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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대적광전의 벽화이야기 – 이병생 합천문화원 향토사 연구소장

1) 구정(九鼎)선사 이야기
해인사 대적광전의 벽면에는 돌아가며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나 설명하는 사람이 없어 무엇 때문에 그랬으며, 어떠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조차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흰 벽면이 보기 싫어서 그림이라도 그려 놓았겠지 하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 벽화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벽화 전체를 설명하려면 1시간도 더 걸린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이 벽화의 내용을 알리고자 하나씩 연재코자 한다.
오늘은 처음으로 대적광전 서편 벽면에 보면 어린 동자스님이 솥을 걸고 있는 모습이 있고 노스님이 무언가 지시를 하고 있다. 내용인즉 솥을 아홉 번 바꿔 걸고 있는 모습으로 비단을 팔아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던 한 청년이 하루는 강원도 대관령을 넘어가다가 고갯마루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다 비단장수 청년은 누더기 옷을 입은 노스님 한분이 오랜 시간을 꼼짝도 않은 채 홀로서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스님께 다가가서 물어 보았다.
“대사님께서는 여기서 무었을 하고 계십니까?”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노스님이 대답하였다.
“잠시 중생들에게 공양을 시키고 있는 중일세.” 이 말을 들은 청년은 더욱 궁금해져서 다시 물었다.
“어떤 중생들에게 무슨 공양을 하고 계시는지요?”, “내가 움직이면 옷 속에 있는 이가 피를 빨아 먹기 불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잠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네.”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은 청년은 갑자기 세속의 삶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노스님의 제자가 되어 수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청년은 굳은 결심을 하고는 비단 보퉁이를 팽개쳐버리고 산길을 오르는 노스님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오대산 동대 관음암까지 노스님을 따라온 청년이 스님께 말씀 드렸다.
“저는 비단을 팔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스님의 인자하신 용모와 거동에 감동받고 저도 수도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 솟아 올라 이렇게 스님의 뒤를 쫓아 왔습니다. 부디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네가 중이 되겠다고? 그렇다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하겠느냐?”, “예! 스님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이렇게 청년의 다짐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노스님은 겨우 출가 할 것만을 허락 하였다. 그 다음날 노스님은 행자에게 부엌에 커다란 가마솥을 옮겨 걸라고 시켰다. 청년은 스님이 시키는 대로 흙을 퍼와서 거기에다 짚을 섞어 이기고 커다란 솥을 걸었다. 그렇게 하고나자 이미 한낮이 지나 하루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노스님은 부엌에 들어와 솥을 걸어 놓은 것을 보더니만 다시 이르는 것이었다. “솥은 잘 걸었다만 이제 이쪽에서는 필요가 없어졌으니 저쪽으로 옮겨 걸어라.” 이렇게 말하고는 나가버렸다. 청년은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전날에 정성스럽게 걸어 놓은 솥을 떼어내서 옆 아궁이로 옮기고는 잔손질까지 하여 잘 마무리 하였다. 얼마 뒤에 노스님이 다시 들어오더니 화난 목소리로 꾸짖었다. “이놈! 이것이 솥을 걸어 놓은거냐? 한쪽으로 틀어졌으니 다시 걸어라.” 그러고는 짚고 있던 석장으로 솥을 밀어 주저 앉혀 놓고 나갔다. 청년이 보기에는 틀어진 곳이 없었지만,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묵묵하게 다시 솥을 걸었다.
청년은 이렇게 솥을 옮겨 걸고 허물기를 아홉 번이나 반복하였는데, 이는 노스님이 그에게 인욕과 하심(下心)을 청년에게 가르쳐주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스님은 청년의 구도심을 인정하여 제자로 받아들이니 솥을 아홉 번 고쳐 걸었다는 뜻에서 구정(九鼎)이라는 법명을 내렸다.
이 청년은 그 뒤로 열심히 수행하여 뒷날 크게 명성을 떨쳤는데 그가 바로 구정선사이다. 구정선사의 이러한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입산 출가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