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보는 풍수지리 | 갈 처사의 명당(明堂) – 정개모 합천군 문해강사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중국 동진시대 곽박의 저서 <금낭경(錦襄經)>을 효시로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도선국사(道詵國師)의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동외산선문(桐畏山禪門)을 기초로 하여 발전하였다. 그 결과, 중국과는 다른 한반도식 풍수지리설이 비보사상(裨補思想)에 바탕을 두고 정립되었다.
풍수지리란 바람과 물의 기운을 명당으로 이어가는 이론을 말하며, 이를 현대 과학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연과학(自然科學)을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시켜 사람의 운명(運命)과 미래(未來)를 예측하는 명리학, 역술(주역), 운세, 묏자리, 방위 등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사람은 누구나 년주(年柱), 월주(月柱), 일주(日柱), 시주(時柱)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를 합친 글자가 8자라 하여 “사주팔자(四柱八字)”라 부른다. 8자는 거꾸로 봐도 8자, 눕혀 봐도 8자라서 하늘이 정해준 타고난 운명으로 간주되며, 이는 만인부동(萬人不動), 종생불변(終生不變)이라 표현된다.
2020년 6월 초순, 부산에 거주하는 60대 조○○ 부부는 방위(方位), 음양(陰陽), 오행(五行), 천간(天干), 팔괘(八卦) 등을 무시하고 약 100평의 대지를 구입한 후, 4개월간 공사하여 철골 강판으로 아방궁에 버금가는 저택을 완공했다. 그러나 이사 전날, 조씨의 아내는 이유 없이 사망하였고, 조씨 본인도 이사한 며칠 뒤 사망하였다. 이처럼 단기간에 두 사람이 연달아 사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이사 운세와 주택의 방위를 점검하고 처방을 받았다면 이러한 불행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사람의 운명은 바꿀 수 없으나 피할 수 있다는 속담도 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한편, 조선 19대 숙종은 변복한 채 민정을 시찰하다가 수원 고을 성문 인근 강가에서 한 청년이 목관(木棺)을 옆에 두고 강가를 파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숙종은 이를 보고 청년에게 말을 건넵니다. “이곳은 묏자리가 아닌 듯한데, 무슨 이유로 파고 있는가?” 청년은 답하기를, “인근에 사는 갈 처사(葛處士)라는 풍수사가 이곳이 명당(明堂)이라 하여 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계속 흘러 진퇴양난(進退兩難)입니다,”라고 하였다.
숙종은 즉시 수원 현감을 불러 명령한다. “이 청년에게 명당 묏자리와 쌀 300석을 하사하라.” 그 후 숙종은 갈 처사의 거처로 찾아가 꾸짖었다. “그대는 무슨 이유로 청년의 어머니 무덤을 물이 고이는 강가에 쓰라 했는가?” 갈 처사는 태연하게 말합니다. “어르신, 걱정도 팔자입니다. 그곳을 파면 쌀 300석과 명당 자리가 생길 것인데, 아주 명당이지요.”
숙종은 갈 처사의 태도에 놀라며 다시 묻습니다. “그대가 사는 자리는 무슨 자리인가?” 갈 처사는 답하기를, “남들은 허술하다 하나, 제가 사는 자리는 임금을 만나는 자리니 역시 명당입니다,”라고 하였다. 숙종은 이어서, “그럼 임금을 만나는 날과 시각도 아는가?”라고 묻자, 갈 처사는 일진(日辰)을 짚어본 뒤 깜짝 놀라며 숙종 앞에 엎드린다. “미처 임금님을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며 용서를 구한다.
숙종은 갈 처사의 풍수지리설에 감탄하며 “훗날 내가 묻힐 자리도 봐줄 수 있겠소?” 라고 물었다. 갈 처사는 지체 없이 행장을 꾸려 전국을 둘러보고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는 서오릉(西五陵)을 명당으로 잡아주었다. 서오릉에는 명릉(숙종 계비 인현왕후, 인원왕후), 익릉(숙종비 익경왕후), 창릉(예종과 안순왕후), 경릉(덕종과 소혜왕후), 홍릉(영조와 정성왕후) 등 다섯 개의 능이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명당이다. 그리고 왕자의 태를 묻는 무덤을 태실지(胎室地)라 하는데, 경남 합천 인근 사천시 곤명면에는 단종의 태반과 탯줄이 봉안된 태실지(胎室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