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이불 – 문경자 수필가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장미꽃. 손으로 만져보니 아가의 살결처럼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사뿐히 앉았다 날아갔다. 벌도 윙윙거렸다. 그들은 한 가족처럼 서로에게 아무 피해를 주지 않았다. 향기에 빠져 들었나 보다. 유모차 밀면서 지나가는 젊은 엄마, 아기는 곤히 잠자고 있었다. 가리개에 비친 아기볼이 장미꽃처럼 볼그레하다. 내가 첫 아기 낳고 키우던 일들이 떨어지는 장미꽃 잎 사이에서 웃었다. 고된 시집살이에도 아기는 가족들에게 행복을 안겨주었지만 힘이 들었다.
신혼의 단꿈도 두부가 뭉개 지듯이 엉망이었고, 벼랑 끝에 서있는 그 자체였다. 산골마을이라 삼시 세끼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다. 열 식구 밥하고 반찬 만드는 고된 날들이 이어졌다. 내속은 숯덩이처럼 까맣게 탔다. 혼자 끙끙 앓았다. 그럴 때는 밤하늘 달이 위로를 해주었다. 참고 살자, 웃자 웃어야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하는 심정으로 살았다. 사람사는 일이 다 그렇지. 어디 슬픔만 있겠는 가!
어느 해 봄날이었다. 새댁은 묵은지를 씻어 꼭 짜서 밥상 아래 숨겨놓고 혼자 먹었다. 수상하게 여긴 가족들이 눈동자를 굴렸다. 나는 슬그머니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도련님이 “별것도 아닌데, 형수는 숨겨 놓고 드셨네.” 하는 말 끝에 어머니는 “아가 나 좀 보자.” 라는 말에 새댁은 겁 먹은 얼굴을 하고 작은 방으로 뒤따라 갔다. 앞서가는 어머니모습이 나비같이 가벼웠다. 방에 앉더니 풀잎에 물들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었다. 나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맞다. 아기를 가졌구나” 하며 어머니는 내 두 손을 잡아 꼭 잡아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가족들에게 말했다. 경사가 났다면서 온 가족이 모두 축하해주었다. 봄날 아버님은 나뭇짐에 꺾어서 온 진달래꽃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그 때 그 인자하신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첫째 시동생은 산딸기를 칡 잎에 싸서 선물로 주었다. 햇빛아래 산딸기는 귀한 보석처럼 반짝거려 눈이 부셨다. 둘째 시동생은 어머니 몰래 쌀독에서 쌀을 퍼내어 달빛이 비치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자루에 담긴 빨갛게 익은 자두를 본 어머니는 네 시동생이 형수 생각해서 사왔으니 많이 먹어보라며 맑은 샘물에 씻어서 갖다 주어 고마웠다. 가족들의 사랑속에 새댁은 행복의 순간을 느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을걷이도 거의 끝나고 팔 월 보름달 밤에 태어난 누런 송아지도 인물이 훤했다. 조석으로 제법 싸늘한 바람이 불어 겨울이 왔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용주에 살고 있던 친정 고모가 마련해준 배냇저고리며 기저귀 감을 삶아 햇빛에 말렸다. 빨래줄이 훤하게 빛을 발했다. 아기가 태어날 날이 가까워지자 가족들은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다. 잘 먹고 휴식을 취했다. 바쁘지만 며느리에게는 조심하라며 심한 일은 시키지 않았다. 드디어 배가 아파 왔다. 어머니는 산모를 위해 30여리나 되는 읍으로 가서 의사를 데리고 오라는 당부를 시동생에게 하였다. 추운 날씨에 왕진을 오면 돈이 많이 나올 텐데 하는 걱정이 되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산모가 건강하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안심시켰다. 아기가 큰 소리로 울자 모두 기쁨에 싱글벙글하였다. 몇 십년 만에 아기 울음소리였다. 아기는 눈이 크고, 얼굴이 하얗고, 남자 아기인데 예뻤다. 의사는 참 똑똑하게 생겼다는 말을 남기고 읍으로 돌아갔다. 시동생은 살 얼음이 흐르는 강물을 건너다 살이 베어 아파 죽는 줄 알았는데, 조카를 보니 아픔도 사라졌다고 해 모두 웃었다. 손실 댁 큰 며느리는 의사가 왕진을 해서 아기를 낳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부자 집 며느리라 다르 긴 다르다고 웅성거렸다. 그 시대 왕진을 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후 어머니는 진료비가 송아지 한 마리 판 돈이 다 들어 갔다는 말을 심심하면 하였다.
