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偶像)의 붕괴 – 문계성 수필가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맨 얼굴이 아닌 가면의 얼굴에 매혹되기도 한다. 그래서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이름있는 가수나 정치인들을 환호하며 따라다니기도 한다. 예전에 어떤 정치인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무슨 ‘사모’의 모임을 만들었고, 그 정치인이 재미를 본 후 이 ‘사모’ 모임은 유행처럼 되었다. 사람들 전부가 이런 모임을 선호하지는 않으므로, 이런 모임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열정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열정을 가질 바에야 자기 발전이나 자기 세계의 구축이나 완성에 열정을 가질 것이지, 왜 하필 남의 신념이나 재주를 따라다니는데 열정을 가지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데 나중에 이들이, 그가 숭배한 대상의 실상을 알게 되었을 때, 즉 콩깍지가 벗겨졌을 때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마 추종한 열정에 비례하여 실망이나 증오는 그만큼 크질 것이다.
예전에 군사정권의 2인자였던 군인이, 대통령 선거에 나오면서 갑자기 가방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메스컴은 이를 부각했다. 이 양반은 스스로 보통 사람이라며 아예 선거구호를 “보통 사람”으로 정했다. 그 이미지에 맞추기 위하여 비서에게 가방을 들리지 않고 그 스스로 들고 다니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권력 엘리트들에 식상해 있었고, 그래서 그는 보통 사람을 연출했다. 사실 “보통 사람”은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다, 누가 보아도 보통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중을 속여서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런 가식假飾이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의 정권은,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에 무당을 불러들이어 푸닥거리나 하고, 아줌마에게 국정 연설문을 검사받고, 기업으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은, 매우 열등하고 치사하고 부패한 인간으로 만들어 탄핵했다. 남을 무능하고 부패한 인간으로 몰아세운 집단은, 그와는 다르게 유능하고 도덕적이라는 선언을 한 것과 같다. 남을 비판하는 비판자는 도덕적 우월성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청와대 앞 광장으로 사람들을 불러내고 촛불로 광장을 물들이었고, 그래서 자기 이름을 ‘촛불정권’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 이름에는 매우 유능하고 매우 도덕적이라는 선언이 내재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정권은 공평을 내세우고, 인권을 외치고, 남녀평등을 입에 달고 산다. 그리고 틈만 나면 토지공개념을 부르짖는다. 토지공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재산의 기본 개념이 되는 토지에 대한 사적私的 욕망을 포기하는 관념을 상징한다. 즉 그들은 그런 부富에 대한 사적 욕망이 없는 깨끗한 집단임을 표방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니러니하게도, 이 정권의 실세들이나 추종자들은 유독 여성 성폭행이나 추행에 많이 연루되어 있었다. 여성에 대한 이런 짓거리는 여자를 인격으로 보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보는 데서 비롯된다. 진정한 남녀평등 의식에는 성적 폭행이나 추행이 설 자리가 없다. 말하자면 이들이 부르짖은 남녀평등이나 인권은, 자기의 허위 이미지를 선전하기 위하여, 갑자기 가방을 들고 다닌 그 가식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무런 의식意識 없이 앵무새처럼 떠벌인 말에 불과할 것이다. 남녀평등이나 인권을 부르짖는 집단이나 사람이, 여성 추행과 폭행에 깊이 빠져있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부르짖는 남녀평등이나 인권이 정치적 선전이나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정권의 봉사자들이 줄줄이 성적 폭행이나 추행에 연류되어 정치적 생명이나 명예가 빼앗긴 것을 보면, 평소 이들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고 할 수 있다.이번, 서울시와 부산시의 시장 선거 둘 다, 전직 시장의 여성 폭행이나 추행으로 비롯된 것들인데, 이들은 유독 남녀평등과 인권을 입에 달고 산 사람들이었다.
어제는 청와대 정책실장인 양반이 갑자기 경질되었는데, 이 양반은 두터운 테의 안경을 쓰고, 거친 머리카락으로 이마를 가리고, 구부정한 어깨로 낡은 가죽 가방을 들고 다녔다. 시간이 갈수록 안경테도 가늘어지고 머리도 다듬어졌지만, 이 모습은 매우 학구적인 학자의 이미지였다. 메스컴은 그 낡은 가죽 가방을 여러 차례 화면에 비추어주었는데, 아마 이 양반의 검박함을 부각시키려 했을 것이다. 이분은 공정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냈고, 참여연대에서도 일했는데. 이 나라의 모든 악이 오로지 재벌의 탐욕에 있는 것처럼 외치고 다녔고, 그래서 재벌 손보는데 가장 앞장선 사람이었다. 이분의 그 모습대로 이재理財를 경멸하는 조선 선비의 후손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이 양반은 2020년도 전세금 5% 이상의 인상을 금하는 임대차 보호법이 시행되기 이틀 전에, 자기가 세놓는 청담동 집 전세보증금을 14%나 인상하여 받았고, 이 사실이 탄로 나자 그는 자기가 사는 집의 전세보증금이 올라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그의 통장에는 14억 원이나 되는 예금이 들어 있었다. 이 양반은 한쪽으로는 열심히 재벌의 탐욕을 욕하고, 한쪽으로는 열심히 돈을 모은 것인데, 이처럼 양쪽으로 부지런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이 임차금 5% 이상 인상을 금하는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대표 발의한 여당 의원은 그 법안을 대표 발의한 후, 그 법이 시행되기 전에 슬그머니 자기가 세놓는 집의 임차금을 9% 올려 받았다. 법안 개정을 대표 발의하고도 그런 짓을 하는 배포는 대체 어떤 것일까?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인물이 되어버린, 초기 이 정권 정책실장을 한 장모씨는 소액 주주운동을 선동했고, 소득주도 성장의 경제정책을 펼쳤다. 임금이 올라가면 살림이 좋아진다는 논리로서 최저임금을 올린 것이 골자였는데, 이 바람에 영세한 자영업이 무너졌고, 이 때문에 청년들은 알바조차도 어렵게 되었었다. 유명 대학의 박사라는 사람이 정말, 이 소득 주도 성장이란 개념이 탁상 물림들이나 상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이지 몰랐을까? 이 양반은 소액주주운동을 열심히 벌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주식을 50억 원 이상 소유하고 있었고, 그 외에도 값비싼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무노동으로 자본이 만들어 주는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소득주도 성장을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비싼 주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재벌들을 욕하고 다닌 사실은 실로 기이했다.
공평과 기회의 균등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 자녀들에게는 온갖 특혜를 제공한 장관도 있었고, 이 사람은 많은 팬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들은 공정이나 평등, 혹은 인권의 가면을 쓰고 다녔는데, 이 가면은 그들을 출세시켜주는 요술 방망이였다.
그러나 가면은 언젠가는 벗어야 하고, 그 맨얼굴이 드러날 때 우상도 무너진다. 아마 요즘이 그런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