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묵향(墨香)과 죽향(竹香)의 고장 장성, 담양에 가다 (1)

이성동
논설위원

19세기 우리나라의 유학(儒學)은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이 이끄는 영남의 한주학파(寒洲學派)와 기호계열의 화서학파(華西學派), 간재학파(艮齋學派), 노사학파(蘆沙學派) 등 4개 학파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이 당시 강우지역의 학자들 중에는 성재(性齋) 허전(虛傳)의 학문을 계승하는 학자도 있었으나, 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圭)는 호남의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가 노사학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합천향토사연구회가 지난 4월 24일 그에게 학문과 사상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호남의 노사 기정진 선생의 유적과 인근에 위치한 호남의 걸출한 성리학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의 유적도 살펴보는 역사인물 탐방을 하면서, 귀로에 우리나라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정취와 죽향(竹香)이 서린 유서 깊은 고장, 담양도 둘러보고 왔다. 하서의 필암서원은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그리고 노사를 배향하고 있는 고산서원은 장성군 진원면 고산리에 있다. 필암서원은 1590년(선조 23)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도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영남과 호남 학문이 교류되게 한 ‘김인후(金麟厚)’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향하고 있다. 장성 사람들이 이곳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라”고 큰 소리 치는 데는 ‘하서(河西)’라는 큰 인물이 배출되어 호남의 성리학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유림의 고장을 꼽으라면 흔히들 「광나장창(光羅長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장성은 광주, 나주, 창평과 더불어 선비가 많은 곳이다.
일행이 이 서원 입구에 도착하고 10여분 후 장성군 문화관광과에 소속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해설사 김승희 씨가 일행을 반가이 맞으며 해설을 시작했다.
그녀는 바로 문묘(文廟)에 배향된 우리나라18현 중 호남사람으로 유일(唯一)하며 호남의유총(儒叢)으로 모시고 있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1510~1560)의 13대 후손이다. 키가 조금은 작지만 하서의 후예답게 자기 조상을 낭낭한 목소리로 해설하면서 그녀의 눈빛은 영롱하고 자신감에 차있었다.
김인후는 영남도학의 학맥인 김종직-김굉필로부터 학문을 배운 김안로(金安老)를 스승으로 하여 학문을 익혀 영남학맥의 도학적(道學的) 사상이 호남으로 이어지게 한 유학자로서 호남유학(湖南儒學)의 사상적 계보를 형성하게 한 인물이다. 영남사림(嶺南士林)의 전통을 계승한 호남에서도 도학(道學)을 중시하게 되었고, 유학(儒學)의 의리적·실천적 학풍이 호남유학으로 정착되면서, 호남에서도 사림(士林)들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사상적 바탕이 되었으며, 많은 사림(士林)의 의병장들이 전쟁터에서 순절(殉節)하였다. 1592년 10월 7일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이 휘하 의병들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순국(殉國)하였고, 1593년 6월에는 김천일(金千鎰)과 고경명 장군의 아들 고종후(高從厚) 등 호남의병장들이 진주성을 사수하다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남강에 뛰어들어 순절하였다. 평소 절의(節義)를 신조로 하는 생활과 국가위기시에 목숨을 바친다는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하는 조선선비의 정신을 중요시 하는 점에 있어서는 영호남 선비들이 다를 바가 없다.
이처럼 영남유학이 호남유학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게 된 배경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과 도암(陶庵) 조광조(趙光祖)가 이 지역에 유배를 오면서부터이다.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평생토록 <소학>만 읽으며, 스스로 소학동자라 칭한 김굉필이 갑자사화 때 순천으로 와서 사사(賜死)될 때까지 4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이곳에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김굉필의 제자였던 조광조는 기묘사화로 능주에 유배되어 35일만에 사사당하게 된다. 그 당시 호남 사림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친구로 또는 문인(門人)으로 교유(交遊)하였으며,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지역에서 그 두 사람이 죽음으로써 호남 유학의 도학적(道學的)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이 시기 호남 사림의 학문은 김굉필, 조광조의 도학정치 사상, 지치주의(至治主義) 유학(儒學)을 그 근간으로 하여 발전하게 된다.
지치(至治)는 삼대[三代:하(夏)·은(殷)·주(周)]의 이상정치(理想政治)를 의미한다. 언제나 바른 편에 서기를 좋아하고,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사람들과 세상을 혐오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정치의 주변부인 호남으로 낙향·은거했다.
이러한 현상은 당쟁의 시기에도 계속되어 호남지역은 유배지나 은거지로서 항상 많은 피해자와 은자(隱者)들이 선택하는 곳이었다. 그리하여 이 고장에는 정의(正義)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 기개(氣槪)가 넘쳐흐르며, 호남지역 사람들을 지배하는 정서(情緖)가 되었다. 그러한 호남의 기개와 정서가 열화(熱火)처럼 분출(噴出)된 것이 구한말 서양세력의 개입과 내부적으로 부패한 탐관오리들을 배격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전북 고부를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혁명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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