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1) – 이호석 수필가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되고 2년 뒤인 정해년 섣달 초닷새 날이다. 어느덧 팔순의 문 앞에 와 있는 것을 보니 길다면 긴 세월을 살아온 것 같다. 가끔 지나간 세월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행한 일들이 이것저것 엉켜 주마등처럼 지나갈 때가 흔히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은 희로애락의 연속이요, 생로병사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한편의 단막극이다. 이 단막극은 조물주와 자연의 섭리에 의해 연출되므로 시작과 끝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누구도 피해 갈 수도 없다. 지나간 세월 속에 나의 뇌리에 남아 있는 큰 일들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떠올려 본다.
나의 인생이 까마득하게 남았다고 생각되던 청소년 시절에는 어른들이 부러웠다. 빨리 성인이 되어 부모의 슬하를 벗어나 이성 간 사랑도 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그 당시 어른들이 걸핏하면 하는 말들이 있었다. 지나가는 세월을 두고 “유수(流水)와 같다. 화살과 같다.”라고 하였고, 인생을 “초로(草露)”와 같고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하면서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탄식하는 말들이었다. 보릿고개의 그 어려움 속에서도 세월의 흐름은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때 나는 그런 탄식에 공감할 나이가 아니어서 예사로 들었다.
요즘은 세월을 말할 때 흔히 60대는 시속 60키로, 70대는 70키로, 80대는 80키로 속도로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노인층 대다수가 뚜렷이 할 일도 없이 또래나 같은 취미생활을 하는 친구들끼리 매일 같이 모여 먹고 즐기다 보니,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워지는 게 더 아쉽고 더 빠르게 느껴지나 보다.
청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갖가지 선거를 치르면서 자연히 정치 얘기를 많이 듣고 하였다. 선거에는 반드시 온갖 술수와 나라의 굴곡이 따름도 알게 되었다. 지나간 오랜 세월 속에서 나라에 큰 변화가 있었던 일들만 간추려 생각해 본다. 우물 안 개구리 삶을 살아온 나의 주관적 판단이므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서로 양해하였으면 한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에는 전국의 대도시에서 자유당 독재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데모로 매일 같이 나라가 시끄러웠다. 이로 인해 결국 자유당 정권이 몰락 하였지만, 무능한 정치인들과 미숙한 학생들의 패기와 오만 때문에 나라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이듬해인 1961년 5월16일, 이를 보다 못한 박정희 장군이 주축이 되어 군사혁명을 일으켰다. 매일 같이 정치인들의 싸움과 학생들의 데모 얘기만 듣다가 처음 들어본 ‘군사혁명’이란 말 자체가 조금은 무섭고 두렵기도 하였지만, 새로운 기대와 호기심도 생겼다. 당시 농촌에는 라디오가 거의 없었다. 겨우 읍면 소재지에 있는 유선방송 사업자들이 집집에 달아준 스피커를 통해 이러한 뉴스를 들을 수 있었다.
군사혁명으로 제3공화국이 탄생하였고, 제3공화국은 5천 년의 찌던 가난과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있던 국민에게 근면, 자조, 협동 정신을 주로 하여 새마을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갔다.
농촌의 새마을 운동으로는 각 가정의 생활환경(부엌, 초가지붕 개량 등) 개선 사업과 마을 진입도로와 마을안길을 확장하였고, 논·밭두렁으로 지게를 지고 다니던 농삿길을 농기계가 다닐 수 있도록 농로 개설 및 확장 등 여러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갖가지 새마을 사업에 농촌의 청장년들은 매일 같이 부역이란 명목으로 아무런 보수 없이 동원되었다.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는 어려움 속에서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가정이나 마을의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신바람이 났고, 좀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략—), 1979년 10월 26일 국민의 영웅으로 존경받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국가가 혼란에 빠져 어려운 가운데서 또 군 출신들로 제5공화국이 탄생하였다. 제5공화국 역시 제3공화국의 토대 위에서 경제발전, 물가안정, 사회질서 확립 등 많은 업적을 쌓았으나 그 기간에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희생자가 나와 제5공화국의 모든 업적은 장막으로 가려지고 과(過)만 두드러지게 들어내고 있는 상황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