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뉴스홈

|독자기고| 네팔 트레킹의 교훈 – 윤임동 수필가·서예가

지난 추석 연휴에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 트레킹을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9일 이상 걸리는 긴 기간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이가 이순(耳順)을 넘어 5년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이번 추석은 연휴가 길어 수개월 전부터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고 집안에도 이해를 구했다. 체력과 고산증 문제는 걱정이 되었지만, 체력은 집 주변에서 평소 하던 걷기 운동에서 횟수와 시간을 좀 더 강화하기로 하고 고산증 문제는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담을 겸허히 따르기로 했다. 마침내 9월 28일부터 10월 7일까지 9일간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트레킹은 9월 30일 14시 칸데(1,770m)에서 시작했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4시간 정도 지났다. 대우랄(2,100m) 인근 지점이었다. 어린 4남매와 엄마가 우리가 가고 있는 산길을 같은 방향으로 계속 걷고 있었다, 제일 어린아이는 남자로 여섯 살쯤 되어 보이고 가장 큰 아이는 여자로 중학교 2학년쯤으로 보였다. 엄마는 40대 초반 정도로 추정되었다. 작은아이 남매와 엄마는 슬리퍼를 신었고 옷은 누추해 보이지 않았다. 큰아이 남매는 운동화와 메이커가 있는 옷을 입고 가방을 멨다.
오늘이 네팔에서는 ‘더사인’이라는 명절로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은 큰 명절이라 했다. 달력에는 휴일 표시가 6일간이나 빨갛게 되어있었다. 이 가족은 아마도 아빠는 외국에 돈 벌러 가고 엄마와 아이들은 명절을 맞아 외가에 인사가는 것 같이 보였다. 투정도 부리지 않고 걷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스러워 간식용으로 배낭에 넣어 둔 빵과 사탕 등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제일 어린 동생이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방긋이 웃으며 참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일행 두 사람도 배낭에 있던 간식을 모두 꺼내주었다. 다섯 시간을 넘게 걷는 다섯 식구의 긴 산길이 결코 힘들어 보이지만은 않았다.
가이드 안내에 따르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평소에는 한국인이 60% 정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추석 연휴는 한국인이 80%를 넘어 보인다고 했다. 한국인은 여행사나 산악회를 통해 수십 명씩 단체로 트레킹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에 서양인들은 가끔 눈에 띄는데 부부를 중심으로 가족끼리 오는 경우가 많았다.
10월 2일 07시 45분경 시누와(2,300m)가 바로 앞에 보이는 지점에서였다. 서양인 부부 두 쌍이 우리와는 반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외모로 보아 얼굴은 주름이 가늘게 지고 머리는 은발에다 몸매는 아름다워 늙은 모습이지만 곱게 보이고 귀티가 넘쳤다. 나이는 80세 정도로 보였으며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었다. 팔순이 넘는 그들의 도전정신과 가족사랑이 부러웠다.
10월 3일 21시 40분경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에서다. 소변을 본 후 자리에 누우니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잠자는 롯지(산장)에는 일행 6명이 있었으나 모두가 곤하게 자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옷을 두껍게 입고 밖으로 나왔다. 공용식당의 식탁 위에서도 잠을 자야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나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은 이미 모든 사람이 깊은 잠에 빠졌기 때문이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고산병을 염려해서다.
마당 가운데 있는 의자에 홀로 앉아 조용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추석 전날 밤이었다. 하늘은 맑아서 달은 한없이 크고 밝았다. 동쪽엔 세계 3대 미봉에 속하는 마차푸차레봉(6,997m)의 만년설이 서쪽엔 안나푸르나남봉(7,219m)의 만년설이 북쪽엔 안나푸르나1봉(8,091m)의 만년설이 병풍처럼 둘러져 나를 보호해 주는 듯 했다. 육체는 힘들었지만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러한 때에 가족이 옆에 있었다면 아픔도 나누고 정담도 나누고 사랑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1시간 남짓 지나니 두통도 어지러움도 사라졌다. 이번 네팔 트레킹에서의 가장 큰 교훈은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간절하게 느끼게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