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겨울 달밤 – 문경자 논설위원
어머니와 같이 살았던 그 겨울 몇 해던가! 봄꽃이 피는 해는 또 몇 해였던가! 천둥번개가 치던 여름은 그 또한 몇 번이었을까! 가을 낙엽이 지던 해,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이 났던가! 내 사계절을 같이 지낸 날들이 그리운 것은 어머니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울먹이며 이렇게 많은 눈물이 나는 것은 아마도 어머님이 보고 싶은 마음일 겁니다.
겨울 달밤이면 생각나는 나의 어머니. 하필이면 추운 겨울에 말입니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적에 제일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지금도 그 얼굴, 그 웃음, 그 음성, 그 몸짓, 어디 하나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겨울 밤이면 달빛이 비추는 마당에 나와 하늘을 보면서 저 별은 엄마 별, 우리 깅자 별은 제일 크게 반짝이는 것이라 말하곤 했습니다. 그 큰 별 이름은 몰라도 혼자 가끔 찾아봅니다. 어머니 별은 어디서나 내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목화 솜 이불을 덮고 누워 옛날이야기에 멋진 마술사가 되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에 몽당 빗자루 귀신, 내가 울면 나타나는 마귀할멈 목소리, 옆집에 살고 있는 벙어리 총각의 웃음, 처녀가 원한이 맺혀 강물에 몸을 날린 귀신들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손짓 발짓으로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내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눈사람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맨 손으로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면서도 내가 웃는 얼굴을 보고는 다 참아 내셨습니다. 검은 숯으로 눈썹을 만들고, 푸른 솔잎으로 수염을 부치고, 동그란 눈은 검은 콩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를 닮은 눈사람은 참으로 예쁘고, 하늘에 있는 천사 보다 천 배나 예뻤지요. 가만히 쳐다보니 어머니 모습과도 꼭 닮은 눈사람. 자그마한 몸집이며 다소곳한 모습이요. 눈사람이 녹아 없어지듯이 내 어머니도 내 곁을 그렇게 떠났습니다.
동네 뒷산에는 부엉이 울음소리, 달빛은 대청마루에 번득이고 문풍지도 팔랑팔랑 귀를 세우는 달밤이 무서워 떨던 밤. 가물거리는 호롱불이 흔들릴 때마다 어머니 얼굴엔 검은 그림자 드리우고 눈 코 입이 정지된 모습이었습니다. 두 밤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은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울고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하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갔을까! 마을에도 방 안에도 부엌에도 화단에도 흔적없이 모습을 감춘 어머니! 열 일곱에 시집을 와서 아들 못 낳은 죄로 서러움을 받았던 어머니는 내가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어머니 모습이 오늘따라 눈앞에 가물가물 거립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딸이지만 아들처럼, 할아버지도 손자처럼 그렇게 대하고 키웠습니다. 어릴 때 꿈은 여자 장군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과 어울려 재미있는 놀이도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모습을 보고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다치지 않게 조심을 하라는 말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빛이 어두운 까닭도 알았습니다.
공무원이신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습니다. 주말에나 오시는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심심하면 어머니에게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했습니다. 내가 너희 엄마를 미워했다. 그것은 아들을 못 낳아서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인지 모른다고 했지요. 아버지는 그래도 동네 사람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어머니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함께 살았다니, 그때만 해도 아들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어느 날은 어머니와 오순도순 이야기도 나누고 웃음을 지을 때도 있었습니다. 너희 엄마한테 미안하구나 하시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머니도 함께 그 말 듣고 계셨지요?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하고는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외손자들을 보고 그렇게 기뻐하는 까닭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삼대 독자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웃음과 눈물로 한세월을 보냈습니다.
목이 메인 어머니는 겨울 달밤에 나를 업고 집을 나섰습니다. 친척 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 돌담에 박힌 달빛들이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돌담을 손으로 쓰다듬었습니다. 그 차가움은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네는 감나무가 무척 많았습니다. 달밤이면 삐쩍 마른 몸매가 그대로 골목길 바닥에 누워 있습니다. 겨울 찬바람이 불 때 마다 가느다란 가지가 꾸물꾸물 기어가는 뱀의 형상과 같았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온 몸이 오므려졌습니다. 어머니는 그것들을 꾹꾹 밟고 밟으면서 지나갑니다. 나의 짧은 머리카락이 꼿꼿이 서고, 몸에 뱀이 달라붙는 것처럼 오싹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깅자야! 겨울달밤이 참 밝구나! 몇 밤이 지나면 아버지도 오실 테니 밥도 많이 먹고 해서 튼튼한 모습을 보여 드리고. 또 아버지가 너에게 선물한 빨강색 골덴바지와 노란 모자가 달린 윗도리를 입고 웃으면서 인사도 해야지. 그러면 더욱 기뻐하실 거란다. 저기 달님도 웃고 있구나. 깅자가 예쁘다고… 그렇지? 그 겨울 달밤은 어머니와 함께한 행복과 슬픔이 묻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