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 (26) | 아프리카의 가난과 해방 후 우리 민족의 가난 – 권길홍 수필가
해방 후 우리 민족에게 닥친 가난과 아프리카의 가난은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우리의 가난은 일제의 수탈 때문이거나 정치가 잘못 되어서라 하고, 아프리카는 무지한 탓으로 돌린다. 또 그 가난이 생긴 이유나 시대와 장소가 다르다고 하면서도 진단은 비슷하다. 강대국의 식민지로서 착취를 당했고, 식민 시대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일까?
우리는 지금 우리가 겪는 모순된 통치구조나 역사적 사실까지도 식민지 시대의 잔재라고 그 탓을 하기를 좋아한다. 그럼 그 시대를 이끌었던 우리 조선의 통치계급은 다 어디로 갔나? 이런 남의 탓을 하는 게 버릇처럼 길들여진 우리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식민지로서 강대국의 지배를 당했던 모든 나라가 가난했을까? 간단히 얘기해서 초기의 개국당시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나? 영국의 무지막지한 세금부과로 인한 수탈에 저항하면서 대영제국과 싸우겠다는 자세를 지도계급은 보여주었고, 국민 모두를 뭉치게 하는 건국의 정신을 길러주었다. 그래서 미국 독립선언문에 나타난 생명, 자유, 행복이라는 그 위대한 가치가 싹텄다.
또 일본의 개항은 자발적이었나? 영국이나 미국의 철선으로 강요된 개항이었고 그 개항으로 지배자들의 자각이 있었기에 오늘의 일본이나 미국이 있지 않았을까?
일본은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미국은 식민지 시대를 겪고도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 우리도 단순히 지금 겪는 어려움의 원인을 식민지 탓이나 남의 탓을 할 때가 아니다.
또 역사의 낭만적 자세인 “민중이 역사를 이끌어 간다”라는 감상적 역사관을 맹종하면 지배계급의 무책임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된다. 분명 역사는 민중과 지배계층의 두 바퀴가 동시에 굴러가야 하는 건 맞지만 기업가라는, 공무원이라는, 군인이라는, 정치인이라는, 지식인이라는 이 나라의 핵심세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와 중국을 둘러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룩셈부르크니 모나코와 스위스, 중국의 온갖 집들을 한 건물 안에 배치하여 외부의 침입자들을 방어하려 한 건물을 보며 침략을 당했다고 식민지가 되거나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곳곳에 설치된 포대니 성벽들! 침략을 당하고 그 후에 어떤 자세로 그 일을 받아들였는지를 알아야 하고 어떻게 대비했는지도 알아야 아프리카처럼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우리나라처럼 합병까지도 당할 수 있는 예측이 가능하다.
우리도 임진왜란(1592년)을 겪은 후에 무엇을 느꼈고 다음에 닥칠 국가적 재난에 어떤 대비를 했는지 돌아보아야한다. 임란 후 불과 4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병자호란(1636년)까지 당했다면 왜 속수무책으로 당했는지 그 이유와 원인을 캐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 당시의 조선조를 이끌었던 지도계급과 왕이라는 인간들이 백성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청일전쟁은 1894년 일어났는데 임란과 호란을 겪은 후 30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갖추거나 대비했나?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아프리카의 기아와 가난이 식민제국주의의 탓이라고 말하면 우리나라와 같이 말하겠다. 왜란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명나라라는 허울 좋은 대국에 의지하면 결국은 호란을 겪게 되고, 청일전쟁을 우리 마당에서 치른 꼴을 보고도 아무 대비도 안하면 결국은 나라가 합병이 된다고! 그 게 식민지를 겪었던 우리의 경험이다.
그리고 가난하다는 문제도 식민지를 겪어서 가난한 게 아니라 식민지를 겪어도 정신 못 차린 지도계층의 무능한 탓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