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 박인욱 논설위원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종교적인 신앙이 깊은 사람일수록 ‘사랑’, ‘은혜’, ‘은덕’, ‘가호’ 등의 말들이 쉽게 나옵니다. 또 젊고 경제적 활동이 왕성한 사람일수록 ‘돈’이란 말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단어들에 동의하십니까?…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봅시다. 과연 인간이 사랑이나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 돈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할 수는 있다지만 바로 그 자체가 우리의 생명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공기, 물, 빛 그리고 흙일 것입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이들 네 가지 요소들은 우리들이 사랑과 돈을 투자하지 않고서도 우리들과 항상 함께 하고 있으며 다른 가치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은 희생이나 헌신이라는 무형적 가치를 요구하고, ‘돈’은 금과 은으로 바꿀 수 있는 유형적 댓가를 요구합니다. 즉, 가치나 댓가로 환원할 수 있는 것들만이 인간의 꿈으로 남아 있고 그것에 대해 우리의 삶과 생명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이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사람일수록 삶의 행복에 대해 더욱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한 경향이 짙어질수록 우리는 생명이라는 근원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생명과 분리될 수 없으며 오히려 생명이라는 거대한 반석 위에 세워진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건강한 생명이 처음과 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공기, 물, 빛 그리고 흙처럼, 거대한 소리는 들을 수 없으며, 거대한 움직임은 느낄 수조차 없고, 거대한 빛은 아득히 먼 곳에서만 볼 수 있으며, 거대한 모습은 우리의 눈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만 이 거대한 것들이 끝없는 인간의 욕망과 오만을 다 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거대한 것들이 소리치고 신음하며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나 댓가를 요구하지 않았던 공기, 물, 빛 그리고 흙이 그 규모를 알 수 없을 만큼 큰 가치와 댓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처럼 성장한 물질 만능의 시대에 우리들이 호흡하는 공기는 하늘을 잿빛으로 가리더니 2015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만 11,900명이 미세먼지로 조기 사망하였고, 세계는 700만 명의 목숨을 먼저 잃게 하였습니다. 깊고 푸른 바다는 우리들이 매일 쓰는 치약, 샴푸, 화장품 등으로 북극은 물론 남극까지도 미세 플라스틱으로 오염이 되었으며 우리나라 보다 무려 7배가 넘는 쓰레기 섬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플라스틱은 작은 크릴새우를 중독 시키며 큰 고래를 넘어 인간까지 사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인간들이 견딜 수 있을 만큼 비추던 햇빛은 숨을 쉴 없을 만치 열기를 뿜으며 우리나라는 물론 북유럽까지 이상고온으로 수많은 사망자를 발생시켰습니다. 2030년에는 폭염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235조가 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흙은 보다 일찍이 중금속과 항생제로 얼룩이 졌으며, 흙에서 영양분을 공급 받아 온 식물들은 물론 그것을 먹이로 하던 동물들에게까지 중금속이 파고들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사건으로 우리는 ‘살충제 계란’을 알고 있습니다. 식물의 살충제로 쓰던 DDT가 흙 속에 오랫동안 잠복하면서 그 땅에서 자라던 어미닭들까지 오염시켜 살충제 성분을 가진 계란을 낳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여러분은 아직까지도 공기, 물, 빛 그리고 흙이 가치나 댓가가 없는 무한한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와 여러분의 미래는 삶은 고사하고 생명도 온전치 못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공기, 물, 빛 그리고 흙 같은 것들이, 우리가 삶의 행복을 위해 추구했던 ‘사랑’과 ‘돈’ 이러한 것들보다도 더욱 값진 희생과 헌신, 더욱 소중한 금과 은을 요구하게 될 테니까요.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은, 아니 여러분의 생명은, 사랑과 돈이 아니라 공기를 흡입하고 물을 마시며 빛의 위안과 흙이 준 영양분으로 여러분은 탄생하였고 즐거워 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