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욱 기자의 한마디| 비극의 재탄생
세월호 참사는 한강다리 폭파사건의 재연이다
“의정부를 탈환했으니 서울시민은 안심하라” 이 말은 1950년 6.25사변이 일어나고 이틀 뒤인 27일 오후부터 10분 간격으로 국민들에게 피난하지 말고 현 위치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있으라는 내용의 방송 보도이다. 하지만 28일 새벽 북한군 탱크 두 대가 서울 홍릉 부근에서 나타나자 서울시민과 국군은 혼란상태에 빠졌고, 2시간 후인 새벽 2시 30분경 한강을 잇는 다리와 철교 5개를 폭파했다. 이때 피난길에 다리를 건너던 서울시민 800여명이 수식 간에 공중으로 날아가거나 한강으로 수장되고 말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이 아닌 대전에 있었고 서울시민은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만 믿고 대통령이 서울에 있는 것으로 알았다. 다리 폭파 시점은 육군참모 총장과 미 군사고문 및 정부관료들이 다리를 건넌 직후였다. 다리 폭파 소식을 들은 국군 6개 사단, 4만 4천여명의 병력들은 중장비는 물론 소총까지 모두 버리고 후퇴했다.
“움직이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 “해경이랑 헬기가 오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 이 말들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탑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선실 스피커를 통해 들은 말들이다. 주위에는 구조하기 위해 온 많은 어선들과 해경함정까지 있었지만 세월호 선장과 123해경 함장은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른들의 말만 믿고 있었던 304명의 아이들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고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상태에 빠지자 가장 먼저 피신한 사람들이 세월호 선장과 그 선원들이며, 이들은 자신들의 구조를 위해 옷을 벗은 채 승무원인 것을 감추었다. 또 172명의 생존자들도 절반 이상이 해경보다 늦게 도착한 어선들에 의해 구조됐으며, 근처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함정은 구명용 보트를 탑재한 헬기를 현장에 급파했지만 해군의 승인을 받지 못해 되돌아갔다.
한강 다리를 폭파하기 전 6~8시간의 서울시민이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세월호는 침몰 전 2~3시간의 구조시간이 있었다. 예고도 없는 한강다리 폭파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소식에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었고, 이승만 정부는 이를 잠재우기 위해 3개월 뒤 다리폭파에 스위치를 눌렀던 공병감을 사형 시켰다. 판결문은 “폭파 지시에 의해 공병감은 다리를 폭파했다”고 판시 하면서도 작전 지시를 내린 상관들에 대해선 그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 현재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공직자들 중 123해경함장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은 상태이며, 그 나머지 청와대 관료들과 해경 지휘계통 관련자들에 대한 허위보고서 작성과 직무유기에 대해선 구금되는 사법적 책임을 받은 이는 없다.
이승만 정부는 6.25 사변이 발발하자 ‘점심은 개성에서 저녁은 평양에서 먹을 것이다’라는 허위 정보를 퍼뜨려 사람들이 피난 갈 시간을 잃게 했다. 또한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이 바닷물에 잠기고 있는데도 방송에선 ‘전원구조’라는 오보로 가슴을 졸이던 국민들을 안심 시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여객운용연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이는 시행규칙을 개정했고, 2012년 일본에서 18년 된 세월호를 수입하여 운행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2014년 4월 16일은 세월호의 운용연한이 만 20년을 막 채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