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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예술의 르네상스, 그 주역을 만나다 (5) “소설은 카메라같은 것” – 소설가 강배훈

그는 묘산중 교사이기 이전에 소설가다. 그의 데뷰 시기는 유년시절 외가가 있는 낙민에서 노을에 물든 황강변을 보며 명확하지만 규정할 수 없는 끌림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그에게는 긴 산문이었다 한다. 그리고 지금도 현실의 것들이 식상해질 때면 유년의 시절처럼 처음의 것들을 들여다보려 하는데, 그러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할 만큼 그에게는 유년의 기억들이 깊이 각인돼 있다.
그의 산문적 토양은 대학시절 그의 작품이 전국 문예 공모에서 당선작으로 선정되면서 「오월 문학상」을 받게 했으며, 이후에는 진중문예에서 소설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통과의례처럼 작가로서의 진통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단지 공부만으로 받은 학위가 허무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후 취업도 포기한 채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으로 떠났으며, 부악문원에서 우리나라 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이문열(본명 이열(李烈))을 만나 그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는 당시 이문열 작가와의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함께 차를 마실 때면 선생님은 문학, 철학, 종교, 사상 등 정말 다방면으로 박학다식했다. 하다못해 이천에 테르메덴(실외온천장)이 생긴 배경, 맥줏집에서 기본으로 나오는 둥근 과자가 짠 이유 등 일상의 가십거리에도 거침없이 얘기했다. 선생님과의 티타임은 일주일에 서너 번 있었고, 언제나 유쾌했다. 선생님은 젊은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실제 자신의 소재로 쓴 경우도 있고, 우리 역시 선생님의 수다를 일부 영감으로 차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하며 합천문인협회에서는 간사로도 일한다. 그러는 세월 동안 글에 쫓기는 삶은 시나브로 정리하며 글에서 자신을 읽으려 했던 시절에서 삶에서 글을 읽게 되는 여유도 가지게 됐다.
그는 소설과 소설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노르웨이를 여행했던 적이 있다. 오로라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를 통해 보인다. 오로라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 분명히 있는 실체고, 카메라는 그 실체를 보여주는 도구인데, 소설은 바로 그 카메라와 같은 것이다. 우리 인간들 삶에도 오로라가 있다. 소설은 우리가 함께 하지만 우리가 인식 못하는 찬란한 삶들을 보여주려 한다. 소설가는 그런 카메라맨처럼 셔트를 누르기 위해 긴 기다림을 인내하는 사람이다”
/박옥화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