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합천 지역 3·1만세운동 후 교육과 청년회 등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다. (2)

조찬용
삼가장터 3.1만세운동 기념사업회장

기미년 3·1만세운동 후 1920년에, 합천면 삼가면 초계면 청년회가 조직돼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물산장려운동’과 ‘형평운동’ 및 ‘소작운동’이 그것이다. 이는 남명(南冥)과 내암(來庵)의 민본사상과 기절(氣節)을 숭상하는 ‘정의(正義)에 앞장서는 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 12월 1일 동아일보 주필 장덕수 등이 3·1만세운동 후 서울에 있는 중앙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창립한 조선청년연합회 창립총회 때 조기순(曺基淳, 1890∼1961)은 삼가청년회(삼가구락부)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때 해방 후 국회의원에 두 번(3대, 4대) 당선된 최창섭(崔昌燮, 1899∼1979)도 함께 상경했다. 창립총회 때 대표자는 정(正)·부(副)로 나눠 정대표 84인과 부대표 39인을 선출했는데, 조기순과 초계면의 정두은(鄭斗殷, 1892∼1947) 및 합천면의 박운표(朴運杓, 1894∼1964)는 정대표로, 삼가면청년회 회원인 최창섭은 부대표로 선출됐다. 합천·삼가·초계 지역의 청년회는 3·1만세운동 1년 후 1920년 3월∼5월에 창립했는데, 각 지역별 회원수는 50명∼150명 정도였다.이처럼 조기순 정두은 박은표는 조선청년연합회(1920.12~1924. 4) 전국 13도 106개 지부 중, 삼가 초계 합천 지역의 대표를 맡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활동과 1923년 조만식(曺晩植)의 물산장려운동 때 맡은 바 책무를 다 했다.
그후 조선청년연합회가 1924년 4월 해산되자, 삼가·합천·초계 청년회는 삼가면 청년회원 최창섭이 앞장서서 조봉암 한종유 박헌영 등과 함께 사회주의적 단체인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1931년 5월까지 존속)을 서울에서 창립했다. 창립총회 때 합천면의 박운표와 함께 대구역으로 가서 상경한 최창섭은 집행위원으로 선정돼 핵심 인물로 활동한다. 삼가·합천·초계 청년회는 일제(日帝)의 방해공작에도 1923년 5월 진주에서 일어난 백정(白丁)들의 신분 해방운동인 ‘형평운동(衡平運動)’과, 1927년 2월 이상재 안재홍 신채호 등이 결성한 ‘신간회(新幹會)’에 참여하는 등 개혁적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또한 노동우애회(勞働友愛會)를 조직하여 소작쟁의 해결에도 적극 개입했는데, 1925년 삼가 노동우애회 최창섭 강창시 류백윤(劉伯允) 등이 지주들과 협의하여 52마지기를 새로운 소작인에게, 2,700마지기는 본래 소작인에게 환작(換作)하게 했다. 각 지역별 형평사원은 20명∼50명, 신간회원은 40명∼50명이었다.
형평사(衡平社)는 진주에 본사를 두고, 삼가 합천 초계 단성 산청 의령 거창 김해 안동 정읍 고창 서산 부여 이천 춘천 강릉 개성 재령 평양 등 200여개의 분사(지부)를 뒀다. 1925년 4월 3일 합천·삼가·초계청년회는 합천청년연합회를 결성하고, 정순종 변영철 최창섭 변승규 등 5명을 집행위원으로 선출하여 청년·노동·사회·특수문제 등 애국계몽운동을 효율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합천청년연합회는 서울에서 1924년 4월 이미 결성된 조선노동총연맹에도 가입하여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 노동개혁운동에도 참여했다.
당시 청년회 활동을 주도한 인물은, 합천면 지역에서는 박운표 정순종 김두윤 이명갑 이민우 강만달 강홍열 정순종 박종로 이선재 등이, 삼가 지역은 변영범 백상준 박태진 변영철 조기순(曺基淳) 최창섭 조창우(趙暢禹) 이여진 박석주 최진세 조복순(曺福淳) 이우문 이윤옥 윤병태 윤재순(尹載恂) 허전(許銓) 등이, 초계는 정원조(鄭元祚) 정두은 변승규 노호용 정광호 이수대 남상수 손치봉 등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선조들은 어러운 여건 속에서도 공익(公益)을 위해 헌신했다. 정유년 새해에는 이러한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보다 더 공정하고 투명한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끝)
*참고문헌: 동아일보 기사 1920년 5월 9일(초계청년회), 1920년 8월 9일(삼가청년회), 1921년 3월 15일(합천청년회), 1921년 6월 1일(삼일의숙, 송필영), 1921년 6월 7일(정양의숙), 1921년 6월 23일(구음의숙, 윤재현), 1922년 5월 22일(박운표, 조선청년연합회), 1922년 6월 7일(정양의숙, 노호용), 1922년 9월 13일(노동우애회, 최창섭), 1924년 6월 14일(박운표, 조선청년동맹, 형평사, 소작문제), 1925년 4월 29일(고등과, 삼일의숙), 1925년 5월 19일(삼일의숙, 신입생격감), 1927년 3월 9일(삼가농업보습), 1927년 3월 11일(삼가농업보습), 1927년 4월 2일(5개면민대회, 삼가농업보습학교), 1927년 9월 1일(합천교육계, 학생수), 1928년 4월 29일(합천유지회합, 삼가설립반대), 1928년 5월 12일(합천전군조합평의원), 1928년 7월 1일(합천군농업보습학교, 삼가면인가), 1929년 1월 1일(합천·초계형평사, 신간회), 1932년 5월 3일(합천형평사), 1938년 3월 13일(삼가농업보습학교 이전반대), 1938년 4월 14일(합천농업실수학교 개교)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