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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임분이 만난 사람| 김예슬, “농사 지으며 어울릴 또래농민이 필요하다”

이번 호부터 다양한 군민, 향우 대상으로 인터뷰 연재를 시작한다. 사는 얘기, 세상 얘기,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고민과 바람 등,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나누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가회면 대기마을에서 6년째 농민으로 살고 있는 여성청년농민 김예슬 씨를 7월 16일(화), 김예슬 씨 가족이 운영하는 카페 <토기장이의 집>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와 나눈 얘기다. -임임분 기자

자기소개를 해달라.
합천 가회 대기마을에는 21살 때 이사 와서 살고 있고 현재 26살이다. 부모님, 여동생,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다섯 가족과 함께 합천으로 왔다. 여성청년농민, 6년차 농민이다. ‘글과 함께’라는 뜻을 담은 ‘서와’라는 별명을 19살 때 지어 쓰고 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쓰는 사람이란, 이야기가 있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 내 삶이 자꾸자꾸 뭔가 쓸 꺼리, 얘기꺼리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내 삶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어떤 성장기를 보냈는가?
태어난 곳은 부산인데, 아버지가 목사라서, 도시 목회지 따라 옮겨 다니며 자랐다. 초등학교 졸업 뒤 동생들과 함께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어려서부터 너무 이사를 많이 해서, 정 들면 헤어지는 일에 대한 아픔이 있었다. 여기서 6년 살면서 정든 사람들이 있으니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들과 정 쌓으며 살고 싶다.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곳에 대한 갈망이 있다. 이 마을은 그런 고향 같은 곳이다. 현재 집도 빌려 살고 농사도 빌려 짓지만, 기회가 되면 근방에 집을 구해서, 정착하고 싶다.

어떤 인연으로 합천에 정착했을까?
부모님은 오랫동안 시골에서 정착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우리가 어릴 때부터, 그런 삶에 대해 얘기해왔다. 나 또한 도시보다는 시골이 좋고, 나와 맞다고 생각했다. 홈스쿨링할 때 만난 선생님 말이, 시골에 살 곳을 찾을 때는 도시에서 막연히 고르면 안되고, 직접 시골로 들어가서 찾아야 한다, 가까이 들어가서 집을 알아보고 땅을 알아봐야 보인다고 해서, 청송, 산청에서 몇 달씩 살면서 알아봤는데 적당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지은, ‘자중’이라는 별명을 쓰는 분을 알게 되었고, 우리 가족이 시골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살고 싶다는 얘기를 자중님과 진지하게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이 ‘이 집이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집을 둥근 형태로 지은 까닭도, 사람들과 어울려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길 바라면서 지은 집’이라고, 우리 가족이 살면 좋겠다고 빌려주면서 합천살이가 시작됐다.


부친은 이 공간에서 목회 활동도 하시나?
아버지의 목회활동이, 기존 교회처럼 십자가 세우고, ‘여기가 교회에요’라고 팻말을 달고 하는 방식은 아니어서, 그동안은 작게 가정예배를 하다가, 같이 예배하고 싶다는 가정이 더 늘어, 주일마다 지금은 여기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아버지는, 생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생명을 살리는 모든 일이 목회라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농사도 중요한 목회다. 생태적인 삶, 농사에 더 중심을 두고 살려고 하신다. 청년이나 청소년이 좀 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삶의 자리를 바꿔보고,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은 꿈이 있고 나도 그에 공감해 함께 하려고 한다.

