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마음 (4) – 변명규
마음의 산책
어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끝내면 늘 강가로 갔습니다. 강가에 서서 돌들을 힘껏 물속으로 던지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를 궁금해 하던 그의 친구가 하루는 물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왜 아침마다 쓸데없이 돌들을 주워 깊은 강 속으로 던지는가?”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돌을 던지는 게 아니라네. 아침마다 교만이나 이기심 등 하루 동안 쌓인 나의 죄악들을 저 깊은 강물 속으로 던져버리고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네.”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해도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생각만 하기보다 무언가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다짐을 지켜나가고자 한 것이다.
늘 부족한 자신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 능력도 없고, 욕심만 많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모르니, 이럴 바엔 차라리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완전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조물주는 당신을 만들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내 속에 든 교만과 이기심을 저 멀리 던져가며 완벽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현재 진행형 인생”인 것입니다.
한숨어린 번민으로 잠 못 이루는 이, 알고 보면 하잘 것 없는 고민일 수 있고, 태양이 빛날수록 그늘은 더욱 짙듯이. 행복해 웃음 짓는 얼굴 뒤에 아픔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삶에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고통으로 번민하지 말며, 세상 흐름에 따라 하루하루를 최선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아픔의 응어리 누구나 가슴에 안고 살아갑니다. 실의에 빠지지도 말고, 오늘의 아픔에 좌절하지도 말았으면 합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요. “우리 인생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 입니다.
‘인은 노를 쓴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많은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많은 경험을 하면서 지혜를 터득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다듬어지고 만들어지고 익어가는 것이다.
마음의 평안
마음속에 큰 불안을 갖고 웃음을 잃어버린 부자가 있었다. 이 부자는 돈이 많아 부러울 것 하나 없이 호화롭게 살았지만 늘 불안과 초조를 느껴야 했다. 이 때문에 안정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어느 날 궁리 끝에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는 그림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부자는 거액의 돈을 상금으로 내걸고 화가들로 하여금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다시 말해 그림 공모를 한 것이다. 정해진 기한이 되어 화가들이 완성한 그림을 전시하는 날이 되었다. 전시장에는 많은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부자는 전시장에 붙어 있는 그림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림에 조예가 깊은 분의 조언을 듣기도 했다.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들이 참으로 많았다. 어떤 그림은 평화스러운 정원 풍경이 묘사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산 밑에 호수가 있었고 그 호수 위에는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지나쳐 가버렸다. 어떤 그림은 평화스러운 시골 전경이 묘사 되었다. 소는 여물을 씹고, 개는 마당에서 졸고 있으며 아지랑이가 보일 듯 말 듯 피어오르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그림 앞에서도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많은 그림이 전시되었지만 부자에게 평안을 가져다주는 그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걸린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 그림은 평안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다. 벼랑에서 거대한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한쪽 옆에 로빈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었다. 금방이라고 일진광풍이 몰아치면 그 둥지는 폭포의 물에 휩싸여 천길만길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 같은 상황이 묘사된 그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을 품고 있는 로빈새의 눈 속에는 불안과 공포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평화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림을 한참 동안 보고 있던 부자는 곧 그 그림을 샀다. 그리고 그는 그 그림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평안을 주는 것은 외적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내적 상태로구나!’ 그것이 곧 마음의 평안인 것이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글에 보면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함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하는 데서 생기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좋은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좌우명으로 삼아 늘 지니고 다니면서 지켜야 할 인생지표인 것이다.
불교용어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같은 사태를 두고 사람마다 그 해석이 다르다. 왜 그럴까? 그것이 바로 그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주위의 환경이나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변할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마음을 자기 자신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가 흔히 있다. 정말로 자기의 마음을 자신 있게 잘 다스릴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