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海公園과 陜川사람의 自尊心 – 文谷최상호 합천군 유림회장
우리 합천은 때 늦은 정치논쟁으로 실낱같은 공원 명칭하나로 양분되어 화합을 해치고 있다. 특히 우리 합천군이 인구감소로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보도도 수차에 걸쳐 발표되어 안타까움이 더해 가고 있는 이때, 고향에서 대통령이 나왔다는 역사마저 흔적 없이 지워야 되겠다는 서명운동을 하는 일부 군민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해 붓을 들었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고도의 정치행위이다. 우리합천 사람은 정치적 판단이나 해석은 정치인이나 史家에게 맡기고 우리는 자랑스럽고 따뜻한 고향을 만들어 후손들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축복이라고 느끼게 하여 주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일제강점기부터 혼란과 혼돈의 건국과정을 보았고 초대 대통령과 19대 대통령까지의 정치적 평가와 우리 국민이 실제 체감하는 평가를 체험한 사람이다. 정치적 평가는 정권에 따라 달라졌고, 체험의 평가는 정치인의 바람에 휘둘린 사람을 제외하고는 항상 변함이 없었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서 정치적 평가는 문외한이고 우리 생활인의 상식적 판단을 기준으로 본 역대 대통령을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목표와 실적 등 몇 가지 기준에 의해 평가하여 공과를 가려 보고자 한다.
첫째,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를 나라답게 건국하겠다고 하여, 민주공화국으로 정체를 확립하여 자유민주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고, 수차의 내란을 효과적으로 평정하였으며, 이승만 라인과 독도를 점유하여 일본으로부터 실질적 영토를 보존하는 등, 나라의 기반을 다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과 혼란의 세계 최빈국에서 자가용 타고 친정갈수 있고 튼튼한 안보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고 팔을 걷어, 중화학공업을 육성 발전시키고, 과학입국 정책으로 선진국으로 도약 할 수 있는 국력을 배양 하였고, 박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삼김(김종필 김영삼 김대중)의 대통령 자리다툼은 나라를 누란의 위기로 몰아갔으며, 특히 일부 세력은 민중을 동원한 정변을 획책한다는 등 유언비어가 유포되고 있어 대통령 부재에 따른 위기의식이 민심에 팽배되었다. 이에 시해사건을 수사하면서 권력의 중심이 과도기를 거쳐 제 5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전두환 대통령은 전국적인 절대 지지를 받아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단임으로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언론의 횡포를 막고, 사회악을 일소하고, 물가와 집값을 안정시키고, 대외적으로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고 약속 하였다. 이때의 사회상을 보면, 관공서와 상점은 상이군경과 깡패의 강매가 줄을 이었고, 영세 언론사는 기자의 부정한 수입으로 운영되었고, 물가와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통행금지가 있어도 밤거리는 공포의 거리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하여 이런 부조리를 일소하여 약속을 지켰고, 전자산업 중점육성으로 세계 1위의 선두주자로 만들었으며 한국형 원전개발로 원전기술자립과 세계 최고의 원전기술을 확보하였고, 올림픽을 유치하여 한국의 위상을 만방에 과시하였다. 당시의 국민 여론은, 일부 정치인을 제외하면, 이제 살만한 나라가 되었으며 조국이 자랑스럽다고 회자되었다. 전 대통령 퇴임 후 3대 15년 동안 서울의 택시를 타면 하나같이 전두환이 한 번 더 나와야지 못해 먹겠다는 기사들의 푸념이 국민들의 여론을 대변하였다.
