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선관위 부실 대응·무책임에 개탄… “신뢰 회복 대책 내놔야” _석종근
선관위 부실 대응·무책임에 개탄… “신뢰 회복 대책 내놔야” _석종근

정가의 초미의 관심사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이다. 전직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문제는 투표용지를 적게 인쇄한 것이 아니라 응급 대응 능력의 부재, 그리고 해명이 국민의 의혹을 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을 지펴 국민 신뢰를 무너뜨린 점이다.
투표용지를 50%만 인쇄하기로 한 결정은 총투표율 70%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사전투표율을 20%로 예측하면 이미 사전투표용지 출력기로 출력해 투표한 20%에 인쇄분 50%를 합해 70%의 투표용지가 확보되므로, 남는 투표용지를 최소화하여 예산을 절약하려는 적정한 결정으로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응급 대처 능력이다. 첫째, 투표관리관이 “투표용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용지 부족을 낮 12시경 선관위 직원과의 단톡방에 게시하고 보고했고, 오후 3시경에 투표가 중단됐음에도 선관위는 투표용지 제공을 하지 않고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오후 4시 30분경에 다시 오라고 해서 투표하러 왔는데도 투표용지가 공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만약 필자가 재직했다면, 사전투표용지 출력기로 출력하거나 복사기로 투표용지를 복사해 제공하여 투표하게 하고 투표록에 그 사유를 기재하도록 지시했을 것이다. 구시군선관위는 오후 2시에 투표용지 부족 상황을 보고받고도 4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둘째, 중앙선관위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항의 방문을 받고 서울시선관위에 책임을 미루고, 서울시선관위는 중앙선관위에 통할권이 있다고 핑퐁을 하는 인터뷰 모습이다. 중앙선관위가 통할권을 가지므로 책임을 지고 응답하며 하급위원회에 지시해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올바른 대처임에도,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국민에게 신뢰를 잃었다.
셋째, 장동혁 대표의 ‘재선거 주장’이라는 우문(愚問)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195조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만 밝힌 중앙선관위의 우답(愚답) 해명이다. 선거와 투표는 다른 개념이고, 재선거와 재투표는 다른 개념이다.
선거는 선거인명부 작성과 선거운동을 거쳐 투표 및 개표를 하는 전 과정을 의미하므로 재선거는 선거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이다. 반면 재투표는 투표를 하지 못한 선거인만을 대상으로 다시 투표만 하는 것이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경우 2021년 베를린 지방선거 당시 투표용지 부족과 출구조사 공표 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고 돌아간 사태에 대해 선거무효 판결을 내리고 재선거를 치른 바 있다. 우리 공직선거법 제195조에 따른 재선거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장 대표의 재선거 주장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제198조(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재투표)와 제12조의 선거사무 통할·관리 규정을 바탕으로 일부 재투표를 검토하겠다는 현답(賢答)을 해야 했다. 통할권을 행사해 투표소에서 번호표를 배부받았으나 투표하지 못한 선거인만을 대상으로 재투표를 하게 하고 여비를 지급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넷째,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대법관)과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사임은 문제 해결 방안을 찾지 않은 무책임한 처사다. 가장 큰 책임은 상임위원에게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제6조에 규정된 상임위원은 비상임 위원장 제도 하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으로, 중앙선관위에 상임하면서 사실상 직원을 지휘·감독하고 위원장을 대행하는 실권자다. 부총리급 대우와 장관급 보수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상임위원이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한다. 고위 퇴직자들이 상임위원이 되고자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1급 이상 선관위 퇴직자는 중앙선관위 위원이 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중앙선관위원장의 상임 제도를 도입하고 상임위원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관행적으로 대법관인 위원을 위원장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을 상임위원으로 호선해 왔으나, 이는 선관위의 중립성을 의심받는 원인이 된다. 대법원장의 위원 지명에서 대법관을 제외하고 민간 변호사나 학자를 지명하도록 제한입법을 하고, 이 중에서 상임위원장이 호선되도록 해야 정당이나 대통령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다.
대법관은 중앙선관위원 추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지난 경남교육감 선거무효소송 당시, 선거관리 통할권과 선거소청심사위원장, 그리고 대법원 선거무효소송 재판관을 모두 동일 인물(노태악 위원장)이 담당해 견제 없는 자의적 권한 행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방송 토론회 발언이 선거 결과에 명백히 영향을 미쳤음에도 증거 부족을 이유로 기각 판결을 내린 사례는 사법 신뢰를 떨어뜨린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국민의 신뢰 회복이다. 투표소에 도착한 선거인에게 번호표를 주어 언제든 투표할 수 있게 조치하고, 긴급 상황 시 사전투표용지 출력기나 컬러 복사기를 활용해 투표용지를 공급하는 대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철저한 원인 규명과 제도 개혁을 통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석종근 한국선거행정사협회 회장(전 선관위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