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빨래터에 가고 싶다 – 문경자 논설위원
며칠 전 백화점에서 산 블라우스는 손세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양념이 튀었다. 물 티슈로 대충 지워도 얼룩이 남아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먼저 블라우스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빨래 비누 대신 꽃향기가 나는 물비누를 꽃그림이 그려진 세숫대야에 부은 다음, 손으로 조물조물 빨았다. 바글바글 거품에 향기가 나니 손 빨래하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얼룩도 금방 지워지고 내 손등에 묻은 비누방울이 예쁘다. 손빨래를 하면서 어머니가 빨래하던 모습이 그려졌다. 어머니는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지만 그 중에서도 빨래하는 일이 기억에 남아있다. 자그마한 키에 쪽진 머리는 단정하였다. 무명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 부지런하고 말이 없는 얼굴은 온화해 보였다. 농사일을 하다 보면 하루에 한번 아니면 더 많은 빨래를 하는 일도 있었다. 아낙들이 모이는 빨래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하는 곳이다. 내가 본 기억대로 적어 보면 봄에는 파릇파릇 돋아 풀포기들이 자라 풀꽃을 피우고, 여름엔 물 잠자리가 날아 다니며, 가을에는 작은 나뭇잎들 단풍이 들었다. 늘어진 버들가지는 물속에 비친 그림자를 본다. 겨울은 얼음이 얼어 그것을 깨고 빨래를 하기도 한다. 집에서 끓인 물을 받아 옷을 담가 와서 빨기도 하는데 금방 식어 버린다. 납작한 돌멩이 위에 비누칠 한 옷을 올려놓고 두드린다. 어머니의 팔은 방망이를 올렸다 내렸다 리듬에 맞추었다. 그 소리가 한을 날려버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냇가는 어머니들의 놀이터와 같아 우리도 따라 나와 아버지 양말이나 손수건을 빨면서 물과 친하게 되었다. 물속에 양말을 넣고 살살 흔들며 아버지 발이 간지럼을 타는 것 같았다.
빨래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도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널어 놓은 옷들은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내가 그린 그림과 같았다. 손으로 짜서 널은 옷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 마당에 흙이 파여 옹달샘처럼 맑은 물이 고였다. 마루 끝에 앉아 그것을 세는 것도 산수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셈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빨래가 마르면 걷어 옷을 개는 일도 수월하지가 않았다. 여름에는 습기가 많아 조금 두꺼운 옷은 잘 마르지 않고 비릿한 냄새가 나기도 하였다. 그런 것들은 골라서 다음날 또 말려야 했다. 고단한 날이면 어머니는 빨래를 개다가 어깨를 펴고 오른쪽 손으로 왼쪽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삼베 옷은 풀을 먹여서 빳빳하게 해서 중간쯤 마르면 다시 개서 보자기에 싸고 발로 꼭꼭 밟아주었다. 우리도 따라서 밟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어머니와 놀이하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떤 옷들은 밟아도 펴지지 않아 다듬이질을 해야 했다. 매끈한 다듬이 돌은 집집마다 두 개의 방망이와 가지런하게 놓여있어 보기만해도 서로 짝꿍처럼 보였다. 옷을 잘 개어 올려 놓고 방망이 소리를 맞추어 리듬을 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빗나거나 방망이에 맞아 옷에 구멍이 나고 망가져 버린다. 우리도 따라 해보다가 옷을 못쓰게 되어 꾸중을 듣기도 했다. 지금은 민속촌이나 가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렇게 빨래에 대한 기억을 쓰다 보니 어머니의 잔잔한 웃음이 내 손 등 비누방울이 되어 날아간다.
블라우스를 그물망에 넣어 탈수기로 돌렸다. 금방 꺼내서 널어 놓고 보니 거의 다 말랐다. 세탁기가 있어 누구나 쉽게 빨래를 할 수가 있다. 요즘 세탁기는 여러 가지 용도로 나와 있어 원하는 데로 사용하며 시간 절약도 되었다. 세탁기 속에 있는 빨래를 꺼내는 일도 귀찮을 때가 있다. 어머니는 그 많은 빨래를 해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처음 세탁기가 나와 집에 들여 놓고 빨래를 하는데 너무 신기했다. 단추 하나 눌러 놓고 노래 듣고, 책 읽고, 건강체조 하고 그래도 시간이 많아 부침도 하고 한 잔의 달콤한 커피에다 빵이라도 곁들여 먹으면 행복을 누린다.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깨끗하고 향기까지 나는 빨래를 하다니 혹시나 마술을 부리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좁은 공간에 누군가 앉아서 하는 것도 아닐 텐데 하는 의문을 품어보며 혼자 웃음이 나왔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그 속에 옷을 넣어 헹구고 하는 일을 반복하는 어머니의 아린 손을 생각하니 내 손가락마디가 오그라든다. 쏴한 마음이 아프다. 머리가 아플 때 짚어 주는 손은 따듯하고 약손이었다. 나는 가족들이 벗어 놓은 옷을 보며, 이것을 언제 다 빨아야 하나 하고 한숨을 쉬다가, 이게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세탁기가 다 해주는데 하고 생각하며 마음이 가벼워진다.
손빨래를 하던 그 때는 서로 간의 안부도 묻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곤 하였다. 아픔이 있으면 서로 위로하고 기쁨이 있으며 누구보다 더 축하를 보냈다. 마주보며 앉아서 하는 일은 서로에게 보이지 않은 위로와 즐거움이 묻어났다. 집안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것은 빨래하는 재미를 맛볼 수는 없지만 편리하다. 그래도 어머니 곁에서 아버지 양말을 헹구며 파란하늘 하얀 구름이 물속에 내려와 있는 그런 그림 같은 빨래터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