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 – 변명규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누구나 개구리에 대한 추억이 많을 것이다. 나도 어릴 적 개구리에 얽힌 추억에 적잖다. 봄에 무논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 중 하나가 개구리 알이었다. 개구리가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전령과도 같았다. 여름밤 들에서 그렇게도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 마당의 평상에 누워서 하늘의 별을 헤다 잠들곤 했는데 그 때 집 앞 벼 논에서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 그것은 울음이 아니라 나를 꿈나라도 안내하는 자장가였다.
개구리에 대한 전문가들이 열거한 종류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어릴 때 본 종류로는 몸집이 작고 녹색인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특이한 맹꽁이, 주로 산골에 있는 식용개구리와 비단개구리, 들판에 많이 서식하는 참개구리 등. 청개구리는 일기예보를 해 주는 기상예보관 역할을 해 주었다. 어른들의 말대로 청개구리가 울면 비가 온다고 했는데 실제로 맞아떨어졌다. 참 신기했다. 나는 여름이면 아침에 소를 산에 올려놓아 풀을 뜯게 하고, 오후에 친구들과 같이 소 몰아오기 위해 가면 해질녘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 시간에 여러 가지 놀이도 하고, 열매 따 먹기, 가제, 개구리를 잡아 구워먹기도 했는데 . 그 때 잡아 구워 먹은 것이 가재와 개구리였다. 구워 먹은 개구리는 청개구리처럼 작고, 등에 알록달록 무늬가 있으며, 배 부분은 붉은 색인데 아주 매운 독소가 있었다. 손으로 만지고 눈을 비비면 눈이 따가웠다. 그런데 그것을 구워 먹었으니 독을 먹었는가? 약을 먹었는가? 지금도 궁금하다. 논두렁이나 냇가에서 개구리가 뱀에게 잡혀 먹히고 있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뱀의 입속으로 서서히 밀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개구리가 불쌍했고, 뱀이 미웠다. 그래서 막대로 치거나 돌맹이로 때리기도 했다. 그러면 개구리를 물고 도망가기도 했고, 개구리를 놓아 주고 달아나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추억들이 엉켜있는 것이 개구리다. 그래서 지금도 개구리 울음 소리가 내 귓가를 맴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추억들을 함께 데리고 온다.
개구리를 부정적인 쪽으로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우물안 개구리(정저지와, 井底之蛙, 정중지와, 井中之蛙)’가 대표적이다. 이 말은 『장자(莊子)』 「추수편」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가 동해에 사는 자라한테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참으로 즐겁다. 우물 시렁 위에 뛰어오르기도 하고, 우물 안에 들어가 튀어나온 돌에 앉아 쉬기도 한다. 또 물에 들면 겨드랑이와 턱으로 물에 떠 있기도 하고, 발로 진흙을 차면 발등까지 흙에 묻힌다. 저 장구벌레나 게나 올챙이 따위야 어찌 내 팔자에 겨누기나 하겠는가? 또 나는 한 웅덩이의 물을 온통 혼자 차지해 마음대로 노니는 즐거움이 지극하거늘, 동해에 사는 자라, 자네는 왜 가끔 내게 와서 보지 않는가.”
바깥의 넓은 세상을 모르는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 또는 식견이 좁거나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여기는 사람은 빗대어 하는 말이다.
영어권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다. ‘작은 연못 큰 개구리(Big Frog in a Small Pond)’라는 말이다. 즉 큰 능력을 가졌지만 작은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큰 능력이 있다는 긍정의 뜻인가? 울타리에 머문다는 부정의 뜻인가? 알송달송하다. 긍정적으로 해석함이 좋지 않을까 한다.
개구리에게 좋지 못한 것을 빗댄 경우가 또 있다.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거나, 감언이설로 꼬드겨서 결국 자기는 이익을 챙기고 상대방은 서서히 몰락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개구리를 삶을 때 뜨거운 물에 넣으면 바로 뛰쳐나오지만 차가운 물에 담그고 수온을 서서히 올리면 편안하게 적응하고 있다가 온도가 차츰 올라가 결국 자신도 모르게 삶겨 죽고 만다. 우리 사회에 이런 경우가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조그마한 잘못을 눈감아 주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친절하게 인심을 쓰면서 감언이설로 미끼를 주면 별 뜻 없이 고맙게 여기고 받아 챙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좋게 보이고 고맙게 생각된다. 그러다가 작은 도움이 쌓여서 크게 되면 올가미를 씌워서 꼼짝없이 매달리도록 만들어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모든 것을 파탄으로 가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거에서 후보자가 몇 명 나왔을 때 지금까지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으면 좀 부족한 것이 있거나 부정을 저질렀더라도 그에게 선택이 돌아간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교묘한 술법의 하나다. 그런데 서서히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것이 한 개인에 머물면 큰 문제가 아닌데, 정치인들이 실정을 하면서 문제가 커지면 바로 그런 술법을 쓰는 경우가 있다. 복지정책을 크게 실현하여 우선 인심을 얻어 정권을 유지하고 앞으로 선거에도 대비한다. 그러나 결국 그 복지는 국민들의 빚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되고 그 정도가 심하면 국가 부도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치권이나 지도자가 국민을 속이는 방법이 개구리를 삶아 죽이는 식을 이용하는데 모르고 그를 지지하고 잘한다고 설치는 사람들이 있다. 곧 어려움을 당하거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예일대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2009년 뉴욕타임스(NYT)에 ‘개구리 삶기(Boiling the Frog)’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개구리 이야기를 들어, 미국이 경제 위기와 지구온난화에 조기 대응하지 않는다면 파국에 언젠가는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세상 것들 너무 믿지 말고, 감언이설에 이끌리지도 말며, 자기 몸 자신이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우리 국민들, 인정 많고, 동정심 많다고 한다. 평상시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어떤 계기가 되면 그냥 못 넘어간다. 물론 어려운 상황을 목격하면 우리나라뿐만 아니고 어느 국민이나 다 그렇겠지만 유독 우리 국민의 관심 정도가 크다는 것이다.
남을 속이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되지만 속임수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은 인생살이에서 언제나 필요한 덕목이지만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절실히 챙겨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언제나 누구나 속이지도 말고 속지도 않는 세상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 자신의 바른 길을 찾아 굳건히 걸어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