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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국 가야 (5) – 차세운 경북대학교 행정학 석사

백제. 특히 무령왕릉 발굴의 경우 한국 고고학계의 획기적인 발견이면서, 동시에 아직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무령왕릉은 송산리 고분군의 유입수를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를 하던 도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런탓에 도굴꾼의 손을 거치지 않은 온전한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정말 가치가 큰 무덥이었다.
무덤의 주인인 무령왕에 대해 삼국사기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무령왕 부여사마(융)는 키가 8척(184cm)에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망이 매우 두터웠다고 한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의 유골을 재본결과 180cm로 기록과 거의 일치했다. 사마라는 이름은 그가 일본의 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그는 백제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하고 중흥기로 이끌었던 왕이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무덤들 중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덤이며, 왕비와 함께 합장한 합장릉이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당시 백제의 유물이 실제로 어떠한 생김새를 가졌는지 밝혀주고 고고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지석의 기록을 『삼국사기』, 『일본서기』와 대조해 보면 상당한 부분이 일치하기 때문에 역사학적 측면에서도 발전을 가져왔다. 단, 『일본서기』의 경우 허구도 많기 때문에 비판적인 수용을 전제로 해야 한다. 무령왕릉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들, 그리고 묘지석에 기록된 내용들은 역사학과 고고학의 수준을 높이 끌어올린 것이다.
그러나 그 발굴과정은 취약한 인프라, 권력 등이 복잡하게 개입되어 세계 고고학 사상 최악의 발굴들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1971년 7월, 무령왕릉 발견당시 상당히 어수선하고 혼란스런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서로 무덤을 보기 위해 아우성이었고, 발굴 당시 폭우가 내리자 사람들은 폭우의 원인을 무령왕릉 발굴 탓으로 돌렸다고 한다. 언론이 조사단원들보다 먼저 도착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발굴을 황급히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졸속 발굴은 거의 하루만인 17시간만에 마쳤다. 유물이 여기저기 나뒹굴어 그 위치가 어디에 있었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고 한다.
아쉬운 면이 많지만 가야에 대한 배경지식 발굴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하나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 시절 공주 박물관은 목조 단층건물이라 출토유물을 수용할 능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주박물관을 재건할때까지 유물들을 서울에 보관해야만 했다. 공주 읍민들은 유물을 하나라도 서울로 가져가면 무력을 행사하겠다고 협박했고 김종필과 김원룡교수는 반드시 공주로 도시가져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서울로 가져올 수 있었다. 서울로 올라간 유물은 다시 수모를 당하게 된다. 김원룡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금제 출토물을 보여주었는데, 그는 무령왕비의 팔찌를 휘었다 펴면서 이게 순금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김원룡교수는 훗날 이를 두고 참회하는 글을 남겼다.(직설 무령왕릉, 2016)
무령왕릉 졸속 발굴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아픈 역사지만, 이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일 것이다.
역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야사 복원의 방향성은 연구인력 양성과 연구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한다. 사실 가야사에 배정될 예산은 사실 토목 공사비의 비중이 높을 확률이 크지만 그래도 연구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특히 인력의 문제가 심각하다. 사실 지자체들의 작은 박물관에는 가야 유물들이 꽤 있다. 그러나 학예사는 1명 있을까 말까하며 그나마 있더라도 계약직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 가야사 연구는 연구를 이어갈 후속 연구자가 없어 연구 인력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한다.
가야가 이런 실정이니 한반도 북부와 중국 동북부에 있던 우리 역사 연구는 두말 할 것도 없다. 덧붙여서, 예산을 확대 편성해서 가야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예산에서 가야의 할당량을 높이는 방식으로 연구를 장려한다면 이는 다시 재고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한 연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도 가야사 복원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중심을 잡아주는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고대 가야의 비밀을 밝힐 가야 고분군들이 대부분 방치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소가야 왕들의 무덥들이 있는 산청 중촌리 고분군은 산 능성이 깎이고, 덮개석들은 마구 쌓여 있으며, 깨진 토기 파편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다. 산에 분포한 고분 500여기 중 최소 160여기가 파손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남 함안 남문의 고분군은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여기가 고분인지 분간조차 할 수가 없다. 20m높이의 고분을 깍아 밭이나 개인 묫자리로 사용하고 있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KBS 경남, 17.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