 가끔 이곳에 모일 때면 서로 근황을 물으며 위로하고, 마을이 있던 곳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짓기도 한단다.
이렇게 망향의 한으로 가득한 골짜기에서 송주, 손두부, 된장, 닭백숙 등 전통음식으로 7대째를 이어온 ‘송씨 고가식당’이 수몰지에서 순환도로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여 옛 정취를 간직한 채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어, 이곳을 찾는 실향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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