아궁이에 넣은 장작불이 방 온도를 오래 지탱해 주지 못했다. 밤에 잠을 잘 때 위풍이 너무 세어서 어른들도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그해 추위는 더 심했다. 낮에 빨래줄에 널어 놓은 기저귀는 동태처럼 얼었다. 방안에서 말리면 녹은 상태라 다시 마르기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 다가 얇은 이불로 추위를 막아 주기에는 아기에게 부족하였다. 두꺼운 아기 이불을 하나 장만해야 하는데 걱정이 되었다. 하루는 앞집에 살고 있는 최씨네 집 큰 딸이 시집을 가서 낳은 아기를 데리고 친정에 왔다. 도시로 시집 간 딸은 아기 이불과 예쁜 옷을 빨아 빨래줄에 널어 놓았다. 순간 내 눈이 번쩍했다. 그 때 그 이불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지금도 잊혀 지지 않았다. 아기 이불을 꼭 하나 장만하자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내일이 마침 5일장날이다. 남편에게 오늘 읍에 나가서 이불 하나 사오라고 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쉬고 있는 중이라 돈이 없어도 부모님께 말 할 처지가 못되었다. 남편이 옷을 챙겨 입고 있는 등 뒤에서 아기 이불을 꼭 사 와야 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말이 없는 남편은 눈인사 하고 사립문을 열고 나섰다.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부모마음 아들의 성격을 아는 터라 그냥 눈치만 보다가 나에게 무엇 때문에 장에 가냐 고 물었다. 모른다고 시침을 뚝 뗐다.
처음 아빠가 된 기념으로 아기 이불을 사러 갔다는 생각에 기쁨이 벅찼다. 말이 없고 무뚝뚝한 남편의 얼굴이 오늘은 장미꽃 같은 얼굴이었다. 약혼시절 봄꽃들이 핀 산길을 따라 걸으면서 꽃 잎을 따다가 머리에 꽂아 주며 함박 같은 미소로 즐거워했던 그리움도 겹쳐오고, 둘이서 걷던 남산의 야경도 눈 앞에 떠올랐다. 나는 보라색 바바리에 긴 머리, 빨간 구두, 장미꽃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팔각정 앞에서 그와 팔짱을 끼고 즉석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사는 아주 잘 어울리는 연인들이라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사진을 보는 순간 깜작 놀랐다. 완전 흑백 사진이었다. 두 연인의 얼굴이 밤의 어둠 속에서 웃고 있어 무서웠다. 무서워하면서도 한 참을 웃었다. 남산을 뒤로 하고 내려오면서 따듯하게 손을 잡고 하늘을 올려 다 보던 그 눈빛을 오늘 보았다. 즐거워하는 얼굴에 나는 행복하였다.
아기도 방긋 웃었다. 해가 서산에 질 무렵부터 저녁준비 하고 된장국 끓이고 김치도 썰어 놓고 멸치 볶음도 했다. 혹시나 남편이 오는가 싶어 밖을 살폈다. 멀리 신작로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시골이라 버스도 하루에 두 세번 꼴로 다녔다. 아무래도 막차를 타고 올 것 같다. 아기가 이불을 덮고 쌔근쌔근 잠자는 모습만 그려 보아도 입가에 웃음 꽃이 가득하고. 산길을 지나가는 버스의 불빛이 뱀처럼 기어갔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빨리 와야 하는데…집이 높아서 신작로를 지나가는 차들이 가물가물 보였다. 드디어 골목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기침을 하면서 들어왔다. 손에 묻은 물기를 행주치마에 닦고 남편이 들고 있는 누런 포장지에 눈이 멈췄다. 오랜만에 웃음이 피어났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포장지를 빨리 풀어 보고 싶었다. 신발을 마당으로 날리고 작은 방에 들어갔다. 문을 꼭 닫았다. 종이를 차례대로 풀면서 둘이 웃음이 나왔다. 가슴이 설레었다. 남편과 첫 선을 볼 때 보다 가슴이 더 뛰었다. 누런 종이를 펴는 순간 장미꽃이 그려진 이불, 파란 잎사귀가 꽃을 더 잘 살렸다. 이불을 사가지고 온 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다. 무슨 돈으로 샀을까! 용돈도 받는 것 아니고 그렇다고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할 만큼 배짱이 두둑 하지 않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수수께끼다. 그렇다고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물어보면 기분을 깰 것 같아 꾹 참았다. 여자 란 참 별 걸 다 신경 쓰네. 그냥 사다 주면 고맙다고 하지.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은 그만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