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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엄마와 김장김치 – 허종학 가회중학교 재단이사장

겨울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닭의 해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되올 수 없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맞을 생각을 하니 만감이 교차된다.
삶이 힘겨운 한해였던, 덥고 추워서 힘들었던 한해였던 그 한 해도 가고 나면 아쉽고 후회스러워진다. 인간은 동물과 달라 정을 가지고 사는 동물이기에 많은 변화 속에서 살면서 늘 후회와 아쉬움을 남기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싶다.
요즘은 삶도 힘들지만 세상도 시끄럽고 계절 또한 시끄럽고 요란하다. 삶이야 각자의 방식이 다르고 주어진 환경이 다르기에 그럴 수도 있고 세상은 또 돌고 도니깐 그 또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덩달아 계절도 요란하다.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가 여름철 곳곳에 피어 가을인양 착각을 하게도 하고 겨울철인데도 봄에 피는 개나리가 산과 들, 언덕바지에 곱게 피어 봄이 왔는가 하는 착각을 느끼게 하고 있다.
덥다고 어제까지만 해도 에어컨을 켜기도 했는데 갑자기 요 며칠은 너무도 춥고, 눈도 내리고 산천이 꽁꽁 얼어붙어 기동조차 힘들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마다 죽을상을 하고선 하나같이 추워죽겠다는 말뿐이다.
여름엔 더워죽고 겨울엔 추워죽고 이래저래 다 죽고 나면 살아있을 사람도 없는데 그래도 다 살아있는 게 기적 같기도 하고 이상스럽기도 하다. 자연의 힘, 섭리는 참으로 묘하기도 한 것 같다. 우물쭈물하다보니 어느덧 12월의 끝자락이다. 12월은 겨울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주된 반찬을 만드는 김장철이기도 하다.
어제는 집사람이 서울 사는 딸과 아들집에 보낸다고 밤잠을 설쳐가면서 김장할 준비에 정신이 없다. 하도 부산하여 TV를 보다가 김치는 시장가면 많이 있고 저희들 먹을 김장은 저희들이 준비하지! 나이 많은 사람이 고생스레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핀잔을 주었더니 자식들 요구도 그렇고 사먹는 것보다 내손으로 담아주는 김치가 맛이 있을뿐더러 내 자식들은 내손으로 정성껏 담아서 먹이고 싶다고 한다. 아~ 그게 어미구나!
나는 짜증스럽고 신경질이 좀 나긴해도 참고 아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데 저렇게 요란한가? 살펴보았더니 김치에 들어갈 양념 준비물이 쌀뜨물, 소금, 고추가루, 멸치 젓갈, 귤, 배, 파, 청엽, 마늘 등 십여 가지가 넘는 것을 넣어 양념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고 나선 당신 차가 있으니 농산물 시장에 배추사러 가자는 것이다. 가격도 큰 배추 한포기에 1500원 정도를 하니 싸기도 하고 좋은 물건들이 엄청나게 많다. 배추 값이 저렇게 싸니 우리한테는 좋지만 농민들이 울상이다. 시내 유명호텔 커피 한잔 값이 15,000원 정도하니 커피 한잔 값이 배추 10포기 값이니 어찌 농민들이 통탄을 안 할 수가 있을까? 1년 농사가 생산비가 않나오니 홧김에 농작물을 도자로 갈아 벌어버리는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농산물 정책이 이래도 되는 건지 걱정도 되고 한숨이 나온다.
김장을 다 마치고 다음날 아침 일찍 택배 보내는데 또 차로 싣고 가자는 것이다. 어쩌겠나! 어미라고 자식들에게 자기 손으로 만들어 맛있게 먹이겠다고 며칠을 저 고생을 하는데 그 정도는 나도 해주어야 하고 또한 나는 아무것도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매달 잡비만 받아 챙기는 게 마음이 걸리기도 하고 해서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과개시 훨씬 전에 우체국에 갔더니 다른 부모들도 김장김치 몇 통씩 만들어서 자녀들에게 보낼 거라고 이 추운 날씨에도 벌벌 떨면서 몇 줄을 만들어 우체국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판이다. 나는 우리 집사람만 별스레 그런다고 불평을 했는데 세상엄마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지만 이 추운데 저 고생을 해서 김치를 만들어 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자식들은 알기나 할까하고 생각을 해보니 가슴이 찡하다.
고생이 되든 말든 자식들은 으레 김장을 엄마가 해서 보내는 것으로 알고 엄마 또한 김장은 자기 손으로 맛있게 해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엄마와 김장은 떼 놓으려 해도 떼놓을 수 없는 약방에 감초, 실과 바늘과 같은 관계라서 끊으려 해서 끊을 수 없는 연으로 묶여진 고래 심줄 같은 연(緣)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머니! 여자로서는 약하지만 어머니로서는 강하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으면서 나 또한 시골에서 부산으로 유학시키고 고생고생하시면서 저렇게 키우셨는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해드린 것 없이 어머니를 보낸 불효를 저질렀음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머니! 정말로 위대하시다. 자식들 시집장가 다 보내놓고서도 자식들 걱정은 늘 마찬가지시고 자기인생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도 오직 자식들 잘되기만을 소원하면서 후회 한번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신다. 그 많은 고생과 희생을 하시면서도 자식들에게 그 마음 알아 달라시는 것도 아니고, 아무 탈 없이 잘살아 주면 그게 보답이고 바램이라고 생각하시면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언제나 많은 것을 주시고도 항상 더 못주어 아쉬워하고 마음조리기도 한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참으로 위대하시고 존경스럽다. 어머니 손길로 만든 김장 김치, 어머니의 정성과 마음도 함께 먹으며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살아주기를 간곡히 주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