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곧 행복이다 (8) – 변명규
오뎅 열 개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막노동으로 생활비와 검정고시 학원비를 벌던 시절. 밥값이 없어 저녁은 거의 굶을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저녁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주머니에 400원밖에 없었다. 오뎅 한 개 사 먹고 국물만 열 번 떠먹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지 아주머니가 오뎅을 열 개나 주었다. “어차피 퉁퉁 불어서 팔지도 못하니까 그냥 먹어요.” 허겁지겁 먹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 후에도 퉁퉁 불어버린 오뎅을 거저 얻어먹곤 했다. 그때 저는 아주머니께 나중에 능력이 생기면 꼭 갚아드린다고 말했다.
이후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도 졸업하고, 운 좋게도 대기업 인사과에 취직했다. 아직도 그 포장마차가 그곳에 있을까 싶어 찾아가 보았다. 6년 만이었다. 여전히 장사를 하고 계셨다. 그런데 아주머니 옆에 아들이 함께였는데, 다리를 심하게 저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장애인이라 마땅한 취직자리가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아주머니가 안쓰러웠다. 우리 회사는 장애인을 전문으로 채용하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급여는 많지 않았지만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학자금도 보장되는 회사. 당장 회사 부장님께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부장님은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아들이 채용되자 아주머니는 눈물 흘리며 기뻐하셨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죠?” 나는 대답했다. “제가 먼저 빚졌잖아요. 그걸 갚았을 뿐인걸요.” 나에게는 어렵지 않는 일이 그분에게는 절실한 일이었고,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게 그분이 필요하지 않기도 하다. 당신의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몇백 배의 가치를 가진다.(사랑 밭 새벽 편지 중에)
어머니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그 사랑은 자기 자식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남의 자식이라도 어려움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자기 자식이 귀한 만큼 남의 자식도 귀하게 취급한다. 그것이 진정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겠는가. 이 아주머니 또한 그런 사랑이 몸에 배여 있었다. 허급지급 국물 먹는 모습에서 돈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불은 오뎅 열 개를 더 줬던 것. 어차피 불어서 못 판다고 했지만 그것은 핑계였던 것이다. 그 학생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배려한 것이다.
사람은 어려울 때는 주위에 관심을 가지지만 편안하게 생활하게 되면 이웃이나 주위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학창 시절의 어려울 때 도와주신 분을 잊지 않고 찾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능력이 되면 갚아드린다고 약속을 했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기에 찾아갔던 것이리라. 그리고 용케도 장애아들이 있음을 알았고, 자기 회사에 취직을 시켜 은혜를 갚은 것이다. 참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인연이 많은 사람들에게 연결되어 밝은 사회가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행복한 인연
1880년 여름 미국 메릴랜드에서 있었던 일. 가가호호 방문해서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고학생이 있었다. 그렇게 온종일 방문판매를 다녔기 때문에 저녁 무렵에는 온몸이 지칠대로 지쳤고 배도 고팠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다임(10센트)동전 하나밖에 없었다. 그 돈으로 무얼 사 먹을 수도 없었다. ‘다음 집에 가면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계십니까?” 현관문을 두드리자 예쁜 소녀가 나왔다. 부끄러움이 많은 젊은이는 차마 배고프다는 말을 못하고 물 한 잔만 달라고 했다. 그러나 소녀는 젊은이가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았고, 큰 잔 가득 우유를 담아 왔다. 젊은이는 단숨에 마셨다. 그러자 온몸에서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듯 했다. “우유 값으로 얼마를 주면 될까요?” 소녀는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 엄마는 남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돈을 받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큰 느낌은 받은 젊은이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학비 마련에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젊은이는 그날 우유 한 잔의 배려로 어려움 헤쳐나갈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성인이 된 소녀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 도시의 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중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래서 큰 도시에서 전문의를 모셔와야만 했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이연이란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기이하게도 그 의사의 이름은 ‘하워도 켈리’ 소녀에게 우유 한 잔을 얻어 마셨던 바로 그 젊은이이었다. 캘리 박사는 환자를 보고 단번에 그 소녀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모든 정성과 의술을 동원해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정성이 통했던 것인지 중병임에도 마침내 치료에 성공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여인은 퇴원을 앞두고 치료비 청구서를 받았다. 비용이 엄청나게 나을 것이라 걱정하며 청구서 봉투를 뜯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었다.
“우유 한 잔으로 모두 지불되었음.” 이 ‘하워드 캘리는 미국 존스 홉킨스병원 설립자이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어린 소녀가 물 달라는 학생의 모습에서 어떻게 배고픔을 알았을까? 아마 그만큼 초라한 모습에서 그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잠재돼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 소녀가 그 반대였다면 초라한 모습에서 거지라는 생각에 문을 닫아 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소녀의 배려 덕분에 힘을 얻어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으니 이 또한 작은 배려가 낳은 큰 열매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우리는 배려, 관심,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을 작용하는 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실화를 읽으면서 내가 어릴 때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떠 올랐다. 당시는 무성영화 시대였다. 무성영화를 보면 멋진 변사의 목소리가 어찌도 그리 마음을 사로잡든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때 기억에 남는 영화로 ‘검사와 여선생’이 있었는데 여기도 제자와 선생님의 묘한 인연이 줄거리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