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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끝나는가? – 문계성 수필가

좌파적 사람들이, 그들이 만들 수 있다고 제시하는 세상은 정말 아름답다. 정의로 가득 차 있으며, 평등하며 평화롭다. 청년들에게는 수입이 좋은 일자리가 널려 있으며, 기회는 균등하다. 그들이 말하는 자본주의는 사람이 사람을 수탈하는 구조이며, 차별적 구조이며, 퇴폐적이며 사람이 목적이 아닌 수단인 세상이다. 이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문란한 사생활을 하며, 퇴임 후의 호화로운 생활을 위하여 재벌의 돈을 뜯어 재단을 만들고, 연설문을 집사와 같은 여자에게 부탁하는 무능한 대통령이라며, 촛불을 켜고 거리를 행진했다. 그리고 정치권력을 쟁취했다. 그들이 집권한지 2년이 되는 지금 우리는 매우 혼란스럽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매우 우려스럽고, 무엇 때문인지 때늦게 친일(親日)이 거론되고 있다. 폐업한 자영업자가 100만 명이 넘고, 청년 실업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깨끗하고 안전하게 전기를 공급하는 핵발전소 폐기를 선언하고, 대표적 공해 물질인 석탄화력 발전소를 확대하고, 태양광 설치에 여념이 없다. 수명이 10년 내외인 태양광을 쓰고 나면, 썩지도 않는 그 많은 광판들은 어떻게 처리할 작정일까. 그 카드륨 덩어리를 처리할 방안은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정부는 집권하자 기존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적폐로 규정했다. 시장가격을 외면하고 최저임금을 올리고, 개인의 노동의사를 무시하고 근로 시간을 주 52 시간으로 제한했다. 공시지가를 높였는데 아마 세금을 더 거둘 목적일 것이다. 거리의 가게는 비고 영세업자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이고 많은 청년들이 백수 신분이다. 54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청년 일자리에 썼다는데 대체 어디에 쓴 것일까?
그러나 이 아우성 중에도 파안대소하며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소득주도 경제성장 정책을 주도한 모 씨는, 정책실장으로 근무한 1 여 년 동안 무려 11억 원의 소득이 늘어났단다. 이 분이 다시 중국대사로 발령이 났다고 하니 벼슬 운이 참 대단하다. 비서실장을 한 분은 일본 동경에서 망중한을 보내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는 얼굴이다. 그는 그의 즐거움을 페이스북에 여과 없이 올렸다. 이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데 내가 왜 민망해질까. 나는 이들을 미워해 본 적이 없다.
북미회담은 약 1년 전부터 우리사회의 큰 이슈로 등장했다. 모든 것이, 참담한 경제실패에 대한 비판도 이 커다란 이슈에 묻혀 퇴색했다. 언론이 북미회담에 대하여 희망적인 보도를 할 때 마다 대통령의 인기는 올라갔고, 정부는 북미회담을 주도적 담론으로 키웠다. 하노이 북미회담은 합의되지 않을 것이 이미 자명했다, 아마 비판적 사고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회담이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방송사들만 매우 시끄러웠고, 정부는 이를 매우 기꺼워했을 것이다. 미국은 회담 전 여러 차례 북한의 일괄적 완전한 핵 폐기를 요구했고, 북한은 그럴 의사가 없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가 핵을 폐기하는 순간 그의 왕국이 소멸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은 공화국이 아닌 김일성 일족의 왕국이다. 당신은 북한의 그 우습기 짝이 없는 선거 모습을 보았는가. 그 스스로를 속여야만 생존이 가능한 인민들의 서글픈 모습에 눈물은 흘리지 않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 정권이 반미, 친북, 친중적 성향이 강한 정권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매우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미국과의 동맹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중국이 추구하는 패권 정책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미국과의 연대는 매우 필요하다. 세계는 도덕적 질서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도덕적 관념이 아니라 힘의 논리이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치열한 양육강식의 밀림 지대이다. 우리가 만약 힘을 잃는다면 중국이나 일본은 마치 먹이를 본 하이에나처럼 우리를 향하여 덤벼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협력자가 필요하다. 우리의 경제 구조는 매우 취약하다. 수출이 막히면 금방 쓰러질 수 있다. 이를 과장하여 좌파들은 우리경제를 미국의 하부구조 운운한다. 그러나 현대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수출로 서로 얽혀 있는 관계로서, 이를 우리만의 약점이라고 할 수 없다. 중국을 보라, 미국의 관세인상에 그 큰 나라가 쩔쩔 매고 있다.
우리가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은 2차 대전의 미국 승리 때문이었다. 우리의 독립투쟁은 독립을 쟁취하기에는 너무 미약했다. 사실은 사실대로 인식되어야 한다. 승전자로서 남한에 진주한 미국은 남한에 친미적 정권을 세웠고, 공산주의자들의 남침에서 대항하여 같이 싸웠다. 우리는 세계 10위 권 내외의 경제대국인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새벽잠을 자지 않고 일한 노력도 있었지만, 미국과 그 우방들이 우리의 제품을 발 벗고 나서서 팔아주지 않았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우리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과 작은 못까지도 팔아주었다. 미국이 왜 그랬을까. 그들은 우리를 동맹국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미국의 전략적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를 미국의 동북아 방어의 축으로 삼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달라지는가. 세상은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맺어지는 인연으로 전개되는 환상이다.
우리나라는, 그리고 나의 세대는, 모든 것이 파괴된 그 가난 중에 세계 10 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루었다. 지금의 아프리카 보다 가난에 찌들린 나라였다. 그 성장의 과정은 고통도 있었지만 기쁨이 더 많은 잔치였다. 미국을 우방으로 만들어 뒤 배경으로 하고, 열사(熱砂)에서 땀 흘리며 시멘트를 괴고, 이국의 차가운 땅 밑에서 괭이질을 하고, 이국인의 피고름을 짜고, 때로는 남의 전쟁에서 피를 팔면서, 도로를 만들고 공장을 세워 부를 이루었다. 몸 밖에 없는 노동자가 고된 노동을 팔고 자기 절제(節制)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된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것은 자존(自尊)을 버린 아부도 아니었고 지조를 파는 매춘도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매판(買辦)을 운운하며 폄하하는 것은 공정치 않다.
그러나 이 세대는 좌파를 선택했고, 좌파들은 이런 우리의 역사를 부끄러운 매판의 역사, 혹은 친일의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역사관과 경제관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고집을 피운다. 불황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선동과 선심정책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잔치는 이대로 끝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