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눈물 (2) – 문계성 수필가
차베스를 이은 마두로 대통령은 석유 판돈으로 더욱 신나게 떡을 만들어 던져주다 더디어 나라가 완전히 거덜이 났다. 그러자 마두로는 그 원인이 정부 경제정책의 실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유가의 하락 때문이며, 이는 미국의 음모라고 떠들었다. 우리나라의 소위 진보주의자들은 이 변명에 발맞추어,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세계 석유가격의 하락 때문이지 결코 정책적 실패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은 가릴 수 없었던지, 결국 마두로는 스스로 경제정책의 실패가 베네수엘라의 비극의 원인이었음을 시인했다. 우리나라의 소위 진보주의자들의 좌파 짝사랑은 얼마나 지극한지 말릴 수가 없다. 베네수엘라가 거덜이 난 이유가 국제유가의 하락 때문이었다면, 석유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도 역시 거덜이 나야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들 나라는 멀쩡하다. 정책적 실패였음이 너무도 분명하다.
누군가가, 혹은 국가가 당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떤 정치인들은 자기들에게 표를 주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그렇게 권력을 쥐면, 그들은 우선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재산을 팔아 인민을 공짜로 배불리 먹여줄 것이다. 그러다 재정이 바닥이 나면, 적대시한 이웃 강대국이나 이전의 정권을 비방하며 온갖 구실을 만들어 실패를 그들의 탓으로 돌리기기 시작할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마두로도 그랬다. 그들이 국부(國富)를 팔아 인민들에게 준 잠간 동안의 휴식은 인민들의 긴 굶주림과 삶의 파탄을 가져왔다.
국가가 당신의 삶을 책임지겠다며 웃는 얼굴로 말할 때 당신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자는 실현 불가능한 약속을 하는 사기꾼이거나 혹은 정신 나간 몽상가 일 것이다. 당신의 생존이 안전해지려면 늘 이성이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보의 위대한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평등(平等)”과 “민주(民主)”라는 말에는 이중성이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자유주의자와 전체주의자 모두의 사랑을 받는 모순을 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 말을 가장 애용하는 자들은 좌파적 파시스트들이다. 이 파괴적인 자들이 이 말을 사랑하는 것은 이 단어들이 가진 이중성을 상징한다. 그들은 이 말을 포장하여 그들이 주장하는 관념을 관철하는 혁명의 도구나 정치적 상품으로 이용한다.
“평등”이라는 관념은 위대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으로 오용될 때는 사회를 획일적 전체주의로 만드는 망상이 될 수 있다. 평등이란 구호로 만들어진 정치적 세상이 과연 평등하던가. 당신은 그런 세상을 본적이 있는가.
그들은 항상 인간의 사회적 구원을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은 극히 개인적인 존재이므로 인간의 구원은 매우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이다. 인간은 매일 먹여 주면서 타고 다니는 이 거친 물질적 육체가 전부가 아니다. 자유로운 의지로 물질 세상을 모험적으로 경험함으로서 개인적 만족을 얻는 지극히 정신적인 존재이다. 당신의 존재가 그렇지 않은가. 진정한 존재의 본질인 정신세계는 도저히 평등할 수 없고, 또한 그런 평등은 삶의 감옥이다. 사람은 삶을 경험하면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보편적 가치로 습득한다. 이 보편적 가치야 말로 몸에 맞는 옷이다. 물질적 평등을 부르짖으며, 그것을 특정 관념으로 시험하다 거덜이 난 베네수엘라는 지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배가 고파 울고, 후회하여 울고,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몸부림치며 울고 있다.
저 먼 지구 반대편 나라가 흘리는 눈물에 내가 불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누군가 우리를 저 베네수엘라처럼 실험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