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대 독재에 대한 단상 – 이호석 논설위원
우리는 보통 “독재”라고 하면 인권이나 육체적 자유를 속박하거나 어떤 일을 강제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독재정권하면 많은 국민이 제3공화국과 제5공화국 시절을 우선 떠올리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 당시 정치의 잘잘못은 접어두고, 군 출신이 정권을 잡았다는 선입견과 편향된 사고나 교육에도 한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위 두 시절, 상당 기간을 고향에서 일선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당시의 정책을 홍보하고 실행하는 데 앞장섰다. 그런데 필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시절의 정치를 그렇게 나쁜 독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그들의 정책은 옛 관습에 젖어 있는 국민들의 낡은 사고를 바꾸고, 가난을 탈피하고 잘살아 보자는 것과 문란한 사회질서를 바로잡으려는 목표가 근간이었고, 일반 국민들의 일상에는 아무런 제약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삶을 윤택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많은 정책 중, 국민들이 싫어하는 독재적 요소가 상당 부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필자도 당시 농촌 지역의 공직자로서 그러한 시책을 앞장서 실행하면서,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독재적 행태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농민들을 귀찮게 했던 시한 영농지도, 퇴비증산, 통일벼 재배, 새마을사업, 산림단속, 자연보호활동 등 어떻게 보면 당시 농정(農政)이 모두 타성에 젖은 농민(국민)들로서는 하기 싫은 강제 시책들이었다. 심지어 통일벼 재배를 강권할 때는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담가놓은 일반 볍씨를 회수하여 말려버리기도 하였고, 못자리에 뿌린 일반 볍씨를 갈고리로 긁고 새로 통일벼를 심게 하기도 하였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관내 주민들에게 이러한 행위는 정말 못 할 짓이었고,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런데 전국의 공직자들이 모두 같은 입장에서도 이런 시책을 실행한 것은 꼭 상부의 시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우리 농촌은 너무나 피폐했다. 비료도 귀했고, 각종 농작물 종자나 수리시설 등 모든 농사 환경이 너무 취약하여 곡물 생산량이 형편없이 적었다. 도시에서는 많은 주민이 넉넉지 않은 수입 곡물로 어렵게 살았고, 농촌의 대다수 농가도 가을 추수기 한때를 제외하고는 죽이나 고구마로 연명하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당시로써는 영농방법을 개선하고 볍씨 등 종자를 개량하여 많은 수확을 내게 하는 게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임을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천 년 우리 민족의 묵은 삶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 각종 새마을사업도 지금 생각하면 대부분 강제적이었다. 모든 일에 주민들이 무보수로 동원되었고, 농로나 마을안길 확장에 들어가는 땅도 모두 무상으로 편입시켰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독재적 일들이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이 묵묵히 동참한 것은 ‘모두가 함께 잘살아 보자는 일이었고,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면서 방종을 자유로 잘못 알고 있는 문란한 사회 풍토를 변혁시키려는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절에 정치인과 언론 탄압 등 민주화와 자유를 심하게 억제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원인의 상당 부분은 그들 스스로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상당수 정치인은 예나 지금이나 입만 열면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척하지만, 항상 자기들의 특권 늘이기와 당리당략과 정권쟁취에만 눈이 어두워, 진정한 애국이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언론도 걸핏하면 자유를 속박당하고 있는 것처럼 떠들었지만, 스스로 정권의 나팔수가 되기도 하였고, 편향되거나 추측 보도를 예사로 하여 국민 갈등을 부추기고, 사회를 혼란케 한 경우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들이 말하는 독재의 통제가 거의 다 풀려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지금의 정치판이나 언론의 행태가 바로 그러한 사실을 잘 증명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완전한 자유란 없다. 그것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면서도 체면과 질서를 우선시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에 적응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모 형제의 꾸중과 간섭을 시작으로 학교나 군(軍) 생활,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규제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를 독재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대표적 민주화운동으로 4·19학생 의거, 부마사태, 광주사태를 비롯하여 최근의 촛불집회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한 희생으로 우리나라 민주화가 지금처럼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를 선두하거나 조장한 사람들이 그 목표가 달성된 직후 직접 정치 일선에서 새로운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볼 때는 과연 그들의 민주화운동이 순수하였는지, 또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과 집권 방법 외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일부에서 군사독재 시절이라고 혹평하는 그때는 그래도 ‘조국 근대화’ 기치 아래 모든 정책에 국가발전과 국민을 더욱 잘 살게 하기 위한 애국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근세에 와 정권만 바뀌면 자기들의 잘못은 덮어 둔 채, 갖가지 구실과 특별법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정치 보복성 행위를 예사로 하는 정치꾼들의 독재가 더 나쁜 독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