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의 창건유래 (4)
이병생
합천문화원향토사
연구소장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道寺) <3>
통도사 내에서 몇 개의 전설이 흐르고 있는데 이를 이번기회에 소개해 볼까 한다.
먼저 자장암의 금개구리인데 통도사 산내 암자 중에 자장암이 있다.
통도사의 금강계단이나 사찰건물을 건축 할 때 자장율사가 머물렀던 곳이다. 자장율사의 체취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 하겠으며, 그 체취는 현재 금개구리로 전승되어 온다. 자장율사 당시에 키웠던 개구리가 천년이 넘는 동안 아직도 살아 있다고 전해오는 것이다. 바로 금와보살(金蛙菩薩)이다.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바위 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했다고 한다.
그 개구리가 사는 바위 구멍을 금와공(金蛙孔)이라고 한다. 자장율사의 신통력을 보여주는 생물이 바로 자장암의 바위 구멍 속에 살고 있는 개구리인 것이다. 이능화의<조선불교통사>에도 이 금개구리의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또 한 가지는 고려 광종(949~975)임금이 부처님이 직접 착용했던 가사를 보고 싶어 했다. 광종이 여러 신하를 모아 놓고 의논했다.
「회유하고도 회유하도다. 여래가 세상에 살아 계실 때 오랑캐는 부처님을 견문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부처님은 돌아 가셨지만 부처님의 옷이 아직까지 남아 있으니, 어찌 친히 첨례예배공양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왕은 곧 수례를 준비해 천리 길의 남주(南州:통도사)를 가고자 했다. 이에 조정의 백관이 만류했다. 임금님이 멀리 남쪽으로 출타하시면 백성이 곧 불안해 할 것이니, 부처님 가사를 궁궐로 가져오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 했다. 왕이 이에 수락해 대신(大臣)우승선(右承宣), 채종경을 보내어 절에 가서 가사를 봉함해 가져오게 했다.
채종경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절에 와서 향을 태워 가사에 공양하고 봉함에 소중히 넣어 돌아 왔다. 개성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들른 각 군에서는 한결같이 정성을 들인 예악으로 배송했다. 점점 개성이 가까워지자 왕이 환희용약(歡喜踊躍)하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왕은 칙령을 내려 네거리에 비단과 범향을 베풀고 군신 상하가 의관을 갖추는 예를 다해 가사를 강안전에 영입했다. 그리고 용상석덕 300명을 초청해 작법하며, 왕은 마음을 씻고 옷을 단정히 해 불전에 서원하고 나서 가사가 든 봉함을 열었다. 그러나 함 속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왕이 크게 노해 채종경을 멀리 섬으로 유배시키라고 했다. 좌우의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가 “이것은 여래의 신통변화 불가사의”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불덕(佛德)을 체험하려고 7일간을 참회 정진했다.
그러자 그 함속에 황봉(黃蜂:누런벌)이 가득 차므로 왕이 더욱 놀라고 이상히 여겨 7일간을 더 정진 했다. 이번에는 함속에 큰 뱀이 들어있어 왕이 더욱 정진해 7일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왕의 꿈에 한 범승이 나타나 왕에게 말하기를 “이곳은 머무를 곳이 아니므로 본처(本處)를 떠나지 아니 했노라„고 했다. 왕이 크게 놀라 좌승선(左承宣) 박함(朴咸)에게 칙령을 내려 이함을 통도사에 보냈었다. 박함이 통도사에 도착해 함을 열어보니 옛날과 다름이 없었다. 자장본전(慈藏本傳)과 청량산(淸凉山)의 사비에 이 기록이 지금도 있다.
불교에서는 코끼리, 연꽃, 용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지면 상 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만 하겠다.
하동의 이맹산 때문에 경주에 장님이 많이 났다. 이맹산 정상에 연못이 하나 있었고, 여기에 용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용 때문에 경주에 장님이 많이 생겼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 용을 쫓아 내고자했다. 그래서 사용한 방법이 불에 달군 돌을 이 연못에 집어 던져서 용을 쫓아내는 것이었다. 이 쫓겨난 용이 하동진교 밑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辰橋의辰도 용의표현이다. 이맹산의 용을 쫓아낸 후로 경주의 맹인이 없어졌다고 한다. 불(火)로 달군 돌을 연못에 던진 것과 자장율사가 火를 쓰서 연못에 던진 것은 상통하는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