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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타락_문계성 수필가

“황현”은 대한제국 광무 4년(1900년) ‘매천야록’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청국공사 서수봉이 처음 고종을 뵈올 적에, 우리나라의 기수가 왕성하고 풍속이 아름답다고 말하자, 고종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폐방(청국)은 벼슬을 팔아먹은 지 10년이 채 안 되었지만, 천하가 크게 혼란하여 종사가 몇 번씩 전복되었는데, 귀국은 벼슬을 팔아먹은 지 30년이 되어도 보좌가 아직도 근심이 없으니, 기수가 왕성하지 못하고, 풍속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능히 여기까지 왔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고종은 자신의 부끄러움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서수봉이 자리를 떠나면서 다른 사람에게 ‘슬프도다! 한국민이여!’ 라고 하였다”
우둔한 군주를 둔 조선 말기의 정치현실에 대한 상징적 기록이다. 오죽 했으면 청국공사가 조선백성을 걱정하며 탄식했을까. 19세기의 후반기, 조정의 학정에 견디지 못한 백성들이 동학당을 만들어 조정을 습격했다. 아마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조직적인 민란이었을 것이다. 조정은 이 동학란을 자체 힘으로 제어하지 못하자, 일본과 청국을 끌어들이어 제압하였고,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이번에는 러시아를 끌어들이어 일본을 제어하려하였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할 수 없이 일본과 을사보호조약을 맺고 사실상 나라를 일본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고종(高宗) 일가는 나라를 일본에 넘겨주고도, 일본 왕족으로 편입되어 평생 그 영화를 잃지 않았다. 당시, 우국지사들은 분개하여 스스로 배를 가르고, 독약을 먹었지만, 고종의 아들은 일본에서 일본육군 중장 계급장을 달고 일본 왕족처우를 받으며 살았다. 나는 고종일가를 매국으로 욕되게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는 결국,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국가가 걸어야할 당연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보라! 정부가 무능부패하여 나라가 망할 때, 고통 받는 자는 누구인가? 평생 노역을 제공하고 세금을 내는 백성들뿐이었다. 고금과 동서가 다르겠는가?
이 정부는, 북한의 핵폐기에 대한 미북 간의 협상에 대하여 중개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중개자 역할을 온 세계에 떠벌리며 북한에 무한의 애정을 표시했다. 식량도 주었고 기름도 몰래 주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북한은 무장 해제를 할 생각이 없이,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여 연일 쏘는데도, 우리는 일방으로 휴전선의 철조망을 뜯어내고, 지뢰를 제거하고, 전차진입장애설치물을 파괴했다. 환경평가를 핑계로 사드의 정식 배치를 미루고, 탈북자가 동해로 오는지 가는지도 모른다. 굶주림을 피해 탈북한 모자가 이 나라에서 굶어 죽어도, 이 정부는 모른 체 했다. 이 지경에, 이 정부가 그렇게도 열애하는 북한은 이 정부를 향하여 “바보는 클수록 더 큰 바보가 된다” “우리가 쏜 미사일의 사거리조차 측정할 줄 몰라 허둥지둥 한다” “삶은 소대가리가 웃는다” 며 마음껏 조롱했다. 이 정부에 대하여 얻을 것은 다 얻은 북한이 왜 이 정부를 바보취급 할까? 유일한 동맹국이라는 미국의 대통령은 이렇게 비아냥했다. “한국으로부터 주한 미군 방위비 10조원을 받아 내는 것이, 내가 아버지를 따라 부르클리에 가서 아파트 임대료 114.13 달러를 받는 것 보다 더 쉬웠다” 유일한 동맹이 이 나라 정부를 향하여 “바보!”라고 내뱉는 말이다. 이 정부가 중개를 주장하는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이, 왜 다 같이 이 정부를 향하여 “바보!”라고 조롱하는 것일까? 우리 속담에 ‘정조 잃고 뺨 맞는다’는 말이 있다. 그 꼴이 아닌가?
이런 세계정세의 와중에, 이 정부는 반일전쟁을 선포했다. 대법원의 어떤 판사가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했다며, 우리가 1965년도 한일협정에서 국가 간 청산한 징용금을 일본의 고용 회사가 다시 지급하라는 판결을 했다. 일본이 반발하자, 대통령은 이순신의 12척 배를 들먹이고,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부르며 이 판결에 찬가를 불렀다. 이 정부는 일본을 향하여 전쟁을 선포했고, 우리의 순민동포들은 이 선동에 감연히 동참했다. 이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반일한다, 그래서 애국자다!” 일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주장이 옳다면 국제 공동위원회에서 판단을 받아보자, 우리는 제품을 수출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사용처가 분명한지 심사한 후 수출하겠다고 했다. 이는 외부 유출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회사가 요구하는 제품을 짧은 기일 내에 수출허가 했다. 일본은 우리에게 영원히 악마적 존재인가? 아니면 우리의 필요에 따라 악마로 만들어 지는 존재인가? 체제적(體制的)으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국가이다.
우리 개인이 존엄하게 생존하는 것이 힘들 듯, 국가가 국제사회 속에서 존엄하게 살아남는 것 또한 힘든 일이다.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치열한 전쟁을 했던 시대가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였다. 약한 나라들은 합종연횡 하고, 강한 나라는 작은 나라들을 분할하여 각개 격파하며 천하제패를 꾀했다. 그러나 세상은 어느 시대나 때를 막론하고 춘추전국과 같은 처절한 생존전쟁의 장이다. 생존의 지혜는 어디에서 나올까? 아마, 이성(理性)의 힘에서 나올 것이다. 이성은 감성에 젖거나 휘둘리지 않으므로 위대하다. 이성이 발동할 때, 우물쭈물하는 우리를, 선동 당하는 우리를, 까닭모르고 두려움에 떠는 우리를, 권력에 비겁한 우리를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세금을 바치는 이 정부는 우리의 생존과 자유를 위하여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진정한 우방을 가지고 있는가? 누구와 합종연횡하려 하는가? 피아(彼我)는 구분하고 있는가? 이 자초한 고립무원의 상황이, 생존을 나눌 우방하나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한말기와 너무 유사하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할 이 촌부(村夫)조차 걱정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