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인연으로 끝난 사연과 비화들 (1) – 이한석 합천녹색꽃화원 대표
올해는 1991년 지방자치 시대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며, 1995년에 시작한 민선군수 시대는 26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필자가 군입대전 1975년 청운의 꿈을 안고 합천군청에서 24년간 공직생활을 하다가 민선군수 시대의 1호 희생물이 되어 1999년 명예퇴직을 한 지 벌써 22년이 된다.
아울러 필자의 나이도 벌써 67살이 되었다.
이제는 필자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크고 작은 모든 악감정들과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싶어, 역대 민선 합천군수들과 좋은 관계로 만났다가 결국 얄궂은 관계로 끝난 사연과 비화들에 대한 진실을 필자의 양심과 명예를 걸고 처음으로 요약 공개한다. 혹시 논리에 조금 맞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편향된 점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었으면 한다. 필자는 희한하게도 역대 민선 군수들 선거를 적극 도와 모두 당선의 영광을 함께한 경험이 있다.
먼저 필자와 초대 민선 합천군수 사이에 있었던 사연과 비화들에 대한 진실을 공개한다. 초대 민선 합천군수는 우리 지역 고(故) 이상신 국회의원과 필자의 부친과 함께 골수 야당생활을 했던 계기로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아울러 필자의 가족들과도 꽤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런 인연 때문에 필자와 함께 살던 부친은 초대 민선 합천군수가 야인생활을 할 때부터 꼭 좀 도와주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필자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지만 당시 필자는 축산직 공무원이라 직접 도와줄 방법이 없어 민선 합천군수가 되기 전부터 옆에서 적극 도와오던 축산업을 하고 있던 친구들에게 필자 부친의 신신당부를 전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필자는 어느 날 합천읍 모 식당에서 당시 야인생활을 하고 있던 초대 민선 합천군수와 7-8명의 친구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날 점심식사를 마친 후 필자가 당선 가능 없는 국회의원 출마보다 초대 민선 합천군수 선거에 출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자, 동석했던 모든 친구들이 적극 동감을 했다. 그 후 일정기간이 지났을 무렵 국회의원 출마 계획을 접고 초대 민선 합천군수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우리 지역사회에 널리 퍼졌다.
필자는 이 소문을 듣는 순간 일말의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끼면서 적극 도와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이때부터 짝사랑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초대 민선 합천군수 선거에 출마했을 때 필자는 현직 공무원이라 앞장서 공개적으로 돕지는 못하고 합천초 동기생들과 얼마간의 협찬금을 모아 제공하였고, 수시로 관내 축산 농가들과 지역 선후배들을 만나 선거를 돕기도 했다.
이렇게 필자와 초대 민선 합천군수간에 나름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던 중에 제2대 민선 합천군수 선거에 필자의 일족 한 분이 출마를 했고, 필자의 형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선거 사무장을 맡았다. 이렇게 짜인 선거 구도를 악용해 그 당시 모 한 사람이 재선에 출마한 초대 민선군수에게 필자가 일족 선거를 적극 돕고 있다는 허위 사실로 중상모략을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필자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다시 한번 필자의 양심과 명예를 걸고 밝히지만 당시 필자는 일족 선거를 도운 사실이 없으며 오히려 필자의 일족 측에서 선거공격용 축산분야 관련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의리상 제공해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한 사실이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 제2대 민선 합천군수 선거 결과는 필자의 일족이 낙선을 했고 초대 민선 합천군수가 재선에 성공을 했다.
제2대 민선 합천군수로 취임하던 그해 연말쯤 IMF 때문에 추진하는 합천군 행정조직 개편 계획(안)에 축산과 폐지(안)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상황이 긴박한데도 당시 축산과장은 모른 체하면서 먼 산만 보고 앉아 있길래 필자와 계장들이 찾아가 소속 공무원들과 축산 농가들 입장을 봐서라도 축산과 폐지 반대 운동을 하자고 강력히 요구를 했다. 그러자 축산과장은 친구인 당시 군수에게 축산과 폐지를 동의해준 대신 자기 출신지역 면장으로 보내주기로 약속을 했다는 말과 함께 필자가 대신해서 축산과 폐지 반대운동을 해보라고 지시를 했다.
필자는 그 다음날부터 관내 군 의원들과 축산관련 단체장들 그리고 일반 축산 농가들에게 축산과 폐지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뛰어 다니던 중에 일부 군의원과 축산 농가들이 축산과장 미워서 축산과를 없애버리라고 하면서 필자에게 듣기 거북한 모욕과 면박을 주었다.(그 이유는 차마 공개할 수 없어 생략함)
이런 소리를 들은 필자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와 당시 축산과장과 군청이 뒤집힐 정도로 크게 다투었다. 그날부터 축산과장은 당시 친구였던 군수를 수시로 찾아가 본인의 부정행위를 숨긴 채 필자를 중략모략하며 인사조치를 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었다는 소문을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듣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필자를 제2대 민선 합천군수 선거 과정에서 생긴 오해와 당시 축산과장의 중상모략에 대해 단 한 번의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또 단 한 번의 해명이나 변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대기발령을 한 것이지만 필자의 업보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날까지 필자의 대기발령 사유가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숙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필자는 대기발령을 받고 있던 10개월 동안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복직 발령을 요청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어 결국 명예퇴직을 하게 되면서 필자와 초대 민선 합천군수는 처음에는 좋은 인간관계로 만났다가 결국에는 얄궂은 인간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필자는 퇴직을 한 후 10년 동안 일상생활을 완전 폐한 후 오직 인간적 배신감에 대한 복수심만을 키우며 엄청난 고통과 방황 속에 피폐한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약이란 말과 불교의 고사성어인 회자정리(會者定離 :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다)의 뜻을 되새기며 가족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무병장수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볼까 한다.
이 글은 상대방을 공격할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니고 진실을 공개하기 위해 쓴 것인 만큼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