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연재

버스기사가 바라본 합천 사람들(7) 가야 맛나분식

합천에는 장날이 있다. 합천읍내장, 초계장, 삼가장, 가야장의 네 곳에서 장이 선다. 10년 전, 필자는 해인사 약수암에서 몸이 좋지 않아 요양을 한 적이 있었다. 절밥을 오래 먹다 보니 바깥 음식이 그리워져, 가야읍에 3~4번쯤 내려와서는 누구나 좋아하는 짜장면과 비 오는 날 생각나는 부추전에 칼국수를 즐기곤 했다.
어느 날, 경찰 간부로 있던 동생이 내 방을 찾아와 바깥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슬리퍼를 꿰어 신고는 자동차에 올랐다.
“형님, 오늘 제가 아는 맛집 한 군데 가보시죠.”
두말없이 시동을 걸고 찾아간 곳은 가야읍내 시장 안에 있는 작은 분식집이었다. 실내에는 3~4개의 탁자가 줄지어 있었고, 안은 텅 비어 있었지만 골초였던 동생과 나는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흰 연기를 내뿜고, 머릿속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그려 보았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에피타이저로 땡초부추전과 막걸리 그리고 수제비 칼국수! 잠시 후 반찬이 먼저 나왔다. 물김치, 나물 몇 가지, 풋고추와 된장, 그리고 온갖 재료가 다 들어간 듯 불룩하게 쌓아 올린 간장이었다.
막걸리가 나오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잔을 그득 채워 단숨에 비웠다. 풋고추 한입을 된장에 찍어 우적우적 씹다가, “화~~ 땡초 중의 상땡초!” 물김치를 접시째 들이켰다. 그때 딱 맞춰 수제비 칼국수가 나왔다. 간장을 한 수저 넣고 국물을 들이켜니, 한땀 한땀 얇게 빚은 수제비는 투명했고, 칼국수 면발은 씹기도 전에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야~ 죽이네. 해장으로 먹어도 끝내주겠는데~” 그날 이후 나는 가끔 그 집을 찾았고, 도시에 돌아와서도 몇 년에 한 번씩은 그 집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몇 년 만에 그 집의 사시문을 열었다. “내 오늘은 10,000원 한도 내에서 물쓰듯이 쏜다!”
두 손님이 앉자마자 큰소리로 외친다.
“영태씨, 안주는 뭐 물라꼬?” 주방에서는 웃음이 가득 묻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부추전 매콤하게!” 함께 온 상기 씨가 안주를 주문하니, 반찬으로 물김치가 제일 먼저 나왔다.
이곳은 마치 동네 사랑방 같았다. 주민들의 아지트처럼, 손님들이 원하는 메뉴를 사장님이 척척 만들어 주신다. 잠시 틈을 타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다. 뜨문뜨문 말이 불편하신 바깥 사장님은, 가야가 고향이고, 화장품 판매사원이던 팀장님의 소개로 여주에서 지금의 안 사장님을 만났다고 한다. 한때 여주에서 도자기 금형 일을 했던 사장님과, 경기도 가평이 고향인 안 사장님은 재혼 후 20년 전 고향 합천으로 귀향해, 음식 솜씨가 남다른 안 사장님이 이곳에서 분식집을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인구 소멸 지역이라 장날도 예전 같지 않고 손님도 많지 않다. 반찬 가짓수도 줄였지만, 만들어 놓은 반찬이 허무하게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원래 사장님은 ‘토속 시래기밥’에 특제 양념간장을 비벼 먹게 하고 싶었지만, 손님이 없어 시래기밥은 메뉴에서 사라졌고, 양념간장은 국수 곁들임으로만 남았다. 그런데 이 간장에 푹 빠진 단골이 있었으니,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간장 많이, 간장 많이”를 외치며, 일부러 더 만들어 줘도 매번 간장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 돌아왔다.
“그분이 누구세요?” 내 질문에 사장님은 잠시 머뭇하다가 말했다. “조삼술 의원님이요.”
그리고는 웃으며 덧붙였다. “뭐 그렇게 특별한 것도 없는데 좋아하시더라고요.”
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규격화된 일반 음식점보다 이 집 음식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소박하고 정겹게, 그리고 선을 지키며 살아가는 두 분을 보며, 오래도록 이 음식이 남기를 바랐다.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해야 되겠다 싶어 한다. “존경하는 조삼술 의원님! 간장 그만큼 잡수셨으면, 이번에는 비슷한 색깔의 냉커피 두 잔, 더운데 이 두 분 사장님께 한 잔 사이소~”

김기현 승무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