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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혁명의 이름으로 (2) – 문계성 수필가

1975년, 월남전이 끝나자 모험주의적 공산주의 세력인 크메르 루즈가 캄보디아의 수도로 진입했다. 캄보디아는 공산주의 광풍에 휩쓸렸다. 크메르루즈의 수장인 폴 포트와 키우 삼판은 캄보디아의 모든 것을 부정했다. 그들의 신앙은 공산주의였고, 그들의 신은 모택동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국가건설을 부르짖으며 그들의 사상적 아버지인 모택동으로 부터 배운 대로, 열일곱 여덟 살 난 아이들을 소위 캄보디아 혁명에 동원하여 이 아이들의 손에 피를 묻혔다.
아이들의 영혼은 맑다. 너무 투명하여 하늘을 닮았다. 왜 그렇까. 그들은 아직 타락하거나 악마화 된 인간들이 가르치는 관념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 포트와 키우 삼판이라는, 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중독된, 그래서 이성은 박제된 이 사나이들은, 맑은 아이들의 영혼에 증오와 악마를 심어 주었다. 미쳐버린 아이들은 붉은 완장을 차고 떼를 지어 대창을 휘두르며, 그들의 이웃과 기성의 세대를 반동이라 부르며 공격했다. 아이들은 악마가 되었고, 그들의 영혼에서 이성은 눈이 멀었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3분의 1이나 되는 200만명이, 이 미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광풍에 휩쓸려 죽었다. 인간이 미숙한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참상이었다.
이들에게 인민은 고귀한 생령이 아니라, 한낮 정치적 소모품일 뿐이었다.
캄보디아의 평화로운 들판에는 2만 여개의 집단 해골 무덤이 발견되었고, 인류는 이 무덤의 들판에 킬링필드라는 소름끼치는 이름을 부쳐주었다.
미숙한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인간들이, 혁명의 이름으로, 평등의 이름으로 저지런 일이었다.
나에게 러시아 혁명사는 낭만적 서사시였다. 자유사상이 짜르의 전제정치에 대항한 것이 이 위대한 사건의 발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17. 10. 러시아를 장악한 것은 레닌의 볼세비키였다. 그리고 레닌의 사망 후 러시아를 장악한 자는 무자비한 도살자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의 치하에서 러시아 정교기독교인 2,700만 여명이 학살당하였고, 반동으로 몰려 학살당한 사람이 4,000-4,500만 명이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스탈린이 혁명의 이름으로 살해한 러시아 인민이 7,000만 명이었다는 말이다. 위대한 러시아 혁명의 사실은 대학살극이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 권력을 장악한 열열한 공산주의자 후르시초프 조차 이 무자비한 인간 도살자를 비판했다. 아마 그 조차도 불안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무슨 명목으로 수 천만에 이르는 인간을 도살하였을까.
그가 부르짖은 것은 인민의 평등을 위한 아름다운 혁명이었다.
지금도 세계의 도처에서는 아름다운 말로 포장된 혁명이라는 폭력이 춤을 춘다. 평등이라는 말은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만들고 모든 전제前提를 거부하게 만든다. 역사가 보여 준 것처럼, 어떤 부류의 인간들은 이데올로기를 위하여 혁명의 이름으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고 폭행을 가하며, 항변하면 살해한다. 때로 혁명은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인류의 이성은 과연 성장하고 있는가 ? 이 개명한 천지에도 정치적 폭력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이성이 눈감고 잠자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이성이 눈을 감고 잠자는 사이에, 누군가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며 선동할 것이다. 그 선동은 지극히 아름답고 친절한 말로 포장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경계와 무장을 풀고 이를 선의善意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 우리는 그들의 포로가 되어 우리의 자유와 풍요를 내어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성을 잠재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성이야 말로, 인류가 수 천 년 경험으로 확인한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면, 그 자명함이 아니라면, 단호히 거부하는 깨어있음을 보여 줄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