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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 잡기 – 문계성 수필가

대개의 사람들은 경제에 대하여 과문(寡聞)하다. 그래서 위정자나 혹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고지(告知)하는 대로 믿는 버릇이 있다. 어리석게도 비판 없이 믿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의 위정집단은 우리 사회의 소득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설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소득불평등이 아니라고 하드라도 소득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소득의 평준화는 인류의 바람이었고, 수 천만 명을 살상(殺傷)하며 일으킨 공산혁명의 대명제 역시 소득 불평등의 해소였다. 그러나 불평등 해소를 위해 사회주의 체제를 실시한 모든 공산국가들은, 다 같이 권력만 소수 엘리트가 장악하고 사회주의 경제는 포기했다. 사회주의 경제는 인민의 굶주리게 하였고, 생필품의 부족으로 허덕이게 하였다. 유지하기에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현 정권이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을 생각하는 말에는 매우 애틋한 바가 있다. 아마 진정성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소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을 실시했다. 임금을 높여 소득을 늘리고, 늘린 소득으로 소비를 촉진시켜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것이 골자로서,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높여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인간다운 삶을 갖게 한다는, 매우 고상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부(富)란 철저히 사회적인 것으로, 꼬리와 머리가 섬세한 촉수로 연결된 살아있는 한 마리 생명체와도 같다. 그래서 아주 하찮은 하나까지도 시장의 모든 연결선상에서 결정된다. 즉 어느 작은 것 하나도 독립된 것이 없다. 밥 한 공기의 가격도 이 전체와 맞물려 결정된다. 말하자면 시장이 철저하게 가격과 임금을 정한다. 그런데도 최저임금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임금의 착취를 방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즉 어느 고용주가 지급하는 임금이 시장에 의하여 결정되는 임금액수보다 적을 경우, 이는 임금의 착취에 해당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이라는 선을 정해야 할 것이고, 이것은 사회가 추구해야할 정의이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시장이 정하는 임금보다도 훨씬 높아, 경제사회가 즉, 고용주가 임금지급 무능력자가 될 경우, 고용주는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어 폐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업자의 폐업은 실업자의 양산으로 이어진다.
이 정권이 정한 최저임금은 시장이 정하는 임금보다 높다. 그래서 시장은 비명을 지르며 큰 교란에 빠졌다. 자영업자 100만명이 폐업을 하였고, 폐업율이 80%를 넘어 섰다. 청년실업률은 10년 이래 가장 높다. 이는 이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 시장에 의하여 정해지는 임금보다 높아 영업자들이 이를 감당을 못하여 영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즉 최저임금이 엄청난 사회적 재앙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려다가 그 바탕이 되는 경제를 망가지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도 기준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 정도는 유럽의 독일과 프랑스 수준으로서, 지니계수가 이런 나라들과 거의 같다고 한다. 이 지니계수 산정 방식을 두고 좌우파 간 시비가 있으니, 내가 직접 지니계수를 산정할 경제지식이 없음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勞組)가 존재하는 나라다. 대체근로(代替勤勞)를 근로기준법이 막고 있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 뿐 일 것이다. 근로자의 권익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과잉을 염려할 정도다. 즉,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사회적 장치는 모두 넘치도록 되어있다. 그러므로 우리 시장은 공정한 임금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사회적, 법적 구조와 시장의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 권력이나 이념의 힘이 가해진다면, 시장은 교란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그들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소득 불평등을 과장하거나 선동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정권이 열심히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세계 6위 수출대국이 되었다. 이 지위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이는 누가 무어라고 하던, 자원과 자본이 없는 세계 최대빈국의 여건에도 불구하고, 숫한 좌파 정치인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중화학공업화를 성공시킨 군사정권의 공로일 것이다. 정치독재와 경제적 성장이라는 빛과 그림자는 사실대로 평가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이 성공한 배경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이 원전은 이승만 대통령이 시작하였고 군사정권은 사활을 걸고 발전시켰다. 군사정권은 그 존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경제적 발전이 시급하였고, 원전이 만들어낸 값싼 전기 에너지는 중화학 공업의 원천이 되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만들어 내는 전기는 값이 쌀 뿐 아니라 청정한 에너지이다. 부자나라들이 다투어 원자력 발전소를 증축하고 있는 가운데, 이 정권은 갑자기 원전 중단을 선언했다. 대신 화력 발전과 태양광 확대를 선언했다. 산과 호수가 태양광으로 덮여지지만, 그로 인한 환경파괴에 대하여는 입을 여는 학자들은 없다. 어저께는 태양광 발전소에 큰 불까지 났지만 방송은 1회성 보도로 끝났다. 태양광 에너지는 그 질이 좋지 않아 산업용으로는 사용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발전의 중단배경에는 아마 핵사고로 인한 인류적 비극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은 인류가 개발한 위대한 기술 중 하나이며 엄청난 혜택을 끼치고 있다. 모든 기술에는 선악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에 손에 의하여 선악이 생겨난다. 모든 기술에는 위험과 이익이 동시에 존재한다. 위험을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이 인류 기술발전의 과정이며, 인간의 위대한 도전 중의 하나다. 사고가 일어날까 무섭고 겁이 나서 위대한 기술에 대한 도전을 포기하는 것이, 원자력 발전의 포기에 대한 실리가 담긴 명분이 될 수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률은 80-90% 라고 하는데, 아마 전기가 부족하자 말없이 중단된 발전소의 일부가동을 늘린 탓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원자력 발전의 중단 정책이 폐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적 원자력 기술자들이 해외로 팔려 나가고, 후진 양성은 위협받고 있다. 원자력 기술이 폐기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당신의 집에 수입이 많아 살림을 살고도 돈이 남아도는데, 빚을 낸다면 당신은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 정부가 적자채권 발행을 획책한 사실이 3년차 5급 공무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나아가, 적자채권의 발행계획이 취소되자 청와대에서 이 발행계획취소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였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렇게 어렵게 얻은 공무원 신분을 포기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사실을 폭로한 청년의 용기와 애국심에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러나 이 청년은 이 정부의 힘으로 부터 실로 무참한 폭력에 시달렸다. 경제부통령은 이 청년을 정책적 조율을 모르는 신출내기 공무원으로 취급했고, 대통령도 연두기자회견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국가회계법을 위반한 사건으로서, 정부가 회계조작을 시도하였다는 범죄적 사건이었다. 국가가 이런 범죄적 행위를 한 이유가 전 정권의 부채비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소문이 떠돈다. 참으로 아연실색할 일이다. 이 정권은, 임기도 끝나지 않은 전 정권을 도덕적 타락으로 몰아서 퇴진 시키고 들어선 정권이다. 도덕적 책임이 어느 정권보다도 크다. 전 정권의 부채 비율 높이려는 그 하잖은 의도 때문에, 이 정권이 추구하는 정치적 정도(正道)는 수렁에 빠졌다.
작은 것을 취하려다 큰 것을 잃을 때, 작은 의를 세우려다 큰 의를 잃을 때, 짧은 소견으로 대의를 그르칠 때, 우리는 속담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