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뉴스홈

|향토사 논단|“南冥學의 발원지” 합천 벽한정과 무민당 박인 (1) – 김무만 경영학 박사

Ⅰ. 시작하며
한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출처가 “은일(隱逸)” 그 자체였던 조선시대 대표적 산림처사(山林處士)중의 한분인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합천이 자랑하는 대학자이다. 1501년 같은 해에 퇴계 이황은 지금의 경북 안동에서, 남명 조식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퇴계는 1534년 34세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사대부의 길을 걷게 되고, 남명은 1539년 39세에 초야에서 학문에만 전념하는 “유일(遺逸)”로 인정 받아 임금의 부름을 받았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학우등사(學優登仕)가 상식이었던 시대에 퇴계는 사대부의 길을 걸었고 남명은 그것을 거부하고 재야 지식인의 길을 선택했다.
남명은 조선 제13대 왕인 명종(明宗)이 수차례 벼슬을 내리고, 퇴계 이황도 벼슬길에 나오기를 편지로 간청했지만 정중하게 사양했다. 끝내 1555년 단성현(지금의 경남 산청) 현감직 마저 거절하고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 라는 상소문을 올려 조정의 부패와 무능을 질타하는 한편 역성혁명(易姓革命)의 논리를 제기하여 조정을 놀라게 했다. 또한 백성의 존재가 무섭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등 목숨을 건 우국애민(憂國愛民)을 위한 실천궁행(實踐躬行)의 행동을 보였다. 그의 이러한 행적은 제자와 문인(門人)들에게 전수되어 임진왜란 당시 의병창의(義兵倡義)의 도화선이 되기도 헸다.
남명의 학맥(學脈)은 인조반정과 이인좌의 난 이후 정치적 등이 이유로 거의 소멸해 가고 있었다. 다행히 1986년 남명학연구원, 1990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남명 정신의 선양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는 합천출신 전두환 前 대통령의 재임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지난 2015년 3월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경북도청 회의실에서 “ 500년만의 아름다운 동행” 이라며 남명·퇴계 사상 교류촉진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제 남명학은 합천과 경남을 뛰어 넘어 전국은 물론 세계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남명 정신은 “바른 마음”과 “바른 언행”이다 “안에서 밝히는 것은 경(敬)이요, 밖으로 결단하는 것은 의(義)이다(內明者敬 外斷者義)”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이 따르고 실천해야 할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남명학 연구의 근간이 되는 남명의 연원록인 <산해사우연원록>을 편찬한 무민당(无悶堂) 박인(朴絪)과 이것을 편찬한 장소인 경남 합천군 용주면 손목리에 위치한 벽한정(碧寒亭)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약하고 “존현(尊賢)” 사업에서 소외되고 있다. 본 논고(論告)는 합천 벽한정이 “남명학의 발원지” 로 지정되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南冥의 사숙제자인 무민당(无悶堂) 박인(朴絪)의 행적과 벽한정(碧寒亭)의 발전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