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맴돌기
노덕경
논설위원
낙동강지류 황강이 감돌아 흐르는 농촌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6.25사변이 일어났다. 옹기종기 살던 집들이 폭격으로 소실(燒失)되었다. 세상도 숭숭했고 궁핍(窮乏)기에 끼니해결도 어려웠다. 닥쳐오는 겨울의 삭풍과 엄동설한을 피하려 냇가의 주먹돌을 주워와 황토로 사랑채를 쌓아 복구했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산에서 안채 복구를 위해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 등 지개로 져다 날라 응달에서 건조해 자재를 보충하여 대청마루가 있는 반듯한 네 칸 기와집을 지었다.
읍내라 불리는 동네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숙소가 필요했었다. 사랑채는 선생님의 숙소나 살림집으로 빌려주었다. 그래서 코흘리개가 초등학교 입학하여 늘 존경하는 선생님과 함께 등교를 했다.
어른들 말씀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어른과 어린애들은 선생님을 만나면 항상 존경하여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선생님은 다방면에 박학다식하고 가방을 들고 등교하는 모습이 어린 나에게도 그렇게 좋아 보였다.
사, 육학년까지 담임 선생님 한분 밑에서 공부했었다. 선생님은 사범학교를 갓 나와 첫 부임지다. 처음 맡는 학생들이라 인성과 교과지도를 누구보다 열정으로 가르쳤고, 이해 할 때까지 설명하고,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숙제도 많이 내셨다.
농촌에는 일손이 부족하여 어린 고사리 손도 부모님의 일을 도와 끼니를 해결해야 했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예습 복습은 말할 것도 없고 숙제도 못하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선생님께 혼나고 교실 뒤에서 무릎 꿇고 손들고 벌서곤 했었다. 상습적으로 숙제를 안 하면, 회초리로 손바닥 맞기, 종아리 맞기, 때로는 운동장 구보하기, 방과 후에 교실, 변소 청소 등을 했었다.
그 때, 벌서며 배운 공부가 머리에 남아 있어 사회생활 하는데 밑천이 되었고 평생 국어, 곱셈과 나눗셈을 잘 써먹고 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까막눈을 뜨게 했고, 꿈을 심어주었고, 이정표가 되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시골의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대학시절, 동네 잡화점 집 초등학교 외아들을 가정교사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선생님이 되기 위한 교생실습과 용돈 보충이 된다는 생각으로 가정교사를 일 년 정도 하다, 도중에 과외를 포기한 일이 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되는 첫걸음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가르쳤다. 반복하여 설명하고 타일러도 보고 작은 체벌도 해보고 여러가지 동원하였으나, 가르치는 방법이 날이 갈수록 손이 올라가고 손찌검이 심해졌었다. 보다 못한 주인 할머니가 남의 귀한 아들을 타일러서 가르쳐야지 손찌검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듣고, 나는 교사로 부족함이 많음을 느끼고, 선생님이 되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과외를 중단했었다.
그래도 선생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중등하교 준교사 자격증”을 따 두었다. 군대에 다녀와 건축설계 사무소에 나갈 때, 시골학교에서 교사 제의가 들어왔으나 이상과 현실에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 선생님이 두려웠고, 한편으로 경제부흥, 국토개발로 아파트 건설 붐으로 건설기술자가 부족했었고, 건축공학과라 건축설계 사무소, 건설현장, 건설공무원이 많이 필요한 시기라, 선생님에 대한 꿈을 접고 말았다.
교사는 사람의 인격양성과 학문을 가르치는 신성한 교직이라 어렵다. 많은 선생님이 교사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열과 성을 다해 학문을 가르치고 자식같이 생각하고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과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수업료를 대납해 주는 훌륭한 선생님도 주변에 많이 있다.
반대로 일부 선생님은 스승이라는 신성한 직분을 포기하고 학생들의 인성, 교과교육, 학문연구 등 본연을 잊고, 선생의 직분이 노동자라 생각하고 노동조합에 가담하고, 정치권, 관변단체, 언론계 등 잿밥에 관심이 많아 주변을 기웃거리는 선생님들도 있다.
도공이 혼신을 다해 물레를 돌려 질흙으로 도자기를 빗고 건조하여 그림을 그려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어 불을 지펴 몇 날 밤을 온도를 올려 지새우며 심혈을 기울인다. 가마에서 나올 때는 형상이 찌그러지거나 흠집이 생기면 망치로 깨트리고 만다.
그러나 사람 교육은 망치로 깨트릴 수 없다. 선생님은 학문을 가르치기 전에 한 사람 인격을 도야하는 인품과 덕망을 갖추어야 한다. 학생의 개개인 인격과 개성, 두뇌의 특성에 따라 다양함으로 교육하고 스스로 탐구하고 상상력을 키우고 질서를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인으로 태어나는데 선생님은 산파역을 해야 비로소 귀중한 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교육은 어떠한 잘 못이 있더라도 대화로 이해 할 때까지 설명하고 잘하는 것은 칭찬하여 더욱 잘하도록 하고, 잘 못은 공개적으로 질타하여 마음의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하고, 잘 못을 본인이 인정할 때,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합의하에 가벼운 체벌을 해야 한다.
군자삼락(君子三樂)의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셋째의 즐거움이라, 참 교육을 실천한 선생님이 주변에 많이 있다. 좋은 선생님 밑에 훌륭한 제자들이 배출되어 정년 후에 감사의 인사를 받는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나는 존경받는 선생님이 꿈 이였는데, 자질이 부족하여 이루지도 못하고 아쉬움이 많다. 직장생활을 공무원으로 한 평생, 고등학교, 대학교 선생님들의 주변에서 맴돌다 선생님이 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고 아쉽다.
여태껏 칠순까지 공부하고 책을 잃고도 머리가 빈 것 같아 지식에 배고파하고 각 대학 평생교육원,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은행 등, 시민들의 강좌나 특강에 배우려고 선생님 곁을 지속적으로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