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의 참회 – 박인욱 논설위원
제93대 일본 총리를 지낸 하토야마가 부산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0월 3일에는 현재 국내원폭피해자 2000여명 중 600여명이 거주하는 합천을 찾아 피해자분들에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잡으며 위로를 전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 2세, 3세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책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토야마의 이런 행보는 한국민의 입장에서 본 기존의 일본 정치인들과는 사뭇 달랐으며, 일본에서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며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이 있음을 보다 확신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한일 역사관의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일본 현대정치사 근 70년 동안 10년도 안 되는 기간을 빼고는 아베 신조가 총리로 있는 보수우익 정당인 자민당이 집권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일본 국민들이 자신들의 역사와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가 원폭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태도이다. 일본은 과거 동아시아 침략 전쟁과 수탈 식민 정책을 서구 세력으로부터 동아시아를 지키고 공동 번영을 위한 길이였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론 태평양 전쟁의 전범국가에서 원폭 피해국가로 탈바꿈하려 하고 있다. 그러한 일본의 속성은 한국에 대한 위안부, 강제 징용 등의 문제들에 대해선 철저히 부정하거나 왜곡도 서슴지 않은데 반해, 그나마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해선 1990년 5월 한·일 양국이 40억엔 지원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전에 일본은 원폭이 떨어졌던 히로시마에다 대규모 평화기념공원을 조성하며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인류 역사적 비극의 상징으로 일본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러한 일본의 원폭피해국가 만들기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착한 민족임을 선전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한국민의 원폭피해자 지원이 일부 반영된 결과임을 우리는 또한 알아야 할 것이다.
하토야마 유키오는 1984년 일본 최대·최장 보수우익 정당인 자민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자민당 창당의 산파 역할을 하며 총리까지 역임했고, 그의 아버지는 그런 자민당에서 외무상을 지냈다. 그가 민주당으로 당을 바꿔 총리가 되었으나 일본의 민주당은 우리와 달리 보수당 중의 하나이며(자민당은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이다), 비록 총리 재직 기간이 10개월도 채 못 됐다지만 그 때 한국민이나 아시아인들을 향해 일본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은 없었다.
우리는 간혹 하토야마와 같이 일본 총리를 지낸 정치 거물급들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일본 국민들 전체의 마음인 것처럼 착각을 하곤 한다. 일본 왕이 비록 정치적 실권은 없다지만 일본 국민들은 일본의 국가 원수가 총리가 아니라 일본 왕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은 당연 일본 왕임이 확실하다. 또 하토야마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양심 있는 일본 시민단체들이라 해도 그들의 전통적 배경지식과 환경적 규율 때문에 한국민들처럼 일제 식민지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느끼는 고통과 인식에는 같을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일부 일본인들 중에서는 한국인원폭피해자에 대해선 일본인과 동등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731부대 같은 인체 실험이나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이 일본인의 근본적 치부가 드러나는 사건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또 강제 징용과 조선 수탈 등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해도 관동 대지진 때 일본인의 조선인 죽창 대학살은 완고하게 거부하기도 한다.
분명 일본에도 진정으로 일본 과거사를 아파하고 반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일간의 긴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소수의 일본인들의 참회가 일본국가에 대한 용서로 전환하기에는 우리의 역사에는 너무도 아픔이 많다. 오히려 21세기 일본의 주류 정치세력들은 더욱더 일본 과거사를 왜곡하는데 부끄럼이 없다. 이런 과거의 역사와 현재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을 생각해보면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아직까진 하토야마의 합천원폭피해자 앞에서의 무릎 꿇기는 일본의 한 정치인의 ‘참회’라기 보다는, 일본의 한 정치인의 자국 과거사에 대한 잘못을 ‘인정’한다 정도로밖에 바라볼 수 없는 이유이다.
(위의 글로 원폭피해자분들의 아픔이 더 크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