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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설날 – 문경자 수필가

겨울 풍경이 아름다운 산골 고향의 설맞이는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일이다. 내가 태어나 자라고 친구들을 만나고 언제나 웃음이 넘치는 입가에 꽃. 천진난만하고 욕심 없는 마음, 자연을 보며 배운다. 부모들은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자잘한 것에 보람을 찾는다. 일년 농사를 지어 차곡차곡 쌓아 놓은 여러가지 곡식들은 강남의 고층빌딩이 부럽지 않았다. 부모들은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설빔을 준비하기 위해 곡식을 내다팔았다. 우리는 설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엄마가 정성 드려 만든 맛있는 것을 많이 먹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방안에 자리잡은 콩나물 시루가 놓이면 어머니는 물을 준다. 검정보자기를 쓰고 있는 콩을 보며 궁금증이 생겼다. 물을 줄 시간이 되면 나는 꼭 어머니 곁에서 지켜보았다. 신기하게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밥도 반찬도 시래기 된장국도 먹지 않고 새싹을 틔우는 콩이 대단하였다. 두부, 메밀묵, 식혜, 강정, 달콤한 엿, 모든 것은 어머니가 만들었다. 추석명절도 있지만 그래도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빨리 어른이 되는 설이 좋았다. 어른이 되어보니 또 그때로 돌아가 아름다운 고향의 설맞이가 그리운 것이다.
호롱불 앞에 앉아 어머니는 새 옷을 짓는다. 할아버지, 아버지 옷에 솜을 놓고 반듯하게 펴고 꿰매고, 실밥을 입에 물고 있는 어머니는 바느질 솜씨가 대단하였다. 무명천에 물감을 드려 내 옷과 동생 옷을 만들었다. 우리는 옆에 앉아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다. 호롱불 심지가 타들어가 작아지면 바늘을 이용해서 심지를 돋운다 방안이 환하다, 어머니 얼굴은 하늘에 떠있는 달 같았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새 꿈나라로 갔다.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예쁜 한복이 걸려있었다. 우리는 너무 좋았다. 세배를 드리는 아침에 꼬까옷을 입혀주었다.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세배를 하라고 하였다. 동생과 나는 얌전하게 세배를 드렸다. 그때 세뱃돈을 받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복많이 받고 건강해라 하시며 웃음으로 복을 주었다. 아버지 어머님은 귀여운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배를 하고 일어서려다 뒤로 넘어졌다. 아버지는 세뱃돈을 주었다. 왼손으로 돈을 받고 오른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어머니는 잘 했다며 꼭 안아주었다. 음식이 차려진 상을 마주하고 맛있는 떡국이며 전을 먹고 오랜만에 소금에 저린 조기의 살을 먹었다. 그 맛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친척집에 가는 길은 기쁨이었다. 새 옷과 새신발을 신고 눈이 내린 길을 걸으며 감나무 위에 까치는 깍깍 새해 인사를 한다. 뽀드득 눈길을 걷는다. 영만이네 똥 강아지도 좋아서 뛰어다닌다. 들판은 하얗게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속에는 파릇한 보리가 삐죽삐죽 올라와 희망의 봄을 노래한다. 집집마다 다니다 보면 떡국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불러 숨도 쉬지 못했다. 그래도 정성껏 만들어 주었는데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웰빙 음식이라 소화도 잘 되었다. 집 뒤안에 대나무 숲에는 참새들이 짹짹 놀고 푸른 잎사귀에는 눈이 앉아 있으니 그림 같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르신들도 만나고 내 친구들과 만나 예쁜 옷을 자랑하며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정자나무 아래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진 아이들에게 꿀밤을 주었다. 너무 아파 울던 친구는 어머니가 예쁘게 지어준 옷에 눈물 자욱이 흘렀다며 울었다. 일년에 한번 지어준 새 옷에 얼룩이 졌으니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온동네가 설을 맞아 잔치분위기다. 삭막한 산골 마을에는 색색의 옷들이 골목마다 꽃처럼 피어났다. 정자나무에 매어 놓은 그네를 타는 언니들의 모습은 춘향이보다 더 아름다웠다. 남자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며 모두 눈길을 주었다. 그네를 타고 신나게 놀다 보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신난다 소리를 지르며 타는 재미는 어디에 비할 수가 없다. 널뛰기는 더 재미있었다. 뛰어오르면 머리가 하늘에 닿는 듯하다. 얼음판에서 팽이를 돌린다. 아버지 오빠가 만들어준 팽이는 정말 예뻤다. 몇일을 손으로 다듬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동그랗게 깎아 아래로 내려 갈수록 몸매가 날렵하게 된다. 윗부분에 크레용으로 색칠을 하여 돌아 가면 무지개가 되었다. 썰매도 타다 보면 넘어지고 받히고 하는 일은 재미로 여겼다. 새 옷을 입고 노는 일은 즐겁고 행복하였다. 그날은 아무도 우리에게 혼을 내는 어른들은 없었다. 그저 예쁘고 나이 한 살 더 먹고 씩씩하게 자라니 복이라 여겼다. 나는 설날이 되면 지금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 살아 생전 가족을 위해서 어려운 살림을 불평 한번 안하고 꿋꿋하게 이어오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대의 어머니들은 어쩌면 천사 같은 마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살아서 그런지 명절때나 아니면 평소에도 어머니한테 간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설명절이 되면 어머니는 감나무 가지에서 까치가 울면 외할머니를 그리워했다. 지척에 계시는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친정이 바라다 보이는 곳을 바라보곤 하였다. 지금은 명절 때 친정에 먼저 가서 부모님을 뵙고 시집에 와서 명절을 쉬는 것도 좋은 예다. 까치가 울고 웃고 하는 설날에는 풍년이 들고 좋은 소식이 온다고 했다. 떡국을 먹지 않으며 나이를 안 먹는다고 하나, 떡국을 먹어도 나이는 안 먹었다고 하나 어쨌던 묵은 것은 묵혀 두고 새것으로 갈아 입는 것은 좋은 일이다. 까치도 설 맞이 떡국을 먹었는지 윤기가 흘렀다. 목련나무 가지에서 까치가 운다. 우리들도 임인년 새해의 시작은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