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합천 (視界陝川)] 하수도 오물이 범람하던 1991년 여름, 나는 정치를 결심했다 – 이종학 합천정책포럼 이사장
*시계합천(視界陝川): 더 넓은 시야(視界)로 고향 합천을 바라봅니다. 여의도와 서울에서 체득한 중앙 정치의 안목과, 뼈속까지 밴 고향 합천의 애정을 잇는 가교가 되어 우리 합천이 나아가야 할 미래의 길을 함께 그려보고자 합니다.
나에게 1991년의 여름은 선명하다. 지금은 희미해진 기억들 사이에서도, 그날 하수도가 역류해 도로 위로 넘쳐흐르던 오물의 풍경만큼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 그 막연하지만 강렬했던 첫 마음은 바로 그 빗물과 악취 속에서 시작되었다.
1991년은 대한민국 지방자치사에 기념비적인 해였다. 그해 3월 기초의원 선거와 6월 광역의원 선거를 거치며 무려 31년 만에 민선 지방의회가 부활했다. 당시 야로면 곳곳에도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감과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7월, 장마가 유독 심했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은 야로에서 가장 큰 ‘백운상회’를 운영했는데, 가게 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니 상황은 참담했다. 하수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골목길은 오물과 축산폐수가 뒤섞여 범람하고 있었다. 지방의회가 부활했다는 거창한 구호가 무색하게도, 내 눈앞에는 악취를 풍기며 역류하는 빗물만이 가득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내가 커서 의원이 된다면 내 이웃이 겪는 이런 불편은 없게 만들어야겠다.’ 그것이 내가 정치를 결심한 첫 순간이었다.
그 시절 소년에게는 야로라는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나 세상을 더 넓게 보기 위해 떠난 거창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차별을 가르쳐주었다. 야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은 나를 “야, 야로”라고 불렀다. 그때는 그것이 단순히 고향을 지칭하는 별명이라 생각했지만, 훗날 6.3 지방선거를 위해 합천읍을 다니며 알게 되었다. 그것이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합천이라는 작은 지역 안에서도 ‘읍’과 ‘면’을 가르는 묘한 경계와 무시의 시선이었음을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지역 내부의 배타성과 ‘우리만의 룰’을 고집하는 좁은 자존심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합천이 마주한 지방소멸의 파고를 더 높이는 원인이다. 외부의 시선과 변화를 경계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이러한 풍토는, 우리가 정작 지켜야 할 합천의 미래를 가로막고 성장의 싹을 스스로 잘라내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제는 내부의 경계를 허물고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며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우는 지혜로운 자부심이 필요한 때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여의도에서 12년을 보내고, 경기도청과 종로구청을 거치며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공부했다. 현재는 국민의힘 중앙당 부대변인이자 사단법인 인구및지방소멸대응협회 부회장으로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인구 위기라는 난제를 전국적인 시야에서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한 행정의 중심부에서 배운 것보다 더 뼈아프게 깨달은 것은, 지역으로 내려올수록 정치는 더 퇴보한다는 사실이었다. 좋은 정책은 뒷전이고,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딸인지, 경조사를 얼마나 챙겼는지가 유권자의 첫 번째 선택 기준이 되는 합천의 정치 현실은 참으로 씁쓸했다.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나는 국민의힘 합천군수 후보 공천을 받기 위해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의도와 지방 행정 현장에서 체득한 정책 역량을 고향 합천에 쏟아붓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한 벽은 높았다. 정책보다는 연고와 관행이 앞서는 현실 앞에서, 나는 우리가 진짜 삶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했다.
선거 이후, 나는 ‘합천정책포럼’을 만들었다. 우리가 마련한 포럼 사무실은 그 변화의 시작점이다. 보증금 1천만 원은 이종학이라는 사람의 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깊이 공감해준 군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신 소중한 마음들이었다. 이 공간에 주인은 따로 없다. 합천의 내일을 고민하는 군민이라면 누구든 문을 열고 들어와 의견을 나누고,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모두의 열린 사랑방’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운영 또한 그 뜻을 함께하는 분들의 참여와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합천에 산다는 자부심’을 다시 쓰고 싶다.
2026년 7월, 다시 장마가 찾아왔다. 합천의 미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군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열린다. “니가 뭐가 잘나서”라는 핀잔이 돌아오더라도 괜찮다. 1991년 여름, 오물이 범람하던 골목길을 보며 분개했던 소년처럼, 나는 지금 다시 합천이라는 공동체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려 한다.
정치는 단순히 권력을 잡는 과정이 아니다. 군민들이 잘못된 정책 때문에 겪는 일상의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집단지성의 힘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다. 이제 나는 언론과 블로그를 통해 군민들과 더 깊이 소통할 것이다. 합천의 법이 아닌, 상식과 미래가 통하는 합천을 위해. 1991년의 그 여름, 소년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 모두가 함께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