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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공원’ 명칭, 자중(自重)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자 – 이호석 논설위원

요즘 또 일부에서 ‘일해공원’ 명칭으로 분란을 일으킨다. 몇 년째 심심하면 계절병처럼 들고 나온다. 며칠 전에는 경남 도내 어느 정당의 이름으로 일해공원 명칭 변경과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 국유재산 박탈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필자는 공원 명칭의 개정 문제를 떠나 외지인들의 도가 넘는 간섭에 심한 불쾌감을 느낀다.
먼저 외지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역대 대통령 모두 크고 작은 공과는 다 있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대통령은 ‘역사바로세우기’란 이름으로 자기 앞 두 분의 대통령을 모두 감옥으로 보냈고 한 분은 유배 생활까지 하게 했다. 두 분은 그때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일단은 법적 처분을 다 받았다. (물론 그 처분이 직접 피해자들은 절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한 분은 고령의 나이로 지금도 또 다른 죄명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와 신뢰를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항상 상당수의 국민으로부터 거부감과 미움을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고 그 대통령의 기념관이나 동상 등을 훼손하고 그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역사의 흔적은 지우려고 해서도 안 되고 지워지지도 않는다.
70여 년이 지난 일제강점기의 흔적도, 60여 년 전 6·25동족의 비극도 그 흔적은 물론 그에 따라 악화된 이념의 갈등조차도 아직 지우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지나간 역사는 어떠한 경우도 되돌릴 수 없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지난 정권에서 큰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이와 병행하여 법과 제도를 보완하는 등 그 잘못의 발생 원인을 찾아 제거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권들의 행태를 보면 지난 잘못에 대해서는 과도할 정도의 처벌을 하면서 또 다른 적폐를 만들어 가는 이중성을 보여 왔다.
지난 역사가 사가(史家)들의 사심에 의해 조금씩 왜곡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기도 하지만 가끔 현재 진행형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역사적 중요한 사건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종종 그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당대 집권자들의 의중대로 흐르는 정세를 너무 맹신하며 지난 역사를 지금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거나 그 역사를 단절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지난 역사에는 항상 잘잘못이 함께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보통 집권자들은 앞날의 역사에 대해 입맛대로 재단하고 당대의 업적을 미화하고 자기의 사상을 심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뿌리 없는 역사, 군더더기 역사가 된다. 역사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사실 그대로 기록되어 전해져야 한다. 그래야 후대들이 바른 평가를 하고 그것을 교훈 삼아 더욱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과거 일들을 들추어 흔적을 없애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흔적을 없앤다고 그 과오와 그 기간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자기의 부모가 아무리 잘 못 했더라도 그 부모를 빼버리고는 족보나 호적을 바로 이어갈 수가 없다. 국가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제3, 5공화국의 역사 흔적을 어떻게든 지우고 싶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그때의 정치 아래에서 오랜 기간을 살면서 많은 역사를 새로 만들어 왔고 지금의 모든 토대가 그 바탕 위에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 흔적을 없앤다면 24여 년간의 역사적 공백 기간을 온갖 사술(邪術)로 메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왜곡된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준다면 그것은 큰 죄악이며, 진정한 국민 통합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역대 운 좋은 몇 분의 대통령은 그를 기념하기 위해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온갖 시설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그분들도 과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1980년 5·18사태가 발생하면서 일어난 전 전 대통령의 과오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튼 다음 정권에서 시행한 ‘역사바로세우기’의 주 대상이 되어 이미 법정 최고형을 받고 감옥과 유배 생활을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과오는 이미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위의 대통령들처럼 큰 기념관을 건립해 놓은 것도 아니고 고향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손바닥만 한 공원에 아호 하나 부쳐놓은 것까지 시시비비를 하는 것은 너무나 야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합천군민에게 말하고 싶다. 1981년, 우리나라 역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우리 고을에서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우리 모두는 얼마나 좋아했는가. 군내 곳곳에 아치를 세우고 현수막을 걸어놓고 전 군민이 자랑스러워하며 축하하지 않았던가. 그때를 생각하면서 조금 자중하고 슬기롭게 처신하자. 정세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말고 조금 긴 안목으로 지켜보자. 우리의 가벼운 처신으로 혹시 군민 간 갈등이라도 생긴다면 전 국민의 조롱거리가 된다.
그리고 고향 출신 전 전 대통령을 너무 미워하지 말자. 어쨌든 전 대통령의 덕분으로 지역의 가장 큰 숙원이던 합천댐이 만들어졌고, 그 아래 200여 리 황강변의 그 많은 주택과 농토에 매년 여름이면 무섭게 휩쓸던 한·수해를 해결하지 않았는가. 또 곳곳에 발생한 고수부지에 공원과 체육시설을 만들어 우리 군민들의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있는가.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 고을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인정할 것은 바로 인정해야 한다.
공원 명칭 관계는 어디까지나 우리 군민 스스로가 슬기롭게 풀어야 한다. 지금은 지방자치 시대이다. 일해공원 명칭을 확정할 때도 여론 수집 절차를 거쳐 확정한 것으로 안다. 명칭을 바꾸려 해도 이러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여론몰이나 현 정세를 등에 업고 소수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깊은 애향심을 가진 뿌리 깊은 합천군민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치꾼들의 정치판과 그 정세에 가볍게 놀아나서는 안 된다. 일해공원 명칭을 변경하고 안 하고는 오로지 이 지역에서 할 일이다. 외지인들을 끌어들이거나 외지인들이 와서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는 것은 우리 5만 군민과 30만 향우를 무시하는 행위이자 합천군민의 주권과 군민의 자존심을 크게 짓밟는 행위이므로 이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