둘째, 쿠데타와 대통령의 평가
쿠데타는 프랑스어로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로서 지배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으로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고 정의 되어 있다. 그래서 5.16은 혁명과 쿠데타로 이름이 왔다 갔다 했다. 그렇다면 군인의 힘을 동원한 무력 쿠데타는 군사 쿠데타라 하고, 국민을 미국 수입소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뚤 려 죽는다고 거짓 선동된 다중의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행위는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이를 문민 쿠데타라 할 것인가? 정치를 모르는 우리들은 정권을 잡는 방법이 모두가 옳치 않아 보이는데, 대통령의 평가는 권력을 어떻게 잡았는지 보다는 얼마나 정직한지, 또 얼마나 국민이 살기 좋아졌는지가 그 척도가 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문민정부의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를 바로 세운다고 역사를 거꾸로 매달았고,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큰소리 쳐 한일관계를 악화시켰고, 한반도에는 영원히 전쟁이 사라졌다고 하여 안보의식을 약화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빛 정책으로 핵무기 개발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며 거액을 지원하였으며, 두 대통령 모두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러한 실책으로 이북은 수소폭탄과 세계 어느 곳이나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힘의 절대적 열세에 어쩔 수 없이 종북 외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정치적 바람에 휘둘린
합천의 아픈 역사
단재 신채호 선생이 우리나라 5천년 역사에서 3걸을 꼽는다면 을지문덕 장군과 이순신 장군 그리고 정인홍 영의정을 꼽겠다고 내암을 높이 평가하였으나, 인조반정의 정치적 희생으로 1908.4.30일 신원될 때까지 역적으로 낙인찍혀 역사의 뒤란에서 신음할 때, 우리 합천에서는 정치바람에 동조하여 앞 다투어 모든 기록을 스스로 훼손하여 역사를 복원할 아무런 자료조차 없다. 나라에서 영남의병장이라는 직첩을 받은 내암보다, 영남 관할의 의령에서 창의한 곽재우 의병장의 평가가 월등하여 의병의 대명사가 되어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물론 곽재우 의병장의 供獻을 과장되었다는 뜻은 전혀 아니고, 내암선생이 처형되자 합천의 문중마다 내암과 거리두기를 하여 모든 기록에서 내암을 삼제(芟除)하여 그 흔적을 지움으로서 역사적 평가가 폄훼(貶毁)된 안타까움에 있다. 그리고 남명선생은 인조반정 이전까지는 남명과 퇴계를 유학 정통성의 쌍벽으로 보아 그 우열을 다투는 논쟁을 한 정맥고풍변이 진주 수곡의 하 씨 문중에서 발견되었다. 그 내용에는 유학 정맥의 요건을 설파하고 남명이 이에 합당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인홍의 처형으로 남명학파의 몰락과 스승으로서의 도덕적 책임을 지워 역사에서 퇴장시켜 남명과 퇴계는 커다란 격차를 보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지켜야 할 우리의 자존심을 외부의 정치적 바람에 휘둘려 남보다 먼저 던져 버려 아무것도 지닌 것이 없는 우를 범한 선조들이 있었다.
끝으로, 합천인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자존심과 일해공원.
전국에 산재한 15만 향우들은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고향이라는 자부심으로 고향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고 있어 전두환 대통령의 미미한 흔적인 공원명칭만이라도 지키고자 지면을 통해 그 뜻을 밝혔다. 그리고 합천에서 고향을 지키는 군민들의 대다수가 신문사 주관의 여론조사에서 본 바와 같이 일해공원의 명칭을 존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러므로 합천군의 방침도 흔들림 없이 존속 결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일부 반대 민원을 접수하여 처리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요 쟁점은 공원의 명칭은 2011년에 제정된 지명표준화 지침에 위배되었다고 하는데 이 공원 명칭은 이 규정 시행 이전인 2008년에 제정되어 이 규정에 적용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고, 또 그 명칭에 “새천년 생명의 숲”에 미련을 갖는 것 같은데,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용어로 이미 용도 폐기된, 생명이 다한 용어임으로 이에 집착해서는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위에서 본바와 같이,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국민이 본 대통령은 수 천 억 원을 들여 기념관이다 도서관이다 실명을 붙여 성역화 시켰는데, 국민이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체감한 대통령은 돈 한 푼 들지 않은 공원 명칭 하나로 이렇게 편 갈라 싸우는 것은 너무나 애향정신이 결여되었다고 보여 지며, 또 군행정은 사리판단보다 눈치행정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 합천은 예로부터 인물의 고장이라 하였다. 조선 태조의 왕사 무학이 이 땅에서 태어났고, 조선 최고의 선비 조식 선생과, 우리나라 5천년 역사에 3걸(三傑)로 추앙받는 내암 정인홍의 고향이며, 우리나라 대통령 중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 대통령이라고 체감하는 전두환 대통령이 우리 고향 출신이다. 이는 하늘이 준 축복이며 다시 못 올 영광이다.
우리 합천군민은 정치인이 아니다. 다만 합천을 사랑하고 합천을 자랑스럽게 가꾸는데 서로가 양보하고 화합하여 합천에서 태어날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합천을 물려주고, 합천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시대적 역풍을 이겨낸 선조라는 평가를 받도록 다 함께 노력 합시다. _최상호 유림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