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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안개꽃 편지 – 소민호 동화작가

천사님, 안녕하셔요? 저는 작고 볼품없는 안개꽃이랍니다. 봄인데도 사람들이 옷깃을 세운 채 종종걸음이네요.
며칠 전 내가 꽃집에 온 첫날이었어요. 어떤 아가씨가 꽃을 사러 왔답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던 아가씨가 봉오리로 무리지어 있는 우리를 보고 천사의 눈물을 닮았다고 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활짝 웃었지요.
그러자 갑자기 아가씨가 ‘어머머, 이 꽃 좀 봐’하고 손뼉을 치며 소리쳤어요. 나는 깜짝 놀랐어요. 주인아주머니도 화들짝 놀라 달려왔지요. 아가씨가 나를 가리키면서 재미있다고 호들갑을 떨었어요. 까닭을 모르는 아주머니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고, 아가씨는 꽃망울이 갑자기 ‘뽁’하고 벌어졌다고 했어요. 내가 웃는 바람에 꽃잎이 벌어졌던 모양이에요. 아주머니는 ‘달맞이꽃도 아닌데 왜 뽁 하고 필까?’ 하면서 싱거운 음식을 먹었을 때의 얼굴이 되었어요.
그렇게 하루가 지났어요. 내 동무 안개꽃들이 안개처럼 피던 그날 오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중년 신사가 나타나서 빨간 장미꽃 앞에 섰어요. 우리는 숨을 죽이고 신사를 쳐다봤어요. 신사는 아주머니를 보고 꽃다발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아주머니는 장미꽃과 카네이션 몇 송이 그리고 하얀 백합 세 송이와 안개꽃 한 움큼을 뽑아 포장지로 감쌌어요. 금세 예쁜 꽃다발이 탄생했어요. 신사는 활짝 웃으며 백합과 안개꽃이 대조적이라고 했어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래도 안개꽃이 없으면 백합꽃이 덜 예쁠 겁니다.’ 라고 하며 안개꽃을 살짝 추켜세웠지요. 꽃다발을 둘러싼 안개꽃들은 그 말을 듣고 우쭐댔고요.
다음 날이 되자 나와 함께 있던 안개꽃들이 거의 떠나고 물통에 남은 안개꽃은 몇 송이 뿐이었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가느다란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답니다.
그때였어요. 아주머니가 한 움큼도 채 안 남은 우리를 통에서 들어냈어요. 물론 나도 그 속에 끼어 물통을 나와야 했지요. 아주머니는 그렇게 이 통 저 통에서 들어낸 꽃들을 시들었다고 가게 밖으로 안고 나갔어요. 꽃들은 저마다 불평을 했어요. 아직 시들지 않았다거나, 얼마든지 예쁜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꾸밀 수 있다고 몸부림쳤어요.
그런데 장미꽃 한 송이가 꽃다발을 만들 때 몇 송이씩 더 넣어서 크게 만들어 주었으면 이렇게 버려지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했어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나서, 그렇게 싸게 파는 것은 우리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타박을 했어요. 그러자 그 장미꽃은 버려지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고 대들었지요. 그러는 사이 우리는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어요. 서로 몸을 비비며 슬퍼하는 꽃, 꽃잎을 떨어뜨리고 눈을 감아버린 꽃, 꽃잎이 찢어진 채 대궁에 매달리는 꽃들로 소리 없는 울음바다가 되었어요.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 꽃배달차가 도착했고 꽃들이 한 아름씩 가게로 들어왔어요. 국화, 카네이션, 장미꽃 같은 예쁜 꽃들 사이에 안개꽃도 있었어요. 이어서 향기 짙은 백합 다발도 도도한 자태로 물통 속에 자리를 잡았지요. 내가 있던 물통에 새로 자리 잡은 안개꽃 친구들은 아직도 피지 않은 망울 채 수줍음이 가득했어요. 며칠 전 꿈에 부푼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지요.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버려져 쓰레기장 갈 때만 기다리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꽃집 유리창을 통해 안을 기웃거렸어요. 철지난 점퍼와 낡은 바지 차림이었어요.
한참 동안 안을 기웃거리던 할아버지의 눈길이 쓰레기 더미와 함께 있는 우리를 향했어요. 갑자기 가슴이 막 뛰었어요. 힘없이 안을 기웃거리던 할아버지의 입가에 웃음도 번졌어요. 할아버지는 천천히 우리 곁으로 다가왔어요. 그것도 하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이에요. 쪼그려 앉은 할아버지는 우리를 뒤적거렸어요. 그러면서 아직도 싱싱한 꽃들이 많다고 했어요. 할아버지는 활짝 핀 꽃이 더 아름답다고 하면서 제 모습을 지니고 있는 빨간 장미꽃 몇 송이와 안개꽃 한 움큼을 골라 한 묶음을 만들었어요.
그 때 주인아주머니가 나왔어요. 할아버지는 아주머니를 보고 겸연쩍게 웃었어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숙여 괜찮다고 하며 어디에 쓸 거냐고 물었어요. 할아버지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했어요. 아주머니는 할아버지의 차림새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어요. 망설이던 할아버지는 우리를 꼭 안은 채 아주머니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아주머니는 할아버지께 의자를 내주며 어디에 쓸 꽃인지 다시 물었어요. 할아버지는 젖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며 갑자기 한숨을 길게 내 쉬었어요. 땅이 꺼질 만큼 말이에요.
