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

춤을 춘다고

문경자
논설위원

유치원에서 돌아온 녀석이 노랑색 가방을 던지며 “할머니, 싸이의 강남스타일 보여줘잉.”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녀석의 응석에 텔레비전을 켜고 리모콘으로 번호를 검색하였다. 싸이의 노래가 나왔다. 그녀가 먼저 손자에게 춤을 보여주었다. 손자를 쳐다보며 큰 엉덩이를 흔들며 손을 휘젓고 다리를 흔들고 불룩 나온 아랫배를 출렁이며 춤을 추었다. 평소에는 요조숙녀인 그녀가 뭣땜새 저렇게 망가졌나. 온 몸을 바쳐 녀석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말 춤 추는 할머니 스타일이 재미를 더 해주었다.
녀석이 슬슬 몸풀기를 하더니 양손으로 말 타는 흉내를 하며 배를 뒤로 앞으로 밀며 허리에 손을 대고 흔들어댔다. 눈을 아래로 착 깔고 발을 꼬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그녀의 춤은 어미 말이 정신 나간 표현이라면 녀석의 춤추는 모습은 어린 말이 넘어져 히~잉 하며 코 풀기를 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녀의 손자녀석은 “나 잘하지” 하며 곁눈질을 하였다. 얼른 눈치를 챈 그녀가 박수를 치며 큰 소리로 “잘 한다.” 하고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세상에서 춤을 제일 잘 추는 손자, 나더러 손뼉을 치라는 눈치에 내 손바닥이 갈라져 물이 샐 정도로 짝짝 크게 쳤다. 할미 노릇하기도 힘들겠다.
내가 예닐곱 살 때 추었던 춤은 어른들이 정월대보름 때 쾌지나칭칭나네 하는 노래를 부르며 추는 춤이었다. 어른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녔다. 꽹과리나 징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신나게 따라 해보았다. 그 즈음 시골동네 오빠들의 달빛아래 춤은 환상이었다. 시커먼 바지를 한 쪽은 접어 올리고 까까머리에 검정색 모자를 삐딱하게 쓴 모습은 반 건달로 보였다. 손을 호주머니에 찌르고 휘파람을 불며, 갈 지자를 그리며 동네를 누비던 모습은 진짜 웃겼다. 허연 이를 드러내고 춤을 추며 릴리리야 릴리리 릴리리맘보~~잘 돌아간다. 달님도 웃으며 구름 속으로 들어가 달님스타일 춤을 추는 듯 보였다. 맘보 춤을 추다 바지가 찢어져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 인기짱의 오빠들이 산골마을에 떴다 하면 동네 아가씨들도 가슴 설레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것이 고향스타일 춤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하면 춤을 잘 출수가 있을까? 춤을 추는 자리에 가는 것은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동네친구들이 무도회관을 간다며 따라 가자고 하였다. 잠을 자고 있는 아이를 주말에 쉬고 있는 남편에게 맡기고 마실 갔다 온다며 살금살금 슬리퍼를 신고 따라갔다. 서울에 살면서도 춤을 배우는 곳이 어디 있는 지도 몰랐다. 무도회관이 무술을 배우는 곳인 줄 알고 있었다. 1인에 2,000원 내고 들어갔는데 입구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 여자들이 끌어안고 춤을 추고 있었다. 내 눈에는 우쭐거리며 어깨를 오그린 까불거림을 볼 때 웃음이 나왔다. 원숭이의 모습과도 흡사하였다. 기본을 시켜놓고 나더러 가방이나 지키고 있으면 된다나. 춤도 못 추니 구경만 하라고 하며 “깅자 니는 춤도 안 배우고 뭐했노.” 하며 자기들 기분 낼 생각에 몸이 들썩거렸다.
정장을 한 40대 중반의 남자는 한 눈에 보아도 갓 태어난 덜 익은 제비 같았다. 머리는 기름을 발라 반들거려 기생오라비 같았다. 입은 꽁치주둥이처럼 뾰족한 것이 청상 날 제비상이었다. 이 일을 우짜노. 그 남자가 내 앞에 와서는 허리를 구부리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저~어 춤 한번 추실까요.” 하는 순간 그녀들은 아이구 배야 하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저 남자 저거 목화씨가 눈에 박힌거 아이가.” 그녀들은 손가락으로 그 남자를 가리키며 “눈 먼 봉사아이가. 눈이 삐었다. 춤을 잘 추는 아줌씨를 몰라보다니 저거 가짜 제비다.” 하며 자기들에게 와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내 몸에 고슴도치 같은 가시가 마구 찔렀다. 웃기만 하는 그녀들이 미웠다. 그녀들은 무대로 나가 춤을 추며 남자들이 손을 잡아 주기를 기다렸지만 벌들은 날아오지 않았다. 남녀가 짝이 되어 추는 짝들은 파트너의 눈을 보지도 않고 서로 원수 진 사람처럼 어정쩡한 모습에 진정 춤 꾼은 아니었다. 음악이 뽕짝으로 흐르면서 어수선해졌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보자인 내가 본 느낌이었다. 나는 언젠가 춤을 배울 기회가 오면 꼭 배워야지 하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자신이 생기지 않아 용기가 나질 않았다.
춤을 배울 기회가 왔다. 세계를 누비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말이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조회수 10억 건을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월드스타로 떠올랐다. 미국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선정하는 2012년 인물 후보에 올랐다. 뜻도 모르는 노래에 맞추어 미국에서, 남미에서, 유럽에서 아프리카에도 엉덩이와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하고 춤을 추고 있었다.
현대문화센터 명작반 회원들이 송년 모임에 선 보일 춤을 강사료를 지불하여 배우기로 하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열심히 배우며 동작을 익혔다. 다이아몬드 발 띄기가 어려워 동네 사는 그녀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깅자가 춤을 배워 달라고 하네. 가까운 노래방에서 열심히 가르쳐주었다. 깅자가 춤을 춘다며 옆집 강아지도 웃겠다야. 하며 이렇게 하면 되는데 뭐가 어렵다고, 나는 발 바닥에 불이 날 만큼 세모를 만들며 밤 새도록 춤을 배웠다. 끝까지 열심히 배워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추어 회원들과 멋지게 춤을 추었다. 싸이도 울고 갈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