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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논단| “南冥學의 발원지” 합천 벽한정과 무민당 박인 (5) – 김무만 경영학박사

Ⅲ. 벽한정(碧寒亭)의 현황과 발전 방향
합천군 용주면 손목리(일명 이사리)에 소재한 “벽한정(碧寒亭)”은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33호로 지정되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사숙제자(私淑弟子)인 고령인 무민당((无悶堂) 박인(1583∼1640)이 학문을 닦던 곳으로 성리학을 연구하던 유학자들과 후학양성을 위해 1639년 건립한 것이다. 이 벽한정 뒷편에는 1914년 일제시대부터 용연사(龍淵祠)라는 사당을 건립하여 박인(朴絪)과 부친 박수종(朴壽宗), 아우 박위(朴緯) 등 3位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춘추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이곳은 남명의 아들 조차마의 부탁을 받아 박인이 남명의 연원록(淵源錄)인 <산해사우연원록> 및 <言行錄>과 <年譜>를 하홍도, 조임도, 임진부 등과 협조하여 세밀하게 검토하고 철저하게 고증한 뒤 정온의 교열를 거쳐 편찬을 완수한 곳이다. 남명 사후(死後) 약 60년만에 남명과 관련된 문헌의 1차적 종합정리 작업이 진행된 곳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표지석도 없고 주차장, 편의시설 등이 부족하여 뜻있는 사람들은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관계기관 등의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박인의 학문적 능력이나 지역의 지도자, 교육자로서의 업적을 살피고 연구하여 후세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학술대회를 비롯하여 벽한정 주변의 정화작업을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체험학습과 관광자원으로의 활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Ⅳ. 마치며
왜 합천 벽한정(碧寒亭)이 남명학(南冥學)의 발원지인가? 남명과 남명학을 연구하고 선양하는 일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남명정신의 적통 계승자이며 명실공히 남명학을 최초로 정립한 박인(朴絪) 선생의 공적은 여태껏 묻혀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박인 선생의 행적을 연구하고 선양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처사적(處士的) 사상과 행동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역 지식인들의 인문학적 책임이라고 본다.
합천 벽한정((碧寒亭)이 남명학의 발원지인 까닭은 남명이 사망한지 56년후 박인이 46세 되던 1628년에 남명의 셋째 아들 조차마(曺次磨)가 남명 선생의 연보와 사우록의 편찬을 박인 선생께 부탁했다. 그 당시 영남지역에는 쟁쟁한 학자들이 생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인에게 그 책무가 부여되었다는 것은 박인이 남명학파 적통 계승자로서의 위상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본다.
박인이 편찬한 문헌들이 현재의 남명학을 연구하는 토대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종합적으로 집필한 사람이 박인이며, 그가 집필.편찬한 장소가 벽연재(壁淵齋), 용연재(龍淵齋 : 용연서원의 전신)이기 때문에 지금 남아있는 이곳 벽한정이 “남명학의 발원지” 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중용(中庸)에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9경(9經)중에 첫째는 수신이며, 둘째는 “존현(尊賢)” 이라는 말이 있다. 존현은 현인(賢人) 즉 덕망있고 휼륭한 인물을 존경하라는 말이다. 정치를 할 때 존현을 중요시 해야 하는 것은 현인들의 바른 사상과 행동을 본받아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덕망있고 휼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도록 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인(朴絪) 선생은 우리 합천이 배출한 현인(賢人)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묻혀져 있던 남명학의 최초 정립자인 선생의 업적을 연구하고 선양하는 일은 남명선생과 남명학의 선양사업과 동등하게 이루어 져야 한다고 본다.
박인 선생은 학문적 능력이나 사우문인(師友門人)을 살펴보면 사회지명도가 대단한 인물임에도 그 동안 사학적(史學的)으로는 물론이고 교육학적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소멸되어 가던 남명학파를 재결집하려던 노력과 향촌사회에서 보여준 모범적인 지식인의 삶과 교육활동을 후세들이 본 받기 위해 유관기관과 향토사학자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남명학의 발원지인 합천군 용주면 손목리(일명 이사리)의 옛 용연서원의 복원 사업을 비롯하여 지금의 벽한정을 정화하는 등 박인 선생에 대한 존현사업을 하루 속히 시행하여 지역의 인문학적 체험공간으로 활용하는 한편 관광자원화하는 등의 조치가 조속히 이루어 지기를 희망한다. 앞으로 박인 선생에 대한 깊은 연구와 다양한 선양사업을 유관기관·단체와 문중(門中) 물론 지역사회와 함께 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끝)

<참고문헌>

  1. 池柾香, “17世紀初 南冥學派의 處士的 性向과 敎育活動(无悶堂 朴絪을 中心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석사학위논문, 1997.
  2. 朴 絪(1583-1640), <无悶堂集>, 碧寒亭, 1982. 3. 설석규 자음, <남명학과 정치철학 연구>, 남명학연구원출판부, 2001. 4. 성백효 편역, “<대학. 중용 집주>, 한국법령정보주식회사, 2009. 5. 조회환 지음, <유학자 조식의 수양방법과 이상정치론>, 비움과 채움, 2014. 6. 정옥자 지음,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선비>, 현암사, 2012. 7. http://www.hcinews.asia/ArticleView.asp?intNum=5619&ASection=00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