당황한 아주머니는 따뜻한 차 한 잔을 할아버지께 내밀었어요. 할아버지는 차 한 모금을 한 뒤 입을 천천히 열었어요. 몇 년 전까지 할머니와 둘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했어요. 젊어서 모은 돈을 은행에 맡겨두는 바람에 늙어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두 식구 생활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대요.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모아 젊어서 함께했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요.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찾아와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해야겠다고 했대요. 할아버지가 말려도 막무가내였고요.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왔대요.
할아버지는 ‘이왕 시작한 사업인데 최선을 다해야지.’ 하면서 아들에게 은행에 맡겨 놓은 돈과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내 줬다네요.
그렇게 또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할아버지 집에 들이닥쳐 빨간 딱지를 붙였고, 결국 할아버지 할머니는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했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그런 형편에 꽃은 어디 쓸 거냐고 물었어요.
할아버지는 또 한숨을 길게 내쉬며 젊어서부터 형편이 어렵지 않을 때까지 할머니 생일만 되면 빠지지 않고 꽃을 선물했는데, 마침 내일이 할머니 생일이라고 했어요. 할아버지는 잠깐 쉬었다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가는데 마침 버려진 꽃이 있어서 참 반가웠소.’ 하며 쓴 웃음을 웃었어요. 할아버지는 앞뒤 안 가리고 꽃을 챙겨서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어요. 아주머니는 할아버지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새 꽃다발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어요. 그것도 그냥 말이에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나서 손사래를 쳤어요. 자신이 들고 있는 꽃이면 충분하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이어서 할아버지는 힘주어 말했어요. ‘나중에 내 아들 사업이 번창하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을 할멈에게 선물할 거요.’ 라고요.
아주머니는 ‘할아버지, 희망과 꿈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그 희망을 잃지 않으면 참 좋겠어요.’ 하면서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우리를 받아서 먼저 대궁을 잘라 키를 맞추었어요. 그러던 아주머니는 무엇이 부족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리를 요리조리 훑어보더니 아직도 피지 않은 안개꽃 한 움큼을 뽑아서 우리랑 합쳤어요. 할아버지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렸지만, 아주머니는 안개꽃이 너무 적어서 조금 보탤 뿐이라고 했어요. 그런 다음 붉은 장미꽃은 안으로 하얀 안개꽃은 바깥으로 해서 고운 포장지로 감싼 동그랗고 아담한 예쁜 꽃다발을 만들었어요.
금세 우리는 하나가 되어 큰 꽃송이로 변신했지요. 아주머니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할머니께 드릴 꽃다발은 자신이 꼭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어요.
할아버지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꽃다발을 가슴에 꼭 안고 꽃집을 나섰어요.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꽃잎을 꼿꼿이 세웠어요. 언제 그렇게 해 봤는지 모르지만, 꼭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라고 장미가 말했어요.
그 때 채 피지도 않은 안개꽃들이 투덜댔어요. 왜 버려진 꽃들과 함께 초라한 할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느냐고요. 그래서 나는 ‘너희도 하루만 지나면 우리와 똑 같은 신세가 돼.’ 라고 톡 쏘아붙였지요. 그렇게 도착한 곳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있는 좁은 길 끝자락 산동네였어요.
할아버지는 어느 집 쪽문을 열고 기척을 내며 안으로 들어갔어요. 집 안은 조용했어요. 할아버지가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방 아랫목에 머리가 헝클어진 할머니가 누워있었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 앞에 쪼그려 앉으며 꽃다발을 내밀었어요.
할머니는 누운 채 말을 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두 손을 겨우 벌려 꽃다발을 받았어요. 할아버지는 ‘당신 생일 미리 축하하오.’ 하면서 꽃다발을 잡은 할머니 두 손을 감싸 쥐었어요. 할머니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어요. 할아버지도 눈물을 흘리며 웃어주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다발을 선물할 날이 있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누워 있는 할머니 눈에서도 눈물이 귓불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눈물을 보고 왜 가슴이 뿌듯해지는지 모르겠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고 꽃다발이 된 꽃들이 모두 그렇다고 하네요.
특히 우리랑 함께 꽃다발이 되었다고 투덜거리던 새 안개꽃들은 작을 봉오리를 톡톡 터뜨리며 더 행복해 했어요. 물론 우리도 매우 행복했답니다. 아마 천사님이 이 편지를 받았을 때는 이미 우리는 시들고 말라버린 뒬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선물했다면 세상에 태어난 몫은 한 거 아닌가 싶네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며 그만 줄일게요. 천사님도 행복하셔요.

(작가 소개)
소민호 선생은 지금까지 줄곧 어린이들의 꿈과 감성을 키우는 동화를 발표해온 작가이다.
1952년 합천군 대양면 회암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제3회 동화문학 신인상 동화부문 당선 후 부산문학상, 부산아동문학상, 이주홍 아동문학상, 한국해양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을 받았다. 지금까지 지은 책으로 <꿈꾸는 콩돌이>, <형제 섬의 비밀>, <작은 솔씨의 고집>, <바위틈에서 키운 하얀 꿈>, <일곱빛깔 무지개>, <자맥질> 등이 있다.
합천이 낳은 아동문학가 향파 이주홍 선생의 맥을 잇는 대표적 동화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소민호 선생은 그동안 합천의 가야유적지 옥전고분군을 소재로 쓴 동화 <다라국 소년 더기>, 대야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다해 싸운 신라의 죽죽의 이야기를 다룬 동화 <대야성 장수 죽죽> 등 지역의 역사와 설화를 기반으로 한 동화책을 발간하기도 했다.