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풍득수(藏風得水) 이야기(126) – 진대수 풍수가 겸 수필가
포은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선생은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능원리 문수산(文水山) 아래, 부인 경주 이씨와 합장으로 모셔져 있다. 그 옆에는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과 부인 연일 정씨의 합장묘이다.
고려 말 충신인 정몽주의 묘소는 본래 개성의 풍덕에 있었다. 피살(1392년)된 뒤, 태종 6년(1406년) 3월에 풍덕에 초장하였던 묘소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고향인 경북 영천 땅으로 운구도중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을 지나가던 중 회오리바람에 명정(銘旌)이 날아간 곳에 고향까지 가는 운구를 중단하고 그곳에 모셔 오늘날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포은 정몽주 선생묘를 정면에 두고 왼쪽이 손자 정보 묘가 있고, 정몽주와 비슷한 높이의 오른쪽 언덕에는 정보의 사위인 연안이씨 저헌 이석형의 묘이다. 포은 정몽주의 장자 원사공의 묘는 좀 더 오른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다. 좌우의 두 개의 명당이 있는 대표적인 쌍수유혈(雙垂乳穴)이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가 있는 문수산(해발145m)은 남쪽으로 4개의 능선을 뻗치고 있는데 양쪽 2개는 길게 뻗어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고 가운데 2개의 능선은 약40m간격으로 나란히 짧게 끝난다. 누구나 처음 보아도 유두혈이라는 것쯤은 다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모유를 먹이는 유방도 한쪽에서 모유가 많이 나오는 쪽이 있듯이 쌍유두혈도 한쪽이 힘이 강한 쪽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본 바로는 분명 이석형 선생묘가 유두자체가 힘이 있고 청룡 쪽에 장풍도 잘 되어 있다. 포은선생 묘는 곡장을 하고 석물도 저헌 선생묘 보다는 웅장하지만 혈장 전체를 보면 조금만 풍수에 상식이 있어도 앞에서 보면 오른쪽이 더 좋게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원래 풍수적으로 묘지의 길흉을 판단할 때는 언제나 용, 혈, 사, 수, 향에 의거해 각각의 길흉을 판단한 다음, 종합적으로 결론을 평가하는 방법이 쓰여 진다.
포은 정몽주 묘소에 얽힌 야사(野史)에는 처음 명정이 날아간 곳은 지금의 저헌 이석형 선생이 모셔진 곳에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사방을 살펴보던 지관은 세상에 이곳보다 더 좋은 명당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감탄하면서 포은 정몽주 선생의 후손들에게 이는 선생께서 스스로 마련하신 명당자리이니 마땅히 이곳에 안장하여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이때 포은 정몽주의 증손녀(저헌 이석형의 부인)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포은의 증손녀는 남몰래 밤새도록 물을 길어다 파놓은 천광에 부었다. 다음날 아침 지관과 후손들은 크게 당황하였으나 바로 그 옆자리도 역시 명당자리이니 중론을 모은 끝에 현재의 자리에 모시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 후 남편 저헌 이석형이 죽자 맨 처음 명정이 떨어진 곳에다 묘지를 마련하고 본인도 합장하여 달라고 하였단다. 명당자리의 복 때문인지 이석형 선생의 가문에는 8명의 정승과 6명의 대제학 42명의 판서가 배출되어 조선의 3대 명문가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출세한 후손이 별로 없는 정몽주 선생의 가문에서 명당을 빼앗긴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