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정의와 정직이 필요한 사회

공원석
논설위원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위(衛)나라 왕에게 구변(苟變)이라는 사람을 관직에 추천하자 왕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나도 그가 뛰어난 건 알지만 그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매기면서 달걀 두 개를 받은 비리 때문에 채용하지 않는 것입니다.”그러자 자사가 말했습니다.“성인이 사람을 관직에 임명하는 방법은 목수가 나무를 쓰는 것과 같아서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리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달걀 두 개 때문에 뛰어난 장수를 버리시면 안 될 것입니다.”라고 하자 왕이“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옳지 않게 재물을 취했다면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위나라 왕과 썩은 부분은 도려내고 나머지만 써도 좋은 재목이 될 수 있다는 공자님 손자의 주장은 오늘날에서도 논쟁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선거나 공직자의 임명 때마다 후보자의 자질이 문제가 되는 우리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고 봅니다.
항일지사 이남규(李南珪:충남예산출신.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4대가 나란히 안장되었음) 선생은 이에 대해“자사가 구변에 관해 위나라 왕에게 말한 것에 대한 논변(子思言苟變於衛侯辨)”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나무의 단점이야 먹줄을 대서 그 부분을 잘라내면 장점은 그대로 남아 있겠지만 사람의 단점을 어떻게 먹줄을 대서 잘라낼 수 있겠는가? 또한 나무의 단점은 외형적인 것이지만 사람의 단점은 내면문제이다. 내면에 단점이 있는데도 등용할 수 있다면 속까지 썩어버린 나무도 기둥이나 대들보로 쓸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을 관직에 임명하는 일은 천하와 후세를 격려하고자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재주와 행실이 모두 갖추어진 자를 얻어서(찾아서) 쓸 수 없다면 차라리 행실이 올바르고 재주가 없는 자를 쓰는 것이 옳지, 재주만 있고 행실이 안 좋은 자를 쓰지 않는 것이 옳다.”라고 했습니다.
자사처럼 훌륭한 분이 재주가 있다고 해서 행실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을 천거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이 말의 진위는 꼭 믿겨지지는 않지만 이남규 선생의 글은 명쾌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내용을 갖고서 지금도 새로운 논쟁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날 우리사회는 돈 잘 버는 것이 최고요, 뛰어난 인재 한 사람이 10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칭송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필자가 학창 때는 정의(正義)와 정직(正直)이 가장 우선적인 덕목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의란 단어가 슬슬 꼬리를 감추더니 정직마저 마비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 자리엔 경제가 차지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정의와 정직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목숨연장을 위한 삶도 중요하고, 부요한 삶도 필요하지만 평화롭고 안정되며 대접받는 삶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뛰어난 능력의 발휘도 중요하지만 근본이 바로서고 실천되는 삶이 함께 갖추어진 사회가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교육에서 놓쳐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