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황강은 흐른다(71) 길 위에 부는 바람 – 조현자

내 집 근처에
작은 오솔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른 아침 혹은 해질녘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는
그런 길 하나

산새 소리 정답고 바람 상쾌한
맑은 날이면 더 좋겠고
흐린 날이거나 비오는 날도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길

길 끄트머리쯤에
작은 강 흘러 흐르면서
세상 구경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바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 나서

따뜻한 봄날엔 연둣빛 새싹 되고
무더운 여름날엔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쓸쓸한 가을엔 고독한 시간이 되는 거야
겨울엔 뉘 집 창가의 성에가 되기도
벌거벗은 한 그루 나무가 되기도 하지

무엇보다 그 바람
내 사랑하는 이에게
그리운 이에게
금방 가 닿을 수 있어

나는 오늘 바람이 되고 싶다.

손국복 시인의 시평|

조현자 시인은 키가 크다. 요즘 여성들의 키가 예전에 비해 많이 큰 편이지만 조 시인은 유별나게 키가 커서 멀리서도 쉽게 잘 보인다. 성품이 워낙 겸손하고 소박하며 타인을 잘 배려한다. 따라서 그녀 곁에는 늘 정감이 흐르고 사람이 따른다. 합천 삼가 출신의 조 시인은 일찍이 <자유 문학>에 등단 후 열심히 시작에 매달리는 감성 깊은 소녀 시인이었다.
삼가에서 합천으로 문학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문학적 지평을 열어가다 <길 위에 부는 바람> 시집을 상재한 문사이다.
위 시에서 보이듯 시인은 청순한 소녀 감성으로 강가에 난 작은 오솔길을 걷는다.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낙엽지고 눈 내리는 사계를 걸으면서 시인은 바람이 되어 사랑을 노래한다. 한 십 년을 합천문학과 함께하다 결혼하고 난 뒤 남해로 살림집을 차린 후 합천문협과는 소통이 단절되었다.
지금도 그렇게 겸손하면서도 순수한 조현자 시인의 이미지는 작품과 함께 늘 기억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