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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풍년 – 右岩 강기수

이즈음(2025년), 시장에 나가 보면 온통 감이 넘쳐난다. 감이 풍년이지만 정작 먹는 사람은 적어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형편이라 한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감은 단감과 대봉이 대부분이고, 고종시는 주로 곶감용으로만 출하되어 흔히 볼 수 없다. 크고 모양 좋은 감들이 탱글탱글 윤기가 돌아 먹음직스럽지만, 껍질을 칼로 깎아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젊은 세대는 외국산 과일을 더 선호한다고 하니 우리 세대는 그저 이해하기 어려울 따름이다.
1950년대 어릴 적에는 보리가 익어 누렇게 물들 무렵 감꽃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떫었지만 감꽃도 귀한 간식이라 새벽부터 나가 주워 먹었고, 짚에 꿰어 염주처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시들어 갈색이 되면 떫은맛이 조금 사라져 먹기 한결 좋았다.
감이 탱자만큼 자라 초복이 지나면 주워다 논의 진흙 속에 묻어 두곤 했다. 하루 이틀 삭히면 떫지도 달지도 않은 담백한 맛이 나서 그것도 훌륭한 간식이었다. 감이 더 커져 나무에서 홍시로 떨어지면, 깨지지 않은 홍시는 그대로 빨아 먹었는데 그 달콤함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었는지 모른다. 홍시 두세 개만 먹어도 허기가 사라지는 듯했다.
생감이 떨어진 날에는 역시 논흙에 묻어 두었다가 삭힌 뒤 꺼내 먹었다. 그래서 감나무 아래에는 지금처럼 깨진 감이 널브러져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요즘처럼 가을이면 감나무 밑을 지나가며 찰박이가 된 홍시를 피해 걷는 일은 그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풍경이었다.
가을이 되면 감을 사는 장사꾼들이 큰 감나무가 있는 집을 찾아다녔다. 나무째로 감을 사고 낙엽이 진 뒤 나무에 올라 감을 따는데, 흔들리는 가지에서 떨어진 홍시는 우리 몫이었다. 감 따는 나무 아래에서 놀다 떨어지는 홍시를 주워 먹으며 그 시절의 가을을 만끽했다.
두 아름이나 되는 큰 감나무 한 그루에서 감이 두 동, 이십만 개나 났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풍성한 때였다. 우리 집에도 고종시 감나무와 납닥감나무가 있었다. 납닥감은 홍시로 인기가 없었으나 고종시는 찰지고 달아 사람들이 좋아했다. 서리가 내릴 때쯤 고종시를 쪼개면 서릿발이 선 보송보송한 속살이 드러나고, 달콤한 맛이 오래가는 찰지고 맛있는 감이 되었다.
아버지는 고종시를 따면 큰 두꾸마리를 나무 위에 올려놓고 감을 차곡차곡 담아 두었다. 가을 거두기가 끝나고 떡을 해 먹을 때면 우리는 그 홍시에 찍어 먹기도 했다. 어른들이 외출한 밤이면 누나와 나는 몰래 두꾸마리에 올라가 몇 개씩 꺼내 나눠 먹고 좋아했는데, 감을 도둑맞았다며 야단이 나는 때도 있었지만 누나와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문 채 모른 척했다.
떨어져 멍든 감은 감말랭이로 만들어 말렸고, 좋은 감 한 접은 곶감으로 깎아 싸릿대에 꿰어 말려 제사에 쓰였다. 감껍질도 버리지 않고 감말랭이처럼 말려 먹었다. 그때는 단감이 귀해 단감나무가 어디 있는지 살펴두었다가 감서리를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귀하던 감이 지금은 천대받는다니, 마음이 괜스레 허전하다. 요즘은 감의 효능을 소개하는 글도 자주 눈에 띈다. 감 한 개에는 사과 아홉 개 분량의 비타민이 들어 있다 하고, 비타민 A가 많아 시력 보호에도 좋다고 한다. 포도당과 과당이 풍부하고, 심폐를 보호하며 갈증을 멎게 하고 위와 폐의 열을 다스린다고도 한다. 알칼리성 식품이라 최상의 과일로 칭송받기도 한다.
예전에는 자연에서 스스로 자란 감나무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품종 개량이 잘되어 크고 탐스러운 감이 많이 난다. 외국산 과일은 신선도를 위해 약 처리를 한다는 말도 있으니, 가급적이면 우리 땅에서 난 감을 더 선호하고 사랑하고 즐겨 먹는 마음이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