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선(線)에 얽매여 산다
사람은 생명의 시작부터 죽을 때까지 선에 얽매여 산다. 제일 먼저 어머니 뱃속에서 탯줄이라는 선에 얽매여 산다. 그리고 태어나서도 평생 선을 따르고 지키며 살아간다. 선은 눈에 보이는 선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선도 있다.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형제와의 생활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지켜야할 선을 배우고, 다음으로 학교에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갖가지 선과 지식을 배운다.
일상을 살면서 가까운 곳이나 먼 곳을 갈 때도, 걸어서 가거나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갈 때도 항상 길이라는 선을 따라서 다닌다. 들로 갈 때는 논둑길을 따라가고, 산으로 갈 때는 숲속 길을 따라간다. 배나 비행기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다닌다. 넓게 보면 이 모든 길이 바로 선이다.
하늘과 바다 외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은 너무나 많다. 나라와 나라 간에는 국경이란 선이 있다. 북한과 우리 같이 철조망으로 갈라놓은 실제 선도 있지만, 실체가 없어도 국경이란 선이 그어져 있어 그곳을 통과하려면 그 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우리 국토만 해도 보이지 않는 선으로 수백 수천 조각으로 갈라져 있다. 시·도, 시·군, 읍·면·동, 심지어는 마을과 마을 사이도 보이지 않는 선으로 경계가 지어져 있다. 그곳을 관리하는 구역이 다르고, 행정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대표자도 달리 뽑고 행정관서의 모든 공부(公簿) 기록도 다르다. 지금의 행정구역 경계는 대부분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확정된 것으로 주로 산등성이나 강을 경계선으로 하고 있다.
도로에 나가면 사람이 다니는 선이 다르고 자동차가 다니는 선이 다르다. 모두 그 선을 따라다녀야 한다. 사람은 인도의 우측으로 통행을 해야 하고, 자동차는 양옆과 중앙선을 지키면서 그 선을 따라다녀야 한다. 특히, 분리대가 없는 도로에서는 중앙선을 넘어 달리면 역주행이라고 거센 비난을 받고, 잘못하면 사망에 이르는 큰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순리에 거스르는 행위를 보고 역주행에 비견하기도 한다.
직장에서도 최고 책임자에서부터 말단 사원까지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선을 따라 지시하고 보고하며 업무가 수행된다. 선이 가장 엄격한 곳이 군(軍)이 아닐까 싶다. 부대 주위에 둘러쳐진 선(철조망)을 무단으로 넘어 나가면 탈영이란 죄목으로 감옥까지 가야 한다. 이등병에서 대장까지 그 많은 층층의 계급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묶여 있다. 전시에는 이 선을 따라 내리는 명령에 죽고 사는 엄하고 무서운 선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이렇게 중요한 선을 겁 없이 예사로 탈선하는 무리가 있다. 절도범이나 사기범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특히 정치권에 많은 것 같다. 어떤 선거에 나서 표를 얻으려고 매달릴 때는 분명히 국민의 상식이라는 선 안에서 읍소(泣訴)를 하지만, 당선만 되면 그 선을 예사로 무시한다. 정치인들도 분명히 자기들이 가야 할 길, 즉 국민들이 맡겨준 업무의 선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이나 판·검사, 심지어는 대통령도 그 선을 겁 없이 예사로 이탈한다. 상당수 국회의원은 본연의 임무라는 선을 넘어 인사 청탁, 이권 챙기기, 투기성 투자, 불법전출입 등 수많은 일탈 행위를 해놓고도 뻔뻔스럽게 온갖 변명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고, 판·검사들도 자기의 선을 넘는 부당한 수사나 판결을 했다고 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다. 또 대통령도 당선만 되면 5천만 국민 위에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국민이 부여한 선을 예사로 넘는다. 마치 이 대한민국의 국토와 국가가 모두 자기의 소유가 된 것으로 착각한다. 국민의 뜻은 안중에도 없이 국가의 흥망이 걸린 중요한 정책까지 자기 마음대로 휘두른다.
눈에 보이는 선이건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건 모든 선은 우리 인간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아주 중요한 약속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 선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더욱 혼란해진다. 특히, 모든 정치인은 국민이 위임한 그 선을 절대 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맡겨준 그 엄중한 선을 함부로 이탈하여 사회를 혼란케 하고, 국민에게 국가 안위와 사회 안녕까지 걱정하도록 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