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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핀 친절 – 정병수 재경 합천문인회 회원

2018년도 얼마 남지 않는 12월 중순에 부산에 사는 친구가 겸사겸사 수원으로 온다는 기별을 받고 KTX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원 근처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도로 사정엔 어둡지만,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되지 뭐.’하며 차 시동을 켰다. “서울과는 달리, 수원의 주차장 시설은 아마 여유가 있을 거야.”
물론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세계 10대도시에 속하는 서울보다 작은 수원이라는 막연한 이미지가 그렇게 반응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개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누구든 2마리는 키운다는 유머가 있다. 한 마리는 선입견(先入見)이라는 개이고, 또 한 마리는 편견이라는 개란 것이다. ‘보는 시각’을 뜻하는 견(見, 볼 견)과 개를 뜻하는 ‘견(犬, 개 견)’이 뜻은 다르지만 음이 같고,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우리를 꼬집는 격이 있는 유머인 것이다.
나도 그 편견 때문에 주차장은 여유가 있을 것이고, 도로는 막힘없이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론 나의 낭만적인 기대는 역에 가까이 갈수록 멀어져갔다. 나중에는 늦지만 않게 해 달라는 애원으로 기대가 바뀌었다. 수원역 주변의 도로는 폭이 넓지 않은 데다 역사(驛舍)는 유명백화점과 함께 사용하는 복합 건물이라, 초행인 나로서는 주차장 입구를 못 찾아 잠시 우물쭈물 했다. 그 사이 뒤에서 울려대는 ‘빵빵’거리는 소리는 짜증 그 자체였다. 언젠가 대형 트럭의 요란한 크략숀 소리에 놀라 사고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신경이 예민해진다. 드디어 주차장이 보인다. 그런데 빈자리가 없는지 주차 기다리는 차량 줄이 자꾸 길어진다.
그 때 친구가 역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시간 약속만은 나름 잘 지켜왔다는 프라이드까지 있는데,…..’ 어쨌든 속이 상한다.
“호식아, 반갑다. 그런데 코앞 주차장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미안해. 여유 있게 출발한다고 했는데, 여기가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어. 곧 주차장에 파킹하고 출구로 갈 테니, 초행인 너도 어디 가지 말고 출구 근방에 기다려 줄래?”, “그럼, 그렇게 하지 뭐. 나는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와!”
나는 안내요원의 지시에 따라 돌고 돌아 4층에 주차를 했다. 주차장이 넓기는 했어도 반듯한 것 같지는 않았다. 주차한 곳의 위치 번호를 확인하고 기차 승객출구로 향하여 달렸다. 그런데 기차 여객 출구로 가는 길은 반드시 백화점을 거쳐 가도록 돼 있어 다소 복잡해 보였다. 밝은 조명을 받으며 숨 가쁘게 KTX출구로 다가가니 친구가 벤치에 앉아있다.
“호식아! 반갑다. 나야. 늦어서 미안해. ”
우리는 인근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의 목적지는 곧 있을 친척의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 것 같아 친척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아까 급한 맘에 서둘러 온 탓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4층에 주차를 했는데 내 차는 보이지 않는다. 차 열쇠에 붙은 ‘위치 추적기‘를 몇 번이나 눌러도 반응이 들리지 않는다.
“길눈이 밝다는 내가 왜 이러지?”
“5층은 없으니, 분명히 4층인데 말이다. 아니면 3층에 두고 착각하는 걸까?”
결국 우리는 3층 주차장으로 내려가 4층에서 한 것처럼 ‘위치 추적기’를 누르며 바삐 움직였으나 허사였다. 답답하다. 할 수 없이 주차 요원을 찾았으나, 추운 날씨 탓인지 보이지 않는다. “이 황당한 일을 어떻게 하지?”
그 때였다. 가슴에 이름표를 단 중년 부인이 매서운 바람을 피하기라도 하듯이 뛰다시피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잠깐만요! 주차한 곳을 못 찾아 그러는데 혹시 주차 요원을 불러 주실 수 없나요?”
“고객님, 이 3층에는 주차 요원이 별도로 배치되어 있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미화 담당 반장인데요. 주차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지만 원하시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3층에 주차한 것이 맞으신가요?”
“제 생각으로는 분명히 4층, C블럭인 것 같은데요. 그 곳에 가서 봐도 찾지를 못해, 혹시 3층인가 싶어 이렇게 내려와 찾고 있는 중입니다.”
“4층 C블럭이라고요? 감이 오네요. 4층으로 가 보시죠.”
미화 반장은 추위에 연신 손을 비비며 앞장선다. 주차장이 넓어서 그런지, 방금 직전 우리가 갔던 곳과는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때서야 나도 어디에 주차했는지 조금씩 감이 온다.
“반장님,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추우신데 그만 돌아가시죠?.”, “아닙니다. 찾는 걸 보고 가겠습니다.”, “아! 저기 있네요.”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자, 반장은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눈치채고 말한다.
“이 곳에 초행자가 주차하면 선생님처럼 애를 먹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소관은 아닙니다만 개선이 되도록 담당자에게 건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올 들어 제일 추운 날이라는데 저희 잘못으로 생고생을 했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친절이 몸에 베인 마음에서 우려 나오는 목소리이다. 나도 응답을 했다.
“고맙습니다. 다음엔 올 땐 물건도 사고요, 특히 주차를 잘 했다가 오늘처럼 관계자에게 고생시키지 않겠습니다. 오늘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는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를 받고 떠나려다, 저만치 가고 있는 그 여반장에게로 달려갔다. ‘칭찬 엽서’라도 보내려면 이름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됐습니다. 주차는 저 소관도 아니기도 합니다만, 제가 여기서 월급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 밖에 없는데요,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저보다 훨씬 친절하거든요.” 겨우 양해를 받아 이름 석 자를 메모했다. 윤00. 그리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대로에는 여전히 차량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한 동안 친구와 나는 말이 없다. 그러다가 친구는 묵직한 베이스 톤으로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아주머니 말이야. 직업 정신이 정말 투철한 분 같지 않니? 친절도 하지만 그 보다 겸손도 보통 내공이 아니야!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다 해도 저런 천사 같은 사람이 1%라도 있으니 이 세상은 돌아가는 거야. ” 나는 마치 중대 선언이라도 들은 것처럼 숙연해진다. 그것은 마치 나를 향하여 아니 이 세상을 향하여 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리곤 또 친목이 흐른다. 그러나 내 맘엔 오랜만에 희열이 저장되는 느낌이다.
광교 호수 옆을 지날 때 스치는 바람 소리가 마치 수원역 주차장에서 ‘조심해서 운전하세요.’ 라고 친절하게 인사하던 반장님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어느새 도심을 벗어났는지 차는 시원하게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