동생들도 함께 농사를 짓는가?
여동생은 2년 정도 같이 합천에 살다가 지금은 자기 길을 찾아 서울에서 살고 있다. 남동생은 자연 가까이에서 음악하면서 살겠다 해서, 같이 살고 있다.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시작했는가?
뭔가 대단한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냥, 농사가 재미있었다. 흙 만지기가 좋고. 홈스쿨링을 해서, 이래저래 여러 고민을 할 시간이 많았다.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까? 나한테 맞는 삶은 뭘까? 나답게 살기는 뭘까? 홈스쿨링하는 친구들이랑 여행 다니면서 농사 경험도 좀 있었고, 내가 자연과 가까운 시골로 가서 농사 지으며 사는 삶이 나한테 맞겠다, 재미있게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가족이 함께 농사를 시작해서, 혼자 시작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가족이라는 안정감이 있어서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고도 본다. 농사 짓는 삶에 어떤 가치를 담아가는가에 대한 철학은, 농사 선배이자 이웃 농민들 사는 모습 보면서 많이 생각한다. 어쩌면, 관행농 하는 이들이 이웃이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합천 와서 만난 이들이, 다 소농에 농약 쓰지 않고, 최대한 자연과 친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들에게 땅을 살리고 지키는 일에 대한 농사철학, 그런 농민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배웠다.

합천에서 처음 지은 작물, 기억하는가?
농사 선배들이 좋아하는 작물을 심으라고 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우리 가족도 좋아하는 고구마(200평)를 처음 심었다. 첫 농사는 누가 해도 다 잘된다는 말처럼, 잘됐다. 선배들이, 처음부터 너무 심하게 친환경으로 하면 힘들어서 애들 다 도망가니까, 첫 해는 비닐 써 보라고, 비닐농사도 알아야 한다고 해서, 가르쳐주는 대로 했다. 비닐 까는 법도 알려주시고, 심을 때, 캘 때 와서 도와주신 덕에 첫 농사는 잘 했다. 아주 많은 수확물은 아니지만, 자급하고, 남은 양은 도시에서 만난, 아는 사람들한테 알음알음 팔았다. 내가 키운 고구마니까, 더 맛있을 줄 알고, 캐서 바로 먹었는데, 이상하게 맛이 너무 없어서, 팔 때도 살짝 자신 없었는데, 고구마가 후숙 해야 맛있는 줄 모르는, 그야말로 초보의 첫 농사였다. 이어서 이웃들이 생강농사 지어 생강차 만들어 팔고 있으니, 같이 하자고 해서 생강도 심고, 고구마, 감자, 양파와 함께 주력작물이 됐다. 겨울수입원이 필요해 유기농으로 전환 중인 농부에게서 감 사서 곶감도 만들어 판다.

현재 농사 규모는?
생강 농사하느라 해마다 조금씩 늘었고, 해마다 조금씩 들어, 세 곳의 땅을 다 합치면 1천 평 좀 넘는다.

농사 수입 외 수입이 있는가?
카페 수입으로 카페 운영비를 만들고 그 외 생활비는 농사 수입이 가장 크다. 부모님은 각자 공부한 내용으로 외부강의를 나가니 강사수입이 있고, 나와 동생도 각자의 경제활동으로 일정 수입을 만들고 있다. 동생은 음악활동을 하니 기타레슨을 하고, 나는 글 써서 원고료 받는다. 더불어 나는 독학으로 익힌 디자인 실력으로 이런저런 디자인 알바를 해 수입을 만들고 있다. 동생이랑 공연 다니며 버는 돈도 있고. 도시민보다 적게 벌지만 또 적게 쓴다고 보면 된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아주 쪼들리지도 않는 생활이다.

이후 농사 계획이 있다면?
아직은 우리 소유 땅이 없고 해마다 규모가 달라 아직 장기계획은 잡지 않고 있다. 다만, 씨앗 받는 농사, 토종작물 농사에 대한 애정이 있다. 다른 농사를 좀 줄이더라도 이어 가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땅을 사고 농사 규모가 잡히면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토종씨앗은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다. 젊은 농부니까 씨앗을 이어가라고 나눠주는 이들이 있어서 여러 가지 심고 있는데, 특히 콩을 좋아해서 콩만 스무 종류를 가지고 있다. 토종씨앗은 잘못되면 안되니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심어 살피고 있다.

