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이호정 지회장님을 보내드리고

이호석
논설위원

화창한 봄날 오후입니다. 봄볕이 따사로운 마을 길을 혼자 걷습니다. 왜 이리도 모든 것을 다 잊은 것처럼 허전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허무함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합니다. 바로 조금 전 존경하던 이호정 대한노인회 합천군 지회장을 멀리 보내드리고 온 뒤였어. 그런 가 봅니다. 이 회장님은 향연 77세의 나이로 지난 2월 27일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병명은 쯔쯔가무시병이랍니다. 말로만 듣던 그 병이 그렇게 악랄하고 무서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와는 2년 남짓 같이 근무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몇십 년을 같이 한 것처럼 정이 깊이 들었습니다. 회장님이 쓰러지신 후 오늘까지 저도 직원들도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정 슬픔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 회장님은 이웃 면에 계셨고, 공직 생활 때도 한 번도 같이 근무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근무하기는 이 회장님이 2년 전 노인회 합천군지회장을 맡고부터입니다. 이렇게 한 직장에서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회장님의 인간성을 알게 되면서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흔의 나이인 지금까지 직장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깊숙한 인간미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건장하고 호탕한 성격이 누구에게나 호감을 줍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가식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대합니다. 그리고 또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불의에는 단호히 맞섭니다. 봉사와 희생정신을 실천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모든 일을 제쳐 놓고 100수의 노모(老母)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같이 20여리길 경로당에 불평 없이 출퇴근을 시키는 효자였습니다. 이렇게 덕망을 두루 갖춘 분은 정말 보지 못했습니다. 나의 여생에도 많은 교훈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이 회장님과 인연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97년을 맞는 삼일절입니다. 이렇게 뜻 깊은날 이 회장님은 정든 고향, 정든 사람들을 두고 영원히 오지 못할 곳으로 홀연히 떠났습니다. 이날 장례식은 아침 9시에 발인하여, 정든 마을과 노인회사무실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합천군 율곡면 율진리 선산 양지바른 곳에 영면하셨습니다. 지난밤 나는 사무실 앞에서 노제를 지낼 때 읽을 조사(弔辭)를 지었습니다. 불미한 내용이지만, 조사를 쓰는 동안 절로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으로 존경할 사람을 만난다는 게, 그리고 그를 잃는다는 게 이리도 어렵고 서러운 줄은 몰랐습니다. 사무실 앞 노제에서 읽은 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조사(弔辭)
존경하는 이호정 지회장님!
어찌 된 일이옵니까? 2년간 정들었던 이곳을 어이 그렇게도 쉽게 버리고 떠나려고 합니까?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형제처럼 그렇게 다정다감하시던 분이 오늘은 왜 아무 말이 없습니까?
지회장을 맡으시고, 항상 바쁘고, 힘든 일을 하시면서도 언제나 건강을 자랑하며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셨는데, 그 모습이 고단함을 숨기려는 거짓이었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황망히 떠날 수가 있습니까?
지회장님께서는 언제나 지역을 걱정하시면서, 선배들에게는 친절하고 믿음직한 후배였고, 후배들에게는 원칙과 정의를 솔선 실천해 보였던 참된 선배였습니다. 그 늠름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이제 그런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단 말입니까? 애절함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항상 웃으며 반겨주시던 그 모습이 보고 싶어, 오늘 이 자리에 모두 오셨습니다.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주며 반겨주시더니만, 오늘은 왜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고, 우리의 가슴을 이렇게 아프게 합니까?
너무나 갑작스런 일에 우리는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릅니다. 제발 꿈이기를 애원하고 또 애원합니다. 혹시라도 잘못 가신 길이라면 지금이라도 정신을 가다듬고 저희들 곁으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별의 슬픔이 저희들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는데, 가족들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겠습니까. 그 아픔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이렇듯 모질게 떠나갑니까? 가시는 길을 잡지 못하는 저희가 너무나 송구하고 원망스럽습니다.
꼭 가셔야 할 길이라면, 이제 생전의 고통과 걱정은 접어두시고, 시름과 괴로움도 버리시고, 영원한 안식처인 극락정토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지회장님!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흐릅니다. 짧은 기간의 정이 이렇게도 두터울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있는 줄도 미처 몰랐습니다. 영원히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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