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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반세기 전, 어느 전경(戰警)의 신병 훈련 실화 (1) – 정병수 재경합천문인회 회원

필자는 반세기 전 병역의무로 전투경찰(Combat Police)에 지원하여 1974년 10월부터 1977년 7월까지 34개월간 복무했다. 요즈음 복무 기간은 육군과 해병대의 경우 21개월, 해군이 23개월, 공군이 24개월이라 하니 비교적 긴 기간이다. 당시 국내외 정황은 1968년에 김신조 등 무장공비 30 여명이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하여 청와대를 침투하려 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국민들의 반공의식을 강화시키고, 전투경찰이 창설되는 계기필가 되었다. 또 북베트공이 남베트남과 1973년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불과 2년 만에 남베트남을 적화 통일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의 도끼 만행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한반도는 초긴장 상태였다.
전경은 지원자 중에서 필기시험과 체력 검사를 거친 합격자 중에서 논산에서 10주간( 전반기 6주간은 기초 군사훈련, 후반기 4주간은 경기관총 등 취급), 경찰대학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4주간 총 14주간 즉, 100일간의 교육과 훈련을 극복해야 전투경찰 일경(一警)이라는 계급장을 달수 있다. 최근 이사를 하다가 우연히 반세기 전 필자의 신병 훈련 기간은 물론이고 전역하는 날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적은 일기장을 발견하고 놀라움과 함께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당시 군은 통신보안 또는 서신보안이 강조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다. 그렇다고 필자의 일기장에 기술(記述)된 내용 중 최소한 훈련기간에 흘린 땀과 눈물, 애환의 이야기는 버리기에는 아쉬워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또 공개한다면 반세기 전의 신병 훈련실화(實話)란 점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고, 필자와 동 시대를 살아가는 예비역에겐 잠시 잊었던 훈련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촉매가 될 수도 있고, 요즈음 후배들에겐 반세기 전의 신병훈련과 방법과 강도면에서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비교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유로 비록 내용이 다소 미흡할 지라도 내 일기의 일부분을 용기를 갖고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돌이켜보면 이제는 추억이 되었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신병 훈련시절의 장면이 문득 떠오를 때면 먼저 스산한 분위기, 자연스럽지 못함, 민주적 리더쉽의 부재 등이 떠올라 눈앞이 흐려지곤 한다. 또 가능한 일기장 원본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려 하다 보니, 당시 훈련이나 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훈련에서는 훈훈한 얘기도 많았음을 꼭 더 붙이고 싶다. 또 훈련 상 어쩔 수 없이 고통을 줄 수밖에 없는 소위 악역을 맡은 훈련조교들의 심정을 훈련병들이라고 모를 리가 없다만, 도를 넘어 훈련병들을 괴롭히는 다소 불펀한 얘기도 실화란 입장에서 이해하여 주기를 바란다.
아무튼 훈련받던 시절의 남북 1인당 소득은 지금처럼 남한이 앞선 것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엇비슷하거나 다소 처졌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하마터면 쓸러질 뻔 했다. 그렇던 남한이 이제 반세기만에 세계 10위 전후의 경제대국 대열에 속하는 것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아무쪼록 이 연재를 통하여 그 누구도 피해를 보거나 명예가 손상되는 경우가 없기를 바라며, 연재를 허락해 준 합천신문 박황규 발행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