가까이에 또래 친구가 있어 슬리퍼 신고 놀러갈 집이 있는가?
없다. 함께 사는 동생이랑 잘 통해서 같이 여행도 다니고 놀 때도 죽이 잘 맞아 또래 친구에 대한 갈증은 덜한데, 그래도 가까이 친구가 있으면, 슬리퍼 신고 놀러갈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다른 지역을 보면, 농촌살이에 관심 많아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곳이 늘고 있는데, 아직 합천에는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다. 내가 청년이니 관심이 더 가고, 하겠다고 하면 뭐든 도와주겠다고 하는 어른들도 곁에 있으니, 조금씩 친구들을 합천으로 불러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없으면 만들어야 하니까.
나도 낯을 많이 가리고 외향적이지 않지만, 내가 여기 있다고 먼 곳에서 친구가 먼저, 이 골짜기로 찾아오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해서, 지난해부터인가, 청년캠프가 열리거나 다른 지역 탐방하는 일정이 있으면 다니기 시작했다. 시골살이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하면, 그 인연으로 합천에 놀러오는 친구들도 생기더라. 아무래도, 내가 직접 다니면서 얘기하니까 합천에 대한 소문이 나더라. 그렇게 용기를 내 다니면서 알리는 일도 중요하더라. 기회가 닿으면 합천에서 청년농민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동생과 하는 공연활동을 6월 말에 예정했다가 날씨 탓에 취소한 일이 있는데, 다른 지역에 갔더니 취소한 공연에 대해 아쉬웠다는 얘기를 하더라. 반갑고 고마우면서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우리 카페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담쟁이인문학교>를 하는데, 그 저녁에, 쉬어야 하는 시간에 산골짜기까지 오는 이들이 있다. 쉬운 일이 아닌 줄 알기에, 대단하고 고맙다고 생각한다. 6월에 취소한 공연은 가을에 할 생각이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마을 어른들은, 젊은 청년이 시골에서 왜 그러고 있냐고, 농사 힘들다, 얼른 공부해서 도시로 나가라고 많이 얘기했다. 그럴 때마다, ‘저한테는 농사가 공부에요, 농사 지으며 살 생각이에요’라고 하고, 마을에서 꾸준히 농사 짓는 모습 보시니까, 이제는 어른들이 먼저 농사 짓는 방법도 알려주신다. 이젠 마을에서 외부인, 이방인 느낌을 안받고 산다.

생태농업, 도시농업 등 자연에 대한 관심, 농사에 대한 청년의 관심은 늘고 있다.
외지의 청년농민모임 같은 곳에 가면, 합천에서 온 사람은 나 혼자, 경남 전체로 봐도 별로 없다. 전라권, 충청권이 주를 이룬다. 내 경험만 봐도, 합천 와서 만난 어른들, 이웃들이 좋아서 합천이 좋아졌지 ‘합천’이라는 지역 자체가 좋아서 살지는 않았다. 우연히 합천에 와서, 좋은 사람들과 추억을 쌓고 마을이 내 동네라는 느낌을 얻었던 계기도, 여기서 만난 이웃 덕이다. 내가 받았던 환대처럼, 다른 청년들에게도 충분히 마음을 내어주고 이끌어주실 분들이 지역에 있다. 이런 좋은 기반에 대해 외지 청년이나 우리 지역 청년들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나도 그런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 새로 길 닦고 정자 세우고고, 회전교차로가 만드는데 아까운 돈 쓰지 말고, 더 절실한 곳에 쓰면 좋겠다. 합천에 빈집도 많은데, 그 곳을 활용해 필요한 청년들에게 제공하면 좋겠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 관련한 다양한 시도, 실천이 있고, 합천에는 이 기회를 제공할 환경이 있는데, 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이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쉽다. <담쟁이인문학교>만 봐도, 초기에 청소년들이 많이 와서 지금은 그들이 다 성인이 되어 외지로 나갔다. 그 친구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가운데에는 도시에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살아도 얼마든지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선택지를 줘야한다. 청년이 즐겁게 살 수 있는 기반 만들기가 더 활발해지면 좋겠다.

행복한가?
어릴 때부터 행복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농사 짓는 일을 하며 사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

김예슬, “청년이 합천에서 농사 지으며 살 수 있게 다양한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 <사진제공:김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