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하기가 두렵다.
정병수
쌍백초
총동창회장
학교를 졸업 후 사회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할 땐 누구나 부푼 기대 속에 열정적으로 일을 한다. 사회 초년생이라 조직에 동화되기도 힘들고, 일하랴 선배들 눈치 보랴 지루할 새가 없다. 그러나 힘든 시기를 그럭저럭 넘기고 5년이나 10년쯤 지나면 소수를 제외하고는 업무를 따분해한다. 대학 강의도 마찬가지다. 해외유학을 마치고 갓 부임한 젊은 교수는 의욕이 넘쳐흐른다. 강의는 물론이고 연구도 왕성하며 학생 지도에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고 정교수가 되면 차츰 열정이 식다가, 정년을 앞두게 되면 강의자체를 힘들고 따분해 한다. 교수의 연령과 강의와의 관련성에 관한 유머가 대학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갓 교단에 선 30대 교수는 열정이 지나쳐 채 소화 하지도 못한 어려운 문제나 이론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교단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된 40대의 교수는 중요한 내용만 가르친다. 반면에, 50대 교수는 교수로서 책임질 수 있는 내용만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60대의 교수는 어떨까? 난이도, 중요성과 책임여부를 떠나 생각나는 대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동안 주로 대학 행정을 하면서 틈틈이 강의하긴 하였지만, 환갑이 지난 늦깎이에 강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나로서는 기존 교수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나는 매시간 강의 준비에 바쁘기도 하지만, 강의 자체가 좋아 지루할 새가 없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학기가 끝나간다. 기말시험을 치고 학점을 부여하고 전산망에 올리면 나의 학사업무는 종결된다. 나이든 교수일수록 힘들어하는 것은 강의 자체 보다도 시험 답안지 채점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조교에게 채점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조교가 없는 나의 경우 직접 채점을 하다보면 그 심정이 이해된다. 어쨌든 이번 학기에도 기분 좋은 강의였다고 자평해 본다.
과거 경험에 의하면 한두 명의 학생으로부터 성적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받곤 하였다. 이번 학기에는 제발 그런 전화가 없었으면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열람 마감일 한 여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정병수 교수님이시죠?”
“예. 맞습니다만, 누구신지요?”
“안녕하세요. 교수님의 회계학 강의를 들었던 경영학과 김예림입니다.”
“아, 그래요? 이름이 기억나는구먼. 그래 방학은 잘 지내고 있고?”
“아! 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방학 때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성적을 봤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낮은 것 같아 전화 드렸습니다. 물론 교수님께서 공정하게 채점하였으리라 믿습니다만,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시는 교수님께 자극받아 결석도 안 하고,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물론 리포트도 다 제출했는데 B+ 이더라고요..”
“잠깐 기다려봐. 내가 성적을 확인 좀 해보자”
나는 출석부와 성적평가표를 펼쳤다. 시험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외에 중간에 퀴즈라는 이름으로 두 번의 시험을 추가하여 총 4회의 시험을 보게 했다. 거기에 출석점수와 과제물 점수도 고려하며, 특별히 좋은 질문을 하거나, 토론이 논리적이면 추가점수를 부여한다. 이런 내용이 출석부에 꼼꼼히 메모되어 있다. 사진도 첨부되어 있어 어느 학생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학생! 결석을 한 번도 안 했다고 말했는데 5월 첫째 주일에 결석을 한 번 했고, 기말 점수가 68점으로 안 좋네. 그런데도 B+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문제가 없다고 보는데…….”
“교수님 다 맞는데요. 제가 장학금도 받아야 하고요. 특히 다른 과목에 비하여 회계학 수업 정말 열심히 들었거든요. 학점을 조정해 주실 수 없으신가요?”
“학생 이야기를 들어보면 딱하지만, 학생도 알다시피 성적이 상대평가라서 조정하면 다른 학생이 피해를 입지 않겠나? 나로선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하네. 자 그러니, 학점 이야기는 그만 하고 방학을 의미 있게 보내도록 계획하는 것이 좋겠네. 그럼 전화를 끊겠네.”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전화너머로 학생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교수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못 들은 척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언젠가 졸업을 앞둔 학생이 내 학점 때문에 졸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울며 호소하는 바람에 괴로운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학칙상 졸업을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지금 사회생활하면서 나를 융통성이 없는 교수라고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다.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학부모가 자기 자녀의 학점이 나쁜 것에 대하여 교수에게 항의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한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한다고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학점 뿐 만 아니다. 평가라고 하는 성격 자체가 그렇다. 경영학의 대가인 피트 드러커 교수는 ‘사람은 평가받는 대로 움직인다.’ 라고 하면서,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평가인지 학기말이 다가오면 언제나 자문해 보게 된다.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 있듯이, 학점이 한 학생의 인생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울 따름이다. 젊었을 땐 옳고 그름을 쉽게 결정하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학점 부여 하나에도 신경이 쓰인다. 남을 평가한다는 것은 이제 두려움마저 생기는 것은